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시티 2>가 나오기까지 전편으로부터 장장 9년이 흘렀습니다. 워낙 긴 공백이 있었던 탓인지 북미에서는 참담한 흥행을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개봉 3주차를 지난 현재까지 1,300만 불을 간신히 넘었습니다. 이건 전편과의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예전 같진 않더라도 설마 이렇게까지 저조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대체 왜 이런 걸까요?

북미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9년이란 시간 동안 프랭크 밀러 원작 스타일의 영화가 많았다는 걸 지적했습니다. <씬 시티 2> 전에 <300>도 있었고 <300: 제국의 부활>도 있었습니다. 이런 영화들을 거치면서 더 이상 코믹스를 옮긴 듯한 영상에 관객이 흥미를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씬 시티 2>는 전편과 같은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짙은 톤의 흑백영상에다가 고독과 우수에 젖은 나머지 자의식 가득한 독백으로 전개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저는 그게 밉지도 않았고 싫증도 나지 않았습니다. 제 안에 있는 마초 기질이 영화와 화학반응이라도 일으킨 걸까요?

<씬 시티 2>는 여전히 남성성으로 가득합니다. 범죄, 도박, 폭력, 사랑, 섹스, 유혹, 강적, 복수, 응징 등의 다분히 남성적인 정서가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남성을 유린하고 척결하는 강인한 여성이 있는 것도 전편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들로부터 유독 더 영향을 받은 에피소드는 부제기도 한 <A Dame to Kill For>입니다. 사실 이 에피소드는 전형적인 필름 느와르의 이야기지만 에바 그린의 외모(몸매!)와 연기가 워낙 강렬해서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300: 제국의 부활>에서처럼 <씬 시티 2>에서도 팜므 파탈을 연기하는 데 에바 그린만한 배우가 없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섹스 한번이면 간이라도 내놓을 것처럼 멍청하고 어리석게 구는 남자를 상대하기에는 이만한 배우가 없습니다.

전편과 비교해서 부족한 것이라면 역시 각본입니다. 프랭크 밀러가 직접 쓴 것이지만 어째 전편과 달리 짜임새가 좋질 못합니다. 마브의 에피소드는 있는지 마는지 모를 정도고, 하티건의 복수를 실행하려는 낸시의 그것도 전혀 긴장을 연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에바 그린의 활약 덕에 드와이트의 에피소드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유일하게 단독으로 <씬 시티 2>에 새로 합류한 조셉 고든 레빗의 에피소드는 좀 심심하긴 해도 결말이 신선한 편입니다. 현실에서 이뤄지기 힘든 권선징악을 가장 현실적으로 대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씁쓸하긴 해도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 같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씬 시티 2>는 전편의 팬에게는 어느 정도 만족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살려둔 악당과의 대결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반면에 굳이 새롭게 이 영화를 보려고 시도하는 건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분이라면 아마 에바 그린 외에는 달리 매력을 느낄 만한 요소를 찾지 못하기 십상일 것 같습니다.

★★★☆

덧) 리뷰에서 <씬 시티 2>라는 제목을 쓴 건, <다크히어로의 부활>이라는 생뚱맞은 부제를 달아서 개봉시킨 것에 대한 항의입니다. 원제가 번역하기 애매하면 그냥 <씬 시티 2>라고 하면 될 텐데 굳이 저런 이상한 부제를 달았어야 했는지...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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