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원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 선거운동 첫 날인 지난 2013년 10월 17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일대에 새누리당 서청원, 민주당 오일용, 통합진보당 홍성규 후보의 현수막이 한꺼번에 걸려 있다. (연합뉴스)

명절을 맞이하여 각 정당은 전국 방방곳곳에 현수막을 개시하고 있다. 현수막은 시각적으로 각 정당의 색깔을 보여준다. 비유적인 의미의 색깔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색깔이다. 새누리당은 붉은 색, 민주당은 파란색, 정의당은 노란 색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색배열이다.

새누리당, 그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 황우여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가 29일 서울역에서 설을 맞아 고향으로 떠나는 귀성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색의 삼원색’이 재배치된 것의 시작은 새누리당이다. 2012년 총선을 대비하여,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하의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뀌면서 당의 색깔을 붉은 색으로 정한 것이다.
새누리당이 처음 출범할 때는 단지 색깔만이 변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엔 내용적으로 양극화 심화의 시대에 보수정당이 진보적 시대정신에 적응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경제민주화’라는 수사를 새누리당이 선도적으로 제기했고 ‘복지국가’ 논쟁에서도 민주당에 대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의미있는 정책 대안들을 공약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총선 정국에 정점을 찍고 대선 정국에 후퇴 논란을 가져왔던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2013년 집권 1년차에 전면적으로 허물어졌다. ‘공약 후퇴’ 논란이 있었지만 이쯤 되면 박근혜 정부의 통치가 ‘공약이 말소된 페이지’에 머물러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던 다짐은 ‘돈이 되는 것은 무조건 팔아치워 정부 재정적자를 메우려는 듯한’ 정책수행으로 변화했고, 정책수행 과정도 ‘100% 대한민국’에서 ‘51%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새누리당이란 정당의 색깔은 여전히 붉은 색이다. 굳이 최근 새누리당의 정체성에 이 색깔을 맞춰본다면 ‘종북세력의 피를 보고 싶은 정당’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미지와 내용이 모두 있었던 ‘변신’이 내용은 사라지가 이미지만 남은 ‘변신’으로 ‘변질’ 되면서 ‘붉은 새누리당’은 이제 한국 사회의 정치가 실종되었음을 보여주는 증표같은 것이 되었다.
민주당, 강온파 대결의 혼란
▲ 민주당이 지난 2013년 9월 1일 당사를 9년만에 여의도로 이전하고 당 상징색을 파란색으로 변경했다. 김한길 대표와 의원, 당직자들이 이날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맞은 편인 대산빌딩에서 열린 새 당사 입주식에서 대형 현수막을 내걸며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민주당은 초록색과 노란색 사이를 오가던 오랜 전통을 버리고 2013년의 어느 시점에 파란색으로 당의 색깔을 바꿨다. 오랫동안 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 고수하던 그 색깔이다.
물론 민주당이 파란색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들이 극우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어떤 나라에서 파란색은 노동계급의 색깔이었던 적도 있다. 문제는 현재의 민주당이 새누리당이 우편향이 되어 굉장히 운신의 폭이 넓어진 상황에서도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언론에서는 ‘강온파의 대립’이라는 말이 나온다. 강경파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해 강경한 투쟁을 주문하고, 기존 민주당 지지층을 대변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온건파는 정부 및 여당과 적당히 협상을 하면서 중도층을 공략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책지향, 정부와 여당에 대한 투쟁 수위의 조절, 중도층 공략의 전략은 함께 묶일 수는 없는, 별도로 취급해야 할 문제다. 새누리당이 양극화에 대한 대처를 포기한 시대에 민주당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지향을 가져가야 한다. 이는 기존 민주당 정책과 현재 새누리당 정책 사이의 타협으로 선회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렇더라도 정치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요구를 관철하는 과정에서 정부 및 여당과의 타협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정책지향을 타협을 통해 책임있게 실행하는 방식을 통해 중도층에게 믿음을 줄 필요가 있다.
현재의 민주당 내 강온파 대결의 문제는 강경파는 이 별도의 세 가지 논점에서 모두 강경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이고, 온건파는 그 반대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조합이 가능한 문제를 이분법으로 풀려고 하니 당내 대립만 격화될 뿐 민주당의 재건을 위한 생산성 있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푸른색’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아직도 의원들의 개인 플레이가 만연한 민주당에서 ‘정치’를 찾아 보기가 어려운 이유다.
정의당의 변신은 무죄?
▲ 천호선 정의당 대표와 당 지도부가 29일 오전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에게 설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체로 한국 사회의 진보정당들은 ‘붉은 색’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2012년 총선 정국에서 새누리당이 ‘붉은 색’을 가져갔을 때, 막 출범한 통합진보당은 ‘보라색’이 되었고 여전히 ‘붉은 색’을 고수한 진보신당은 원내 재진입에 실패하였다. 진보신당은 노동당으로 개명하고 여전히 붉은 색을 고수하고 있으나 그 존재감은 미약한 실정이다.
그런 형국에서 통합진보당 내 경선부정 사태로 극한 갈등을 벌이다가 갈라서 나온 정의당은 당명에서 ‘진보’를 떼버리고(‘진보정의당’에서 ‘정의당’으로) 참여계 출신인 천호선 대표를 추대한 후 당의 색깔을 ‘노란 색’으로 바꾸는 행보를 보여 왔다. 이는 물론 진보정당의 시대에 걸맞는 혁신을 위한 행보라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노란 색이 2천년대 초반 노사모 시절부터 오랜 세월 동안 친노세력이었다는 색이었다는 점에서 진보정당의 색깔을 희석시키는 행보가 아니냐는 의문도 적잖이 있다.
물론 정의당의 정책지향이 후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삼원색의 혼란’의 정국에서 아무도 정책지향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사람들은 정의당이 진보정당 운동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제3정치세력의 흐름에 몸을 담을 것인지 궁금해 한다. 어느 쪽이 한국 사회의 정치 및 사회 개혁에서 의미 있는 선택인지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정의당 역시 지난 십 오년 동안 전개된 한국 사회의 진보정당 운동의 결과는 다르게 ‘어떤 선택을 내릴지 모르겠는 알쏭달쏭한 정치세력’의 범주에 포함되어 버린 것이 현실이다.
새정치신당이 초록색을 가져간다면?
▲ 안철수 무소속의원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추진위원회 청년위원회 해오름식에서 청년위원 등 참석자들과 함께 국민의 귀로 듣겠다는 의미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에서 부르길 가칭)‘안철수신당’은 (그들이 부르길 가칭)‘새정치신당’이 되었다. ‘가칭’일지언정 당명에서 ‘새정치’의 지향 내지 내용이 드러나길 바랐던 것은 무리였다. ‘새’와 ‘신’의 반복에서 보이는 강박은 이들 스스로도 그 내용이 정립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가지게 한다.
기성정당의 한계를 질타하며 출범하는 정치세력의 정체도 오리무중이라는 것은 한국 사회의 ‘정치의 실종’ 현상의 화룡정점이다. 어쩌면 새정치신당이 이 정국에서 ‘안철수’라는 개인을 넘어선 다른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민주당이 두고 간 ‘초록색’으로의 회귀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는 ‘색의 삼원색’의 혼란에 덧씌워진 ‘빛의 삼원색’의 혼란으로 귀결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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