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딸, 수백향>이 애초 기획했던 120부에서 줄어든 108부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백제 무령왕의 공주로 추측되는 인물 수백향을 역사 속에서 건져 올려 담은 <제왕의 딸, 수백향>은 역사 속에 그려진 일본으로 간 공주 수백향이 아니라, 픽션으로서 출생의 비밀을 가진 수백향의 이야기를 그려내었다.

굳이 역사적 사실을 비틀어가면서까지 왕자에 이어, 공주에 이르는 이중의 출생의 비밀을 꼬아 놓은 드라마를 만들 이유, 막장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 층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제왕의 딸, 수백향>은 대단원의 막을 내릴 즈음에야 그 답을 내놓는다.

자신의 친딸 수백향이 설난(서현진 분)임를 알게 된 무령대왕(이재룡 분)은 하지만, 혈육의 정을 나누는 것도 잠시 병으로 인해 목숨이 경각에 이른다. 움직이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자신에게 왕좌를 내주어야 했던 동성왕의 영전 앞에 이른 무령왕은 백제를 평화롭고 풍성하게 만든 자신의 치세를 칭송하는 신하 내숙(정성모 분)에게 되묻는다. 진짜 자신이 백제의 주인이 맞냐고?

그러면서 무령대왕은 진짜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내숙 당신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자신을 앞에 내세우고, 그 뒤에서 온갖 협잡을 마다하지 않으며 백제를 흔들리지 않도록 애쓴 당신이야말로 진짜 백제의 주인이 아니겠냐고. 내숙 당신은 아마도 필요했다면 나조차도 충분히 이용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무령대왕의 그 말은 내숙이 진짜 주인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포기한 채 백제의 군주로 살아야 했던 그의 회한을 내비친 말이다. 무령대왕은 덧붙인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다음 생에 군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그리고 군주의 길을 잘해내면, 다음 생엔 그 복으로 필부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한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절대권력 군주를 <제왕의 딸, 수백향>은 대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공주가 되려던 설희의 음모와, 그런 설희의 음모에 맞서서 자신의 길을 지키려 했던 꿋꿋한 소녀 설난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이 드라마의 처음과 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령대왕의 역사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왕좌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 자신과 정적이 되고 만 집안의 딸인 채화(명세빈 분)를 잃어야만 했던 남자. 백제 왕족 사이의 정쟁을 막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켜야만 했던 아버지. 왕가의 혈통을 흐트러트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 했던 동성대왕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이라 여기며 그를 왕재로 길러내기 위해 애썼던 군주. 그런 무령대왕을 그리기 위해 <제왕의 딸, 수백향>은 역사 속 수백향을 윤색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아들에게 원수라 칭해지는, 사랑했던 딸을 겨우 만났지만 그 아이를 다시 떠나보내야만 하는, 원수의 자식 앞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무령대왕의 마지막은 그래서 더 회한이 깊어 보인다.

그의 의붓아들 명농의 길도 다르지 않다. 설난은 그가 무령대왕의 친아들이 아니라 더 이상 태자의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무령대왕에 의해 철저하게 왕재로 길러진, 그래서 한시도 백성을 생각하는 군주의 마음가짐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를 지레 포기하고 만다. 무령대왕이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에 분노하는 것도 잠시, 마음으로부터 존경해왔던 무령대왕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게 태자로 키워진 명농의 길 역시 무령대왕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설난을 마음에서 지우지 않지만 왕좌의 주인인 그는 백제가 우선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 시대에 대한 반문이다. 권력과 권위의 향배는 늘 개인이나 그가 선호하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넘지 못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제왕이 딸, 수백향>은 자신을 포기하고 고행의 길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진짜 군주, 지도자의 길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일 드라마로서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출생의 비밀을 둘러싼 이합집산으로 지난한 세월을 보냈던 <제왕의 딸, 수백향>이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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