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사라졌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장외투쟁이나 일삼는 철없는 운동권들 취급을 당하며 열심히 구박을 받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들이 정작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언론의 보도에는 늘 맥락이라는 게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장외투쟁에서 하는 일 하나 하나에 중요한 맥락이 있다면 언론이 이를 쫓아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하지만 언론이 주목하는 건 오히려 당이 장외투쟁을 결의한 와중에도 온건파 의원 십수명이 연판장을 돌려 현 지도부의 방침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는 소식이다. 문재인 의원이 수염을 기르고 단식을 하는 것만으로 박영선 비대위원장 체제를 흔들고 있다는 식의 보도도 나온다. 단지 언론의 보수성이 문제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보수언론이 자신들에 제기하는 ‘무책임한 장외투쟁론’에 대해 속수무책의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27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 광장에서 여야 유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 수용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의 장외투쟁은 어떤 정확한 요구안을 갖고 이를 밀어 붙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상황에 떠밀려서’라는 게 일반적인 언론의 시각이다. 새누리당 일부 인사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제기하는 ‘여야 유가족 대표가 참여하는 3자협의체 구성’에 대해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며 의문을 제기한다. 애초 합의한 안은 그럼 무효가 되는 것인지, 3자협의체의 정확한 위상은 무엇인지 등에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명확한 그림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이 “3자협의체가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여당과 유가족 측이 직접 협상으로 해결하라는 2자협의체”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것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에서는 3자협의체에 대한 구체적 그림을 지금부터 내놓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단지 그것 뿐인가?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 내외에서는 장외투쟁이 일종의 ‘핑계’가 아니겠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민주당에서 당직자로 일하다 이제는 정치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 인사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장외투쟁을 “내부 갈등 관리용”으로 규정했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두 차례나 유가족들로부터 속된 말로 ‘퇴짜’를 맞은 이후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선택한 맥락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27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 광장에서 여야 유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 수용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속내는 뭘까? 몇몇 의원들이 토로하는 어려움은 도대체 왜 자신들이 이 국면에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후 수습과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관한 문제는 전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문제인데 중간에서 협상을 하려 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어느새 샌드위치 신세가 돼 당사마저 점거당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일부 의원들은 가만히만 있어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비난을 받는 판인데 도대체 왜 제1야당이 두들겨 맞아야 하느냐는 식의 비탄을 늘어 놓기도 했다.

즉, 어떤 관점에서 보면 새누리당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 측이 사실상 직접 협상에 돌입하게 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장외투쟁을 통해 상황을 적극적으로 방조하기로 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3차협상을 진행하자니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거취 문제가 정리돼야 할 필요가 있고, 유가족의 입장을 깔아뭉개고 단독 합의하자니 일부 의원들의 입장 정리가 되지 않는다는 복잡한 문제다.

▲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27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 광장에서 여야 유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 수용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 관계자들은 새누리당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 측의 27일 만남으로 세월호특별법 합의안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관계자들과 일부 언론은 최소한 새누리당이 기존 합의안보다 진전된 안을 유가족 측에 제시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가능성은 물론 크지 않겠지만 이들이 전망하는대로 모든 상황이 긍정적으로 흘러간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유가족들의 만남이 성사되고 새누리당이 유가족 측을 설득해 세월호특별법 제정이 가능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어찌됐건 유가족들이 동의하는 선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대의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을 통해서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슬픈 것은 이런 평가를 되돌릴 수 있는 무슨 방법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뒤에서야 무슨 협상을 진행하고 있든 국민들의 시선에서 보면 ‘야당의 정치’는 이미 실종됐다.

▲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27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 광장에서 여야 유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 수용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와서라도 중요한 것은 장외투쟁 이후의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새누리당과 유가족 측이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하면 장외투쟁은 길어지기만 할테니 다양한 압박 전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유가족 측의 합의가 긍정적인 형태로 이뤄질 경우 최소한 본전을 찾을 수 있는 퍼포먼스를 또 보여줘야만 한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이 출구전략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세월호특별법 국면에서 드러난 온갖 문제에 대한 ‘결산’을 진행하는 것이다. 지난 7일 여야의 1차 합의 이후 드러난 문제들은 단순히 일회적인 것들이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의 현재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또 각 계파 간 갈등 속에서 적당히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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