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이제 입시철이 끝났으려니 하겠지만 아직도 수험생들에겐 한창 입시철이다. 물론 일찌감치 수시를 통해 합격의 기쁨을 맛본 이들도 있겠지만 그건 일부일 뿐, 정시라는 능선에 추가 합격이라는 깔닥고개까지 넘어야 하는 이들도 있다. 수능 시험을 보는 그날부터 대학 입학식이 치러지는 그날까지. 아니 아이들이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모들의 입시전쟁 시작이라고 하는 편이 대한민국 실정에 맞을 것이다. 그렇게 길고 긴 장정을 마치고 아이들은 사실은 냉엄하게 순위가 정해진 저마다의 대학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대학 입학이 끝이 아니다. 2부 인재의 탄생에 멘티로 참가한 서울대 법대 김성령에 따르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들어왔다는 기쁨이 딱 1주일 갔다고 한다. 딱 1주일, 그간 참아가며 공부했던 성과에 대한 기쁨에 들떴지만 그도 잠시 곧 대학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마주한 현실에 EBS 다큐 프라임이 시선을 돌렸다. 6부작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는 1부 <어메이징 데이>로 시작됐다. 그렇게 힘들여 들어온 대학, 그 대학에서 대학생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44개 대학에 학생들로 이루어진 촬영팀이 6개월간에 걸쳐 대학 생활을 밀착하여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데 어메이징 데이라는 말이 역설적이게도, 청소년 시절을 쏟아 부어 들어간 대학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전혀 어메이징하지 않다. 강의실에서 그들은 교수가 초등학생처럼 별을 준다고 해야 어쩔 수 없이 질문을 하는 수동적 리스너였고, 짓누르는 등록금에 대학생활을 즐길 새도 없는 생활인이었고, 취직이라는 또 다른 관문에 허리 한번 펼 사이도 없는 수험생들일 뿐이다.

그렇다고 현실의 압박을 견뎌낸 그들이 보란 듯 이른바 '인재'가 되는가? 그렇지도 않다. 이어지는 2부, 3부 인재의 탄생은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재의 현실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우리 사회 인재상을 다시 그려가겠다는 목적 하에 2부 <인재의 탄생>에서 다섯 명의 멘티들이 선정되었다. 지방대를 나왔지만 중국에서도 각 성에서 1등만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베이징대에 합격하여 다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종다양한 스펙으로 입사지원서를 채우고도 남을 김관우. 그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에서 압도하고 남을 서울대 법대 졸업생 김성령. 그에 반해 항상 지방대라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대구 카톨릭대의 엄지아 등이 그 면면이다.

드러난 조건으로만 보면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방향성을 잃고 사시를 보지 않은 김성령이나 지방대인 엄지아에 비해, 베이징대에 온갖 스펙을 갖춘 김관우가 인재라는 말에 어울리는 품새이다. 김관우 자신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좀 더 취직에 도움이 될 무언가를 얻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사 전문가, 호주대사관 교육 참사관, 인재 스카우터, 감정코칭 전문가, 인재 육성 전문가로 구성된 멘토진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심지어 워크샵에서 만난 모 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대놓고 자기라면 김관우를 뽑지 않겠다는 말까지 한다. 멘토들은 김관우와 같이 외면적 성과만으로 자신을 채워가는 학생을 가장 위험군에 속하는 학생이라 평가를 내린다. 그에 반해 자존감이 떨어지는 엄지아의 경우에는 그녀가 자신에 대해 혹독하게 내리는 평가와 달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

<인재의 탄생>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지금 필요한 인재가 수많은 스펙를 쌓기만 하면, 토익 점수만 놓으면 되는 것일까? 대학을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고개를 들 틈도 없이 취직 공부에만 매달리는 그 현실이 인재로 가는 지름길일까? 라고.

그리고 다큐는 시청자들이 가장 솔깃해할 사람의 주장을 얹는다. 삼성경제 연구소에서 나온 면접관은 그를 인터뷰하러 간 멘티를 통해 이 시대 부모들에게 말한다. '제발 부모들이 자식을 좀 내버려 두면 좋겠다고. 부모 세대에서 잘 나가던 직업과 직종이 더는 잘 나가지 않는 다른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그래서 <인재의 탄생> 2부에선 전혀 다른 과정을 통해 인재를 재탄생시킨다. 블라인드 식사 면접과 스튜디어 멘토링을 통해 멘티 각자를 판단한 멘토진들이 내린 첫 번째 미션은 하루 한 시간을 걷거나, 30분을 주 5일 동안 꾸준히 하는 것이다. 멘토진들은 이를 통해 무엇이든 매일 꾸준히 하는 삶의 방식으로부터의 변화를 유도하고자 했다. 하지만 겨우 꾸준히 걷거나 뛰는 미션에 불과함에도 늘 요점 정리와 예시 문제풀이에만 익숙했던 멘티들은 이 미션의 의미도 헤아리기 힘들어 하고,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건 더 힘들어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어서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돌아보는 미션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변화되지 않은 멘티들은 자신의 조건에 침잠되어 있는 결과물을 내보였다.

하지만 6개월 동안 자신의 장점도 찾고, 홀로 걸어보고, 또 그곳에서 지인도 만나는 등 다종다양한 미션을 거치면서, 다섯 명 모두는 아니지만 대다수의 멘티들이 변화되어간다. 그저 성과를 통해서만 자신을 설명하던 김관우가 삶의 방향을 어렴풋이 찾아나가고, 방향을 잃고 우울증에 빠져있던 김성령이 자부심을 회복했다. 무엇보다 지방대라는 이름표로 인해 루저라는 규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엄지아는 자신의 학력을 넘어서는 장점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멘토진이 주장하고자 한 것은 인재란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자기중심에 있는 그 무엇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했고, 6개월이라는 과정을 통해 멘티들은 그것을 찾아내었다. 진짜 인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결국 되묻게 되는 것은 그렇다면 지금 대학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인재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다큐는 사회를 책임질 인재를 길러내야 할 우리의 대학이 학생들을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취직 대비 준비반에 모아두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짚었다. 대학 이름표가 그럴듯해도 사실은 쓸모없는 인재를 양산하거나, 지방대라고 하여 기회조차 주지 않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단 6개월에 불과했지만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달라진 네 멘티들의 모습에서, 진정 인재로 거듭난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 대학 교육의 방향을 묻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