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다보스포럼에서도 ‘통일은 대박’을 반복했다. <한겨레>의 지적처럼 ‘어떻게’는 사라지고 통일의 효과만을 강조하는 수사였다. 다만 국내정치용 ‘대박’이 동북아국가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국제정치용 ‘대박’으로 확장되었을 뿐이다.

정부는 계속해서 부인하지만, 이런 태도는 정부가 ‘북한 급변사태로 인한 흡수통일’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인상을 주게 한다. 진보진영에선 박근혜 정부가 과거 김영삼 정부나 이명박 정부의 ‘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행태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은 24일 아침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서 "평화통일이 대박이라 생각하고, 흡수통일은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 24일자 한겨레 4면 기사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판단에 개연성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행태는 동일할지라도 김영삼 당시나 이명박 당시에 비해 현재의 북한 사정이 안 좋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것은 경제적 문제는 아닐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김일성 사후 북한 붕괴를 기다린 시기는 저 유명한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또한 북한의 근황을 보도한 매체들은 북한 인민들의 경제사정과 식량사정이 장마당 등 시장경제요소의 도입으로 인해 몇 년 전보다는 나아졌다고 전한다.
따라서 만일 현재 북한 사회가 불안정하다면 이는 권력구조의 문제일 공산이 크다. 이에 대해선 정부가 공개되지 않은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언론계 안팎의 관계자들은 <조선일보>의 신년특집 통일 시리즈를 주목하며 <조선일보>와 청와대 사이에 모종의 정세판단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정부가 '북한 급변 사태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의중의 일단을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면 두 가지 정도 의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나는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국민들의 태도변화를 촉구한다는 것이다. 둘은 '북한 급변 사태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듯한' 행동 자체가 북한의 권력층에 보내는 하나의 사인으로, 이 행위를 통해 북한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지금은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통일에 다소 미적지근한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약 급변사태의 가능성이 정부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눈에 보일 정도로 현실화될 때라면 어떨까. 굳이 정부가 나서서 홍보해주지 않아도 민족주의적 열광과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결합한 들뜬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홍보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홍보하는 건 실질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서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반면 두 번째 가능성이라면 북한의 상황에 따라 성립할 여지는 있다. 심리전에는 정답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소 이상한 정황도 보인다. 최근에는 북한이 손을 내밀고 남한이 이를 강단 있게(?) 거절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들은 마치 북한이 급해서 손을 내민 것처럼 해석하고 의기양양해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그들이 잘해서 온, 기분 좋아해야 할 상황일까?
▲ 24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24일자 <중앙일보>는 외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우려한다. 대부분의 신문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다보스포럼에서의 연설에 더 주목하는 시점에서 이례적인 접근이다. 비방 중단 제안을 했지만 오히려 이것이 도발 직전의 제스처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대남 도발 시도는 대체로 체제유지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대박’이라는 말에 담긴 흡수통일의 뉘앙스가 그들을 더 자극해 ‘도발’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없을까? 대화제의에도 응하지 않는 현재 한국 정부의 태도는 도발도 불사하겠다는 것으로 잘못 읽힐 수도 있다. 급변사태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것인데 이에 대응하다가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이다.
현재 북한의 어려움이 경제문제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인도적 지원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또한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교류협력 제의에 응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영향력을 더 확대하는 길일수도 있다. 현재의 ‘통일은 대박’ 운운하는 처신은 대북정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안보우방들과의 교류협력을 활성화하여 북한을 링으로 끌어내겠다는 지침 정도만이 들어줄 만한데, 이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추진하면서도 충분히 병행가능한 일이다.
‘대박’을 강조하는 사이 김정은은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한반도의 분위기는 냉각되었다. ‘대박’으로 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 길의 곳곳에는 ‘도발’이라는 지뢰가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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