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 강연 논란은 한국 사회의 역사 문제에 대한 상식의 수준을 보여준다. 주류언론사 간부의 인식 수준도 한심하지만, 이를 두고 “전문으로 보면 문제없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KBS의 보도 직후 당황해 하던 새누리당 역시 윤상현 사무총장의 제안으로 상영회를 가진 후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문제가 없다’고 대응하고 있다.

국무총리실과 <중앙일보>가 버젓이 전문을 전시하며 한국 사회 시민들의 독해력을 시험하고 있다. 하지만 강연 내용의 몇몇 구절을 들고 와 친일매국노라 공박하는 행태도 그 강연의 문제점의 핵심들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러니 “문창극은 친일파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다”라는 식의 반론이 나온다.
▲ 국무총리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강연 전문 및 동영상에 관한 공지. 전문을 읽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홈페이지 캡쳐사진)
1890년대부터 시작하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
문창극 강연에 담긴 세계관의 문제를 정리해보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너무 전반적으로 개념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당황스러울 정도다. 일단 ‘한국 기독교의 역사’라면서 19세기 중반 선교사들 얘기부터 시작한다. 한국에 기독교 신앙이 들어온 건 아무리 짧게 잡아도 18세기 후반부터라고 본다. 적어도 반백년 가량을 뭉텅 떼어낸 것이다.
문창극 총리후보가 주요하게 인용하는 것이 1890년대에 한국에 온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다. 19세기에 조선 사회에선 이미 네 번의 주요한 박해가 있었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이다. 문창극은 사실상 이전의 백여년의 역사를 생략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혹시 천주교조차도 기독교로 보지 않는 ‘개신교 광신도’의 신념의 표현일까. 1874년에 온 달레 신부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그런 정도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조 오백년 허송세월’이라는 헛웃음날 수준의 자기비하적 세계관의 반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세계관에선 마테오 리치와 같은 선교사가 동아시아 전통문화를 지극히 존중하는 문맥에서 선교활동을 펼쳤고 그가 쓴 <천주실의> 등이 조선에 전래되어 조선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에겐 근대문명, 그중에서도 오직 기독교만이 빛이고 나머지는 야만의 어둠일 뿐이다. 어둠에 빠진 미개인들이 스스로 생각하여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가 없다.
선교사들의 시선으로 본 조선, 기독교를 안 믿어서 게으르다?
아마도 그래서 선교사들의 시선으로 본 조선 후기를 묘사했을 것이다. 그러한 문창극의 인식은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마테오 리치가 아니라 그저 여행가였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와 비교해도 더 자학적이다. 제국주의 열강 시대를 살았던 120년 이전의 백인보다, 21세기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황인이 더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버드 비숍여사조차도, 문창극의 설교에 나온 것처럼 연해주의 조선인들이 매우 부지런한 것을 보고 당대 조선인의 게으름은 ‘DNA’가 아니라 사회체제의 문제임을 상기하게 되었다. 비숍 여사의 책에도 그렇게 적혀 있을 텐데도 문창극은 ‘DNA’ 운운한다. 이 정도면 일자무식인지 후안무치인지 알 도리가 없다. ‘DNA’를 언급하면서 기독교 신앙이 들어와서 한국 사람이 부지런해졌다고 하니 또 한 번 할 말이 없다. 신앙만이 답이라면 애초에 자연과학적 용어를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다 취재진의 질문을 받은 뒤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점쟁이와 무당은 안 되고 기독교는 되나?
