아마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문화대통령’이라는 조금 민망한 호칭은 과장됐거나 허세처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시절, 우리는 서태지를 문화대통령이라고 부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이 호칭을 얻게 된 것은 단지 그가 스타여서, 그가 인기가 많아서는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서태지가 아닌 더 인기가 많았던 다른 가수에게 이 호칭이 주어져야 했을 것이다. 음악이 최고로 훌륭해서도 아니었다. 그의 음악은 시대를 선도했고, 대한민국 100대 명반에 여러 장의 앨범을 올려놓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지만, 서태지의 음악이 최고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태지가 문화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것은 그가 음악을 넘어 패션과 문화, 그리고 사회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사회에 내지르는 일갈과 영향력은 민망한 호칭을 인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당위성이었다.
그는 노래를 통해 사회에 일갈했다. 아이들에게 돌아오라 말했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말했다. 그가 한국의 교육을 비판했을 때, 그리고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느냐고 외쳤을 때, 그것을 함께 외쳤던 사람들은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계속해서 세상에 대한 직언을 날려 왔다. 속된 말로 그는 인터넷도 깠고, 미디어도 깠다. 그는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언제나 직접적인 말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 시절, 그렇게 한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였을 것이다. 기득권층의 힘이 막강했던 그 시절, 그 꽉 막힌 세상에서 그의 외침은 그를 악마숭배자로 만들 정도로 강렬한 것이었다. 서태지 악마 설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가 외친 말들, 그 세상을 향한 일갈을 불편해했던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서태지가 유해졌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는 두 번째로 공개한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을 통해, 여전히 서태지가 사회에 할 말은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은유와 비유를 사용했음에도 매우 직접적으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사에 담았다. 은유와 비유 그리고 직설이 함께 나열될 수 없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사는 그렇다. 그는 여전히 직설적이었으며, 조금 더 세련됐다.
당신이 기다렸던 산타가 당신을 감시하고 판단하는 배부른 악마임을 서태지는 말한다. 크리스마스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할로윈이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와인은 마녀를 끌어들였다. 매우 합법적이지만 속임수를 통해서. 그리고 그는 말한다. 애초에 너에게 돌아갈 몫은 없었다고. 밤새 고민한 정책은 겁도 주고 선물도 주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다. 그러니 산타를 믿지 말고 조심해라. 그는 그렇게 말한다.
서태지의 이번 음반은 아주 오랜만에 노래를 듣고 사운드와 만듦새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 가사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이런 앨범이 근래에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막상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그는 예전부터 그리고 여전히 독보적인 뮤지션임에 틀림이 없으며, 이번 앨범을 통해 왜 예전에 자신이 그런 민망한 호칭을 얻을 수 있었는지를 다시 보여줬다. 그의 귀환이 매우 반갑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