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요즘처럼 행복한 시절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장르극 하면 미드(미국 드라마)나 일드(일본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거나, 그게 아니면 케이블을 찾아 헤매야 하는 처지일 터인데, 요즘은 월화수목 지상파에서 장르극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3월 들어 새로이 시작한 SBS의 <신의 선물>과 <쓰리 데이즈>가 그것이다. 보통 한 방송사에서, 그것도 월화수목 연달아 장르물을 편성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SBS는 <신의 선물>에 이어 <쓰리 데이즈>를 편성했다.

두 드라마는 비록 아직 시청률 면에서는 발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젊은 시청자 층을 중심으로 웰메이드라는 평가를 받으며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선전 중이다. 하지만 같은 장르물이라고 해도 두 드라마의 궤적은 다르다. <신의 선물>과 <쓰리 데이즈>, 장르물로서 두 드라마의 따로 또 같은 묘미를 찾아보자.

1. 사건의 단초- 내 피붙이의 죽음을 파헤치는 주인공들

<신의 선물>에서 수현의 하나 밖에 없는 딸 샛별이가 연쇄 살인범에게 납치되어 죽음에 이르렀다. <쓰리 데이즈>의 경호관 한태경의 아버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트럭에 쫓기다 교통사고로 죽음에 이르렀다. <신의 선물>이나 <쓰리 데이즈>의 두 주인공들은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들로, 자신들의 피붙이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두 드라마의 방식은 다르다. <신의 선물>의 엄마 수현은 자신이 세심하게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딸이 죽은 곳에 몸을 던지지만, 그건 그녀에게 딸이 죽기 2주 전으로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 슬립'의 계기가 된다. 엄마 수현은 딸이 죽기 2주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딸이 죽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반면 <쓰리 데이즈>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태경의 아버지 한기준이 사고를 당한 날로부터 3일 간의 사건을 그려낸다. 사건이 일어나기 3일 전, 사건이 일어나고 3일, 그리고 그 후의 3일까지의 3일 단위의 날짜들이 전쟁의 서막, 결전, 심판이라는 부제를 달고 긴박하게 전개된다.

딸을 잃을지도 모를 엄마의 절박함, 순식간에 아버지를 잃은 경호관의 슬픔이 장르극의 특수성을 넘어 보편적 감성으로 공감을 호소하며 시청자들을 유인한다.

2. 사건의 확산- 피붙이의 죽음을 넘어선 미궁 속으로

하지만 내 혈육의 죽음을 파헤치고자 시작한 두 주인공들의 행보는 개인적 해원을 넘어 더 큰 범죄의 도가니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과거로 돌아온 수현은 주변 사람들에게 미래에서 일어날 일을 이야기해 보지만 마이동풍이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엄마 수현이 선택한 방법은 샛별이을 데리고 도망치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가 버린 아이의 물건이 돌아오듯 결국 다시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다. 결국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범인이 샛별이를 제물로 삼기 전에 앞장서 연쇄 살인범을 잡는 것이다.

<쓰리 데이즈>의 한태경은 아버지의 죽음을 경찰의 조사대로 졸음운전에 의한 우연한 교통사고로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 발견한 흐트러진 집, 방금 누군가 빼내간 듯한 기밀문서, 그리고 자신의 집을 다녀간 대령의 죽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대령이 바로 시장에서 대통령에게 밀가루를 던지라 지시했던 인물로 밝혀지며 필연적으로 아버지 죽음의 원인을 의심하게 되고, 죽어가던 대령이 암시한 대통령의 암살 음모에 끼어들게 된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태경은 암살자의 신분을 알게 되는 바람에 오히려 암살 음모의 조력자로 쫒기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딸이 죽기까지 2주라는 시간에 쫓기는 엄마, 대통령의 암살범으로 쫓기는 경호관. 두 주인공들이 시간과 사람들에 쫓기면 쫓길수록 장르극으로서의 재미는 배가된다.