부적절한 ‘DNA’와 ‘게으름’ 발언이 문제가 되니 문창극 후보는 조선 지배층과 양반의 속성을 설명한 것이라고 발을 뺐다. 물론 강연 전체의 흐름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다만 본인 스스로가 개념이 없어 양반과 지도층만 비난하면 될 문제를 ‘DNA’ 운운하면서까지 민족성의 문제로 만들었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비판이야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었다 하더라도, 굳이 ‘민비’라 불러야 할지는 의문이다. 하긴 조선왕조도 굳이 ‘이조’라고 부르는 분이시니, 옛날 세대의 어법을 못 버린 것일 수 있겠다. ‘이조’나 ‘민비’란 단어만 가지고 식민사관이라고 비판한다면 과할 수 있으나, 내용 전체가 식민사관에 가까우니 옹호를 받을 수도 없다. 근대를 역사의 목적으로 치환하는 식민사관은, 이 시대엔 선악의 문제라기 보단 미추의 문제다. 조선왕조 오백년이 정체되었다고 믿는 총리 후보자의 역사인식은 사실상 1세기 이상 정체되어 있는 것이다. 설령 조선 후기 사회가 정체되고 파탄나 있었다는 뉴라이트의 서술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조 오백년 허송세월’이란 말에 담겨 있는 인식을 존중할 필요는 없다.
고종이 러일전쟁 당시 점쟁이와 무당을 불러와 굿판을 벌였다는 것을 비웃는 지점에선 또 다른 의문이 든다. 고종이 무능한 사람이었다는 비판엔 동의할 수도 있겠으나, 그 판국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굿판을 벌이는 대신 기도하며 방언 터트리고 있었으면 괜찮은 일이었을까. 점쟁이와 무당이 보기에는 교회에 모여 헌금내고 기도하고 방언 터트리는 게 더 해괴해 보일 게다.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려면 다른 종교활동을 보고도 비웃지는 말아야 할 텐데. 하긴 이는 20세기부터 널리 유포된 인식이니 19세기를 사는 문 후보에게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를 다행스러워 하는 관점
문창극이 일제 식민지배와 6.25전쟁을 긍정했다고 서술하는 것은 과연 ‘왜곡’일까. 그는 이 사건들을 ‘하나님의 시련’이라 표현했으니 이 고난들을 대한민국이 잘 극복한 것으로 봐주면 되는가.
오히려 전체 강연 문맥을 보면 그렇지 않다. 왜 그는 그 시련들이 필요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안 그랬다면 나라가 공산화되었을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배와 6.25 전쟁은 문창극의 인식에선 필요악이다. 왜냐하면 일제 식민지배가 오지 않았다는 가정은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했을 경우에만 가능할 텐데, 그랬다면 조선반도는 공산화가 되기 십상이었을 것이기란 게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또 해방 이후 분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통일 한국의 대중들은 사회주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맥까지 고려한다면, 그의 강연은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인 역사인식이 훨씬 더 큰 문제다.
소위 뉴라이트 인사들의 인식의 기저에는 대개 이런 시선이 깔려 있다. 문창극 후보자의 강연 기조도 그렇다. 그의 논리의 흐름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게으르며, 그렇기에 사회주의를 선택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우린 지금 북한처럼 살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배와 분단이라는 시련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련’이 어찌 ‘불행’일까. ‘불행’은 못난 민족성 탓이고 이를 극복하게 해준 것이 ‘시련’이니 그 ‘시련’은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문명국은 기독교를 믿고 사회주의는 게으르다?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게 비판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만약 새누리당이 그를 밀어붙여 청문회가 열린다면 야권이 집중 검증해야 할 것도 이 부분이다. 문창극 총리후보의 역사인식은 기독교의 일반적인 입장이 아니다. 매우 특수하고 편협한 형태의 역사의식이다. 사실 해방 직후 남한의 우파 거물 정치인들은 모두 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다. 이승만 뿐 아니라 김구와 김규식도 독실한 신자였다. 이중 중도우파인 김규식은 중도좌파인 여운형과 중도합작노선을 펼쳤고,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극우파에 가까웠던 김구도 마지막 순간에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문창극 후보가 그 세 명 중 굳이 이승만을 선택한 건 기독교의 논리 때문이 아니라 그의 역사의식이 이승만과 가장 유사하기 때문이다.
▲ 16일자 한겨레 6면 강만길 칼럼. 강만길 교수의 지적처럼, 이승만만 기독교 신자였던 것이 아니다.
