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인구기금(UNFPA)과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인터내셔널에서는 최근 전 세계 91개국을 대상으로 노인들의 복지 수준과 삶의 질을 조사했다. 그 결과 ‘노인이 살기 좋은 나라’ 1위로 뽑힌 나라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 스웨덴이었다. <KBS파노라마-행복한 노년에 대하여>는 행복한 노년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스웨덴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웨덴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서비스 하우스'라는 주택 형태가 있다. 한 건물에 여러 사람이 함께 입주해서 생활하되 1층은 세탁실, 식당 등 공용 공간으로 활용하고, 2층부터는 개인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주택이다. 개인 주택에 살다 이곳으로 옮겨온 97세의 울라는 자기만의 공간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 공존하는 이곳의 삶에 만족한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시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독서를 즐기는 삶의 질이 유지된다.

모든 노인이 서비스 공간에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노인이 되었다고 살고 싶은 방식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자신의 집에 살면서 청소, 검진 등의 재가 서비스를 받으면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치매 등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조건일 경우에는 요양원에 들어가면 된다. 전직 부동산 중개인이던 85세의 아니타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다. 그녀와 60여 년을 살았던 남편은 거의 매일 그녀를 문병하러 병원에 들른다. 노인이 치매 등에 걸렸다고 해서 그 가족의 삶이 무너지는 일은 스웨덴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덕분에 아니타의 남편은 이제는 기억조차 없는 아내의 말년을 아름답게 함께할 수 있다.

▲ KBS 제공
스웨덴 노인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그들 삶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은 채 존중받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최저소득을 보장해주는 연금 체계에 기인한다. 기초, 직장, 개인 등의 체계로 존재하는 연금 제도는 최저 8000크로나, 우리나라 돈으로 130만 원 정도를 보장하며, 나이가 들어도 병에 걸려도 경제적 최저선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여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국가가 많은 것을 보장한다. 나이가 들면 제 아무리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다 해도 1년에 15만 원 이상 의료비를 지출하지 않는 '의료비 상한제도'가 있다. 물론 이들은 젊을 때 일하며 열심히 세금을 낸다. 대신 노인이 되어 보상을 받는다. 치료비를 걱정하는 노인에게 의사는 말한다. 평생 세금을 냈으니 돌려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거리의 중년들은 자신이 노년에 보상을 받을 것을 확신하기에 세금을 많이 내는 게 당연하다 말한다. 거기엔 자신이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일 거라는 믿음이 전제된다.

스웨덴 노인 복지는 최저 수준의 삶을 보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저 죽을 때까지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활동적인 시민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한다. 스웨덴에는 전체 노인 들 중 상당수가 가입해 있는 연금 생활자 연맹(PRO)이 노인들의 경제적 이해단체로서 자신들의 삶의 질을 위해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중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 활동이다.

PRO에서 춤과 체육 등의 여가를 즐기던 노인들의 노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년과 다르다. 그들은 말한다. 종종 나이가 들었다는 걸 잊는다고, 세대 차이는 크게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스웨덴에서 노년은 인생의 한 단계일 뿐이다.

71세의 잉엘라 탈렌. 전 노동부, 사회 복지부 장관으로 현재의 스웨덴의 복지 제도를 만드는데 공헌한 장본인이자, 유력한 수상 후보였지만 후배에게 그 자리를 양보했던 전설적 정치인이다. 하지만 현재의 그녀는 그동안 사회생활 때문에 해보지 못했던 퀼트를 하느라 재봉질에, 남편과 함께 밴드를 조직해 마을 강당에서 댄스 공연의 음악 연주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신이 만들었던 노인 복지의 현장에서 그 과실을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 KBS 제공
잉엘라는 말한다. 노인들이 행복한 나라란 나와 나의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 다른 가족의 희생이 없는, 즉 너와 나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말한다고. 이렇듯 전직 장관이든, 전직 부동산 중개인이든, 그들의 전직이 무엇이든 노년에도 그들의 삶의 질은 유지된다. 국가가 보장한 연금 제도 위에서 그들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질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거기에 덧붙여 자신이 젊어 해보지 못했던 것을 즐기며 노년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노인 복지의 왕국 스웨덴이 단번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928년 스웨덴의 100년을 바꾼 타게 에를란데르 사민당 대표의 '국가는 국민을 위한 좋은 집'이어야 한다는 연설 이후로, 지난한 노력이 경주되어 왔다. 하지만 이젠 사민당의 장기집권 이후 보수당이 정권을 잡아도 국가적 복지 모델에는 변화가 없을 만큼 스웨덴의 복지는 안정된 궤도에 들어서 있다.

노인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 스웨덴 복지의 핵심은 '복지'의 대표적 정치인이이었던 올로프 팔메 수상의 주장처럼 '평등'에 방점이 찍힌다. 모두를 위한 복지, 보편 복지, 돈을 쥐어주는 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복지가 스웨덴의 오늘을 만들었다.

노인을 위한 복지는, 그저 노인만이 행복한 복지가 아니다. 스웨덴의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나 중년의 얼굴은 밝았다. 그들이 지금 국가를 위해 낸 세금이 언젠가는 자신을 위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불안해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살아가는 삶이 어디로 갈지 분명하지는 않더라도, 먼 훗날 나이가 든 자신의 삶을 국가가 책임져 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삶의 불확실성마저 잠재우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 노인 복지라는 걸 스웨덴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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