3. 장르극의 묘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가는 사건들

두 시간짜리 영화라면 몰라도 16부작의 긴 호흡의 드라마를 장르극으로 끌고 간다는 건 상당한 모험이다. 그래서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되는 장르극들은 대부분 긴 호흡의 중심이 되는 줄거리에, 각 회차별 해결이 되는 짤막한 사건들을 얹어서 감으로써 그 문제점을 해결한다. <신의 선물>과 <쓰리 데이즈>는 그런 장르극의 호흡에서 오는 문제점을 각각 자신만의 드라마적 묘미를 통해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

<신의 선물>에서 엄마 수현은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에 개입한 결과 범인을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추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다 건물에서 떨어지는 범인의 손을 맞잡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4회 마지막, 수현은 그가 죽어야 자신의 딸이 살아난다는 것을 깨닫고 범인의 손을 놓는다. 그렇다면 엄마가 그토록 애달아하던 사건이 해결되는 것일까? 하지만 4회에 이르러 오히려 드라마는 복잡해진다.

제 아무리 자신이 애를 써도 결국 피해자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결국 어쩌면 샛별이의 죽음도 막을 수 없지 않을까라는 불길한 복선이 드리우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타임 슬립 하기 전 굴뚝같이 믿었던 범인이 사실은 범인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오히려 엄마 수현이 사건에 개입하면서, 샛별이의 납치 사건은 그 이전에 알려진 사건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그려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전혀 다른 얼굴이 비춰지기 시작하며 드라마는 다른 궤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쓰리 데이즈>는 한태경 아버지의 죽음과 대통령 암살 음모라는 두 개의 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불과 2회 만에, 대통령의 암살범을 밝히는 배짱을 보인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돌고 돌아 범인을 밝히는 것과 달리, 범인이 누군지를 밝히고 오히려 주인공이 암살범의 조력자로 몰리며 쫓고 쫒기는 역할이 역전된다. 뿐만 아니라 단 2회에 불과했는데도, 시청자들은 2회 동안 보았던 것을 의심하고 돌이켜 복습하게 만드는 집중력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2회에서 시장통 밀가루 해프닝의 목적이었던 대령의 음어 쪽지 전달이, 사실은 다른 메시지였다는 것을 3회에 드러냄으로써 드라마는 또 다른 행선지를 밝힌다. 대통령은 사라지고 없는데, 대통령이 나타날지도 모를 청주역에 암살범과 경호관들과 한태경이 모이는 기막힌 퍼즐의 한 조각이 맞춰진다. 겨우 몇 회지만 시청자들은 안다. 이것이 또 다른 퍼즐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렇게 한 회 한 회 친절하게 공개되는 퍼즐들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아 <쓰리 데이즈>의 충실한 '닥본' 시청자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4. 장르극의 재미 그 이상의 주제 의식

<신의 선물>이나 <쓰리 데이즈>가 대단한 것은 지상파 드라마에선 보기 드문 장르극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것만이 아니다. 1회에서 양심적 변호사인 아버지와 그 못지않게 의협심이 강한 어머니로 등장한 주인공 부부의 이율배반적인 삶의 행태와, 사형제도를 내세운 강성 정치적 공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엄마가 살해된 딸의 죽음을 막는 단순한 사건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우리 사회 엘리트 지식인이자 중산층인 엄마가 딸의 사건을 파헤치면서 조우하게 된 진실의 영역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신의 선물>의 잠재력이다.

<쓰리 데이즈>는 한 발 더 나아간다.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경호실장은 그것을 밝힌 경호관에게 선언한다. 대통령은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렇게 부정당하는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 몰래 자신의 임기 마지막에 목숨을 걸고 하려던 일은 또 무엇이었는지,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도달할 지점이 어디인지 그것 역시 백척간두의 그것 마냥 아득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복선은 대통령 이동휘가 집어든 책,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가 대신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지킬 것은 무엇인가? 인간으로서의 삶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라는 책의 소개문이 어쩌면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신의 선물>이나 <쓰리 데이즈>는 드라마의 형식적 측면에서도 근자에 우리나라 드라마가 해왔던 시도를 한 발 뛰어넘은 용기를 낸 작품들일 뿐만 아니라, 그 주제 의식에 있어서도 보기 드문 묵직한 정치 사회적, 심지어는 철학적 수준의 질문들을 던지는 좋은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분명 이 드라마를 편성하는 측에서도 이 드라마들이 그간 SBS를 끌어왔던 트렌디한 드라마들에 시청률로 버금가리란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두 드라마는 여느 드라마들이 받는 시청률 운운의 평가만으로는 아쉬운 면이 많다.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아주면 감사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2014년 대한민국 드라마사의 한 획을 그을 소중한 드라마들임에는 분명할 것이라 설레발을 떨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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