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부부 문제에 개입하여 해결책을 제시하고(아침 마당), 가상 결혼을 하고(우리 결혼했어요), 결혼을 앞둔 적령기의 남녀에게 소개팅을 주선하고(짝), 가족을 만들어주던(사남일녀) TV가 이제 재혼에까지 발을 들였다. JTBC의 <님과 함께>가 그것이다.

재혼을 화두로 삼은 프로그램은 <님과 함께>가 처음은 아니다. <아침 마당>에서도 종종 재혼 문제가 등장했었고, <짝>에서는 '돌싱'간의 만남을 특집으로 다루어 화제를 끌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특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님과 함께>는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가상의 재혼 부부를 등장시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하며 재혼의 리얼리티를 예능의 소재로 끌어들인다.

이 프로그램이 비록 종편이라고는 하지만 그 중 가장 대중적 반응을 얻고 있다는 JTBC에서 정규 방송으로 편성되었다는 것은, 한 해 840쌍이 결혼을 하고 그 중 398쌍이 이혼을 한다는 50%에 가까운 이혼율을 보이는(OECD국가 중 3위)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중년층을 주된 타깃으로 삼고 있는 종편 JTBC에서 재혼을 담론으로 삼은 것은 <님과 함께>가 보여주고 있는 환타지성과 무관하게, 중년의 삶의 질에 있어 재혼이 더 이상 방치될 문제가 아니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는 확신의 반영이기도 하다.

<님과 함께>는 두 쌍의 가상 재혼 부부를 등장시킨다. 일찍이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부부의 모습을 연기했던 박원숙-임현식, 그리고 배우 이영하와 전 농구선수 박찬숙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면면엔 재혼이라는 화두에 대한 제작진의 생각이 담겨 있다. 두 쌍의 재혼 부부 중 두 사람은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이혼을 한 사람들이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재혼의 사유가 되는 이혼과 사별을 통한 경험들을 담으려는 배려가 있었을 것이다.

박찬숙과 임현식은 배우자와 사별했다. 그래서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평생을 함께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함께 결혼 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반면 박원숙과 이영하의 경우는 다르다. 왜 재혼을 하지 않으시냐는 박찬숙의 질문에, 이영하는 한번의 이혼으로 그렇게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또 겪고 싶지 않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나마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있었음을 은연중에 내비친 이영하는 나은 편이다. 상대방으로 인한 고통이 컸던 박원숙은 결혼이라는 자체에 대한 지겨움을 표명했고, 도대체 왜 그러면 가상 재혼 부부 예능이 등장했는지 의문이 될 정도로, 임현식이든 누구든 재혼이라는 자체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시한다.

덕분에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가상 재혼이라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려는 이영하-박찬숙 부부와, 재혼 자체에 부정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박원숙과 그의 재혼 남편으로 떠맡겨진 임현식 부부의 생활은 모양새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영하-박찬숙 부부가 이영하의 집을 배경으로 재혼이라는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장도 보고 밥도 같이 먹고, 어떻게든 함께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애쓰는 반면, 당장 임현식-박원숙 가상 부부에겐 강렬하게 피력되는 박원숙의 재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먼저 경주되어야 하는 기묘한 상황이 되었다. 드라마에서도 언제나 갑이었던 아내 역할의 박원숙과 그 앞에서 쩔쩔매던 을 역할의 남편 임현식의 관계가, 재혼이라는 말만 들어도 징그러워하며 벽을 치는 박원숙과 그런 그녀와 어떻게든 재혼 비스무리한 분위기를 내보고자 들이대는 임현식의 관계로 치환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첫 회의 박찬숙의 딸이 보내준 커플 잠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달달한 분위기를 낸 이영하-박찬숙 부부와, 손 한번을 잡아주어도 감읍하는 박원숙-임현식 부부의 관계가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첫날 장을 보러 갔을 때부터 참아야 했던, 그리고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진 이영하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잔뜩 도배된 이영하의 집이 그다지 탐탁지 않았던, 그리고 가사일의 통제성을 선호하는 박찬숙의 허니문이 얼마나 지속될지 역시 의문이다. 20여 년을 부모 밑에서 살아왔던 젊은이들도 결혼이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기 버거워하는데, 이미 또 다른 배우자와의 경험, 그리고 홀로 살아 온 삶의 틀이 공고해진 중년의 삶이 재혼이란 장치를 통해 얼마만큼 유연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재혼이라는 말만 들어도 징그러워하면서도, 혼자 하기 버거웠던 커튼 달기며 앞마당 정리 같은 일들을 척척 해내는 임현식을 다시 보는 박원숙에게서,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닫아왔던 삶의 봇물이 터졌을 때, 그리고 배우라는 길을 오래 함께 걸어왔던 두 사람의 유대로 인해 오히려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박원숙-임현식 부부의 앞날을 점쳐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디 그 어떤 것이 되었든, 그 과정이 가상 재혼의 판타지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재혼의 고민을 성의 있게 담아주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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