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군중낙원>은 한국전쟁과 겹쳐지는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때는 장제스가 중국 본토에서 마오쩌둥에게 패하고 대만에서 배수의 진을 쳤던 1969년. 이른바 '양안체제'를 이루기 전까지 둘로 갈라진 중국은 끊임없이 교전을 펼쳤습니다. '파오'는 해병대에 들어가 신병교육을 받고 있었으나 적응에 실패하고 다른 보직으로 밀려납니다. 그가 간 곳은 다름 아닌 군인의 성욕해소를 위해 운영하던 '831', 즉 공창입니다. 여기서 파오는 잡일을 하면서 여느 여자와는 다른 '니니'와 가까워집니다. 애인이 있던 터라 선을 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점점 깊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연거푸 비극이 발생하고 맙니다.

우리나라와 정치적으로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기에 <군중낙원>은 생소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바입니다. 그 속에서 파오와 니니는 가장 순순한 인간적 감정인 사랑을 꽃피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몸을 파는 여자들이 즐비하고 그들로 인해 성욕을 해소하려는 남자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도 831은 군중낙원(軍中樂園)입니다. 섹스라는 것도 결국은 육체적 고독을 푸는 수단일 수 있고 누군가로부터 살을 부대끼며 받는 위로니, 생존을 위해 인간의 존엄 따윈 무시하고 살상을 요구하는 군대에서 이보다 더 낙원인 공간은 없을 것입니다.

<군중낙원>은 파오와 니니 외에도 몇 사람을 더 상황과 대비시키면서 비극을 조성합니다. 파오의 친구는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서 창녀 중 한 명과 바다를 헤엄쳐 도피하려 하고, 무적인간처럼 강대해 보이던 상사는 창녀와의 관계가 어긋나면서 파국을 일으킵니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있지만 결국 이들은 전쟁이라는 무자비한 행위 속에서 저마다 상처를 입고 극단으로 치달아갑니다. 파오는 이 모든 것을 겪고 지켜보면서 성장하지만 이 성장이라는 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인도하진 않습니다. 이제 그는 순결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창녀들과 섹스를 하며 아무런 수줍음 없이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그렇게 파오는 전쟁 속에서 순수를 상실하고 현실과 세상에 적응하면서 변했습니다.

영화는 대체로 지루한 편입니다. 인물의 감정이 분산되는 것이 거슬렸고, 감정선이 워낙 잔잔해서 몰입보다는 산만해지기 일쑤였습니다.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허우샤오시엔이 제작자로 참여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지만, 멜로에 집중하느라 시대적 상황을 소홀히 다뤘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둘이 적절하게 섞여야 멜로든 비극이든 그 힘을 더 발휘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있습니다. 결말에 보여주는 희망의 상징도 안이했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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