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가 6주 만에 방송을 재개했다.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뒤늦게 전파를 탄 것이다.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가 조심스럽게 방송을 시작했을 때도, <런닝맨>과 <무한도전>이 눈치를 보며 기지개를 폈을 때도 <개그콘서트>는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모두들 이 때쯤이면 예능 프로그램을 내보내도 괜찮겠다 생각했지만, <개그콘서트> 측은 이에 동조하지 않았다.

<개그콘서트>의 기나긴 결방이 방송국의 지시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포복절도할 웃음을 전달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감이 있다고 여겨 방송을 미루게 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개그콘서트>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이 모두 정상적인 방송 재개를 하고 난 후, 세월호 사고의 충격이 조금씩 가셔지기 시작할 즈음인 지난 25일부터 결방을 걷고 방송을 시작했다.

세월호 관련 뉴스는 전보다 많이 줄었다. 여전히 실종자 16명이 남아있고 수색작업이 한창이긴 하지만 지상파 3사가 앞다투어 수색 현황을 방송하고 있지는 않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본래의 편성표대로 가는 것 또한 방송사가 해야 할 의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 노란 리본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애도의 촛불집회는 매일 펼쳐지고 있다. 그런다고 해서 이미 벌어진 참사를 되돌릴 수 있는 것도, 희생자가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세월호로 인해 고통을 받은 사람들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미안하다는 뜻을, 잊지 않겠다는 뜻을 끊임없이 전하고 있는 것일 테다.

<개그콘서트>는 어제 방송에서 시작 전 애도의 뜻을 표했다. 모든 출연진이 검정색 정장에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고, 다소 무거운 표정과 겸허한 자세로 줄맞춰 서 있었다. <개그콘서트>의 수장들이자 대선배인 김대희, 박성호, 김준호가 맨 앞줄에 서서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출연진의 마음을 전했다.

‘세월호 침몰은 믿고 싶지 않은 사고였습니다. 국민 모두가 가슴 아파했고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국민들과 함께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과연 세상에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요. 저도 아이를 기르는 아버지입니다. 이번 사고로 인해 그 누구보다도 고통 받았을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사고 현장에서 사고 수습 과정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에게서 아직 대한민국의 희망을 봅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시청자 여러분께 위안이 되고자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바라지 않기를 바라며 끝으로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김대희, 박성호, 김준호가 전한 말들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전했던 것들이었다. 새로울 것이 없었으며 남다르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애도의 뜻을 전한 시점을 생각해 볼 때 이는 누구보다도 속 깊은 마음이 전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모든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을 시작할 때도 결방을 결정한 <개그콘서트>였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의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장 늦게 방송을 재개했다.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보낸 것도 모자라 모든 출연진이 숙연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이다.

여전히 무언가가 미안했는지 방송 나가기 전 ‘본 방송은 지난 4월에 녹화되었습니다.’라는 자막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평소 웃음을 전달해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개그맨들이 참사가 터지면 죄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자막이 아닌가 싶었다. 어쩌면 개그맨들에게는 가혹할 수 있는, 허나 그들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이번 주 <개그콘서트>는 변함없이 유쾌한 웃음을 전해줬다. ‘깐죽거리 잔혹사’ ‘취해서 온 그대’ ‘황해’ ‘끝사랑’ ‘뿜 엔터테인먼트’ 등의 인기 코너는 그리웠던 만큼 흥겨웠고 즐거웠다. 시청자들에게 엔돌핀을 생성하게 하는 가장 유쾌한 프로그램임을 다시금 실감케 했다.

그리고 가장 속 깊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세월호 참사를 조금씩 잊어가는 시점에서 이 슬픔을 잊지 말자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번 더 각인시켜주는 그들의 애도가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이제 그들의 말 대로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대한민국을 위로해 주기를, 또한 그만 고개를 숙이고 밝은 모습으로 본분에 충실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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