비판해야 할 것은 일본과 미국과 기독교가 없었다면 현대 한국은 북한처럼 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그 가정이다. ‘북한’이라는 최악의 현실태를 협박처럼 내밀고, 식민지배든 분단이든 이 최악을 피하게 해준 차악이므로 감사하라는 것은 협박범의 논리다.
당대 국제정세를 고려해본다 한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했다. 일본이 원했던 건 식민지지만 러시아가 원했던 건 부동항이기에, 러시아가 승리했을 경우 조선은 식민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또한 러일전쟁 패배가 없었다면 레닌의 혁명도 승리하지 않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왔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지 못했다면 만주사변도 중일전쟁도 태평양 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장제스는 마오쩌둥을 여유있게 몰아내고 대륙에서 자유중국을 유지했을지도 모르겠다.
식민지배와 분단이 없었다고 무조건 한반도가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을 거라고 믿는 것도 억지인데다, 설령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한들 분단과 전쟁을 거치지 않은 그 나라가 지금의 북한의 모습일 거라고 믿는 것도 너무 많은 가정이 필요한 억지다.
문명국은 기독교를 믿고, 사회주의는 게으른 이들의 것이란 식의 인식은 100년 전에 했더라도 세련된 것은 아니었다. 이승만이 했더라도 모자랐을 생각을, 굳이 윤치호와 이승만을 인용해가며 현대 한국인이 한다. 21세기 민주국가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총리가 되려고 하고 있다. 이 나라가 종교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회주의는 게으른 것’이란 비판은 사회주의를 싫어하더라도 황당한 것이다. 같은 식이라면 ‘자본주의는 애초부터 강도 짓’이란 비판이 가능하다. 그런 수준의 공박으로는 토의가 불가능하다. 문창극의 생각은 그렇게 토의가 불가능한 영역에 있다.
▲ 고(故)장준하 선생의 아들인 장호권씨가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문창극 총리지명 철회 촉구'기자회견에서 문 총리 후보자의 역사의식을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방한 때 뭐라고 말할 텐가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중국의 기독교화, 자유화, 민주화를 대놓고 빌었다는 것이다. 포교만 하려고 했다면 큰 문제가 아니었겠으나, 사실상 중국의 현 체제를 망하라고 기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 역시 사려 깊은 문명인으로서 할 짓은 아닌데, 멀리 있는 이슬람권 나라들더러 망하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한국 사회에 직접적인 피해를 끼친다는 게 문제다.
만약 한국 정부가 중국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기독교인을 총리로 삼았다고 치자. 총리 임명 전 강연회가 보도되어 분명히 그 사실을 알았는데도 이를 강행했다고 치자. 중국 정부는 이 ‘빚’을 잊지 않고 갚으려 들 것이다. 중국과 무역분쟁이 나면 한국보다 훨씬 경제규모가 크고 중국에 덜 의존적인 일본조차도 절절 맨다. 소위 ‘희토류 분쟁’이 보여준 바가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체를 보니 문제가 없다”는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은 ‘개념’ 뿐 아니라 ‘겁대가리’ 마저 상실했다. 강대국들에 둘러 싸여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한국 사회의 처지를 감안한 최소한의 조심성도 없다.
그들은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현 정세에서 한국 외교가 친미를 하되 되도록 중국을 덜 자극하는, 중국으로부터의 양해가 가능한 친미를 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나 하고 있는 걸까? 문창극이 보여주는 ‘보수’는 소련과 중공은 아무렇게나 욕해도 상관없던 냉전시대에나 가능했던 보수다. 한국 사회가 앞으로도 그러한 ‘보수’의 모습을 고수한다면, 자국 내 진보진영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얻어 맞아 독립과 존립이 위협받을지 모른다.
당장 다음달 초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한부터가 문제다. 중국 주석이 취임 후 북한보다 남한을 처음 방문하는 것은 처음인데다, 최근 역사 문제에 대한 한중 공조 때문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올 거라는 기대가 많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창극 카드’를 고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박근혜 정부는 국익의 관점에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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