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던졌으나 민주당과 이해관계는 없는 이들이 지금의 정치국면에서 하고 있을 생각들을 요약해보자. 첫째, 그들은 박근혜 정부의 통치와 새누리당의 통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거의 경악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둘째, 그들은 민주당에 대해서도 정권교체를 이루어낼 만한 정치세력이라 믿지 못하고 있다. 이 불신의 감정도 꽤나 뿌리깊다고 봐야 할 것이다. 셋째, 그들은 민주당을 불신하기에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는 있지만, 그것이 2011년에서 2012년 사이에 그랬듯 안철수 개인에 대한 기대는 아니다. 그들은 ‘안철수 신당’에 대해서도 왜 빨리 당을 만들지 않는지 불만이고 과연 당을 만들기나 할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넷째, 그들은 민주당을 대체할 새로운 정당을 바라기는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의 통치엔 비교적 만족하기 때문에 서울에선 야권의 다른 후보가 출마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동주민자치센터에서 열린 '제물포터널 갈등 조정 주민협의회' 1차회의에 참석해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서울시와 제물포터널 백지화 여의도비상대책위원회는 제물포터널 공사를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날 주민협의체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가졌다. (연합뉴스)
정의당 후보 출마, 타당성은 100, 가능성은 10
그러나 안철수 신당과 정의당 측에서 차례로 서울시장 선거에도 출마할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서울시장 선거도 다자구도가 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권 안팎과 언론계의 분석을 종합해 보자면, ‘시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제법 높다’.
정치권 안팎의 많은 관계자들은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건너뛰는 것은 지방선거 자체를 건너뛰는 것과 거의 비슷한 얘기다”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장 선거는 단지 그 지방에 국한된 선거가 아니라 전국 단위로 이슈화되는 유일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손학규나 김문수 같은 경기도지사 출신들과 이명박이나 오세훈 그리고 박원순을 비교해보라”라고 설명했다. 그 관계자는 “손학규나 김문수도 경기도지사로서의 능력에 대해선 제법 호평을 받았다. 어쩌면 그들이 경기도에서 남긴 업적이 서울시장으로 대단히 호평받은 이명박보다도 더 크다”라고 주장했다.
즉 경기도지사의 중량감은 손학규나 김문수처럼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제한되지만 서울시장이 되면 단숨에 대선 주자급으로 부상한다는 얘기다. 현 박원순 시장 역시 정치인으로서의 이력이 짧지만 서울시장 선거에서만 언급되지 않고 대선 주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럴 정도니 정치세력의 입장에서도 자기 당을 홍보하기 위해서라도 서울시장 선거를 완전히 건너뛰기는 어렵다.
정의당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정의당 측이야 독자 출마할 명분은 충분하지만 실제로 서울시장 선거에서 자기 당을 홍보할 만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2010년에 진보신당 당적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노회찬 전 의원이 곧 선거권을 회복하기는 하지만 당시에도 '한명숙 낙선'에 대한 비난을 많이 들었던 만큼 다시 결심을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 정치부 기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이루어졌던 야권연대를 보면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야권연대가 쉬운 선거”라고 설명한다. 규모가 다른 선거를 함께 치르니 서로 간에 주고받는 것이 쉽고 많다는 것이다. 경남 같은 곳은 중앙당이 지침을 내리기도 전에 예상 후보들끼리 야권연대에 들어가기도 한다. 다른 정치부 기자는 “(정의당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는) 타당성은 100이지만, (완주) 가능성은 10”이라면서 “출마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의 ‘딜’을 위한 출마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안철수 신당, 노리는 건 호남이 아닌 서울?
▲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15일 서울 여의도 새정치추진위원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민주당은 ‘안철수 신당’이 호남에서 성과를 낼까봐 긴장하고 있다. 당직 개편에서도 ‘친노’ 색깔을 빼고 호남 색깔을 추구하는 등 사실상 ‘안철수 호남 입성’을 막아낼 공성전을 준비 중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은 말하자면 신성 로마제국이다. 제국을 자처하나 영토는 도이칠란트 밖에 없다. 그런데 민주당의 도이칠란트는 뭐냐, 호남이다. 안철수 신당이 호남을 공략한다면 그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민주당 역시 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철수 측 인사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묘하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접촉해본 바로도 대체로 “호남은 지금은 지지율이 높아도 쉽지 않을 것”이라 말하면서도 “서울시장 선거는 반드시 후보를 낸다”고 공언하고 있다. 어찌 보면 민주당을 압박하기 위한 기만 행위(Fake motion)일 수도 있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자면 이 자체가 본심을 드러내면서 본심을 숨기는 이중 기만(Double Fake)일 수도 있다.
한 정치부 기자는 “안철수 측은 반드시 서울시장에 후보를 낸다고 본다”고 단언한다. 그는 “지난 대선 이후 외유에 나설 때부터 안철수의 머릿속에 야권연대란 없었다”고 진단한다. 합리적인 야권 지지자라면 안철수 측이 박원순의 낙선을 이끌어 내어 역풍을 막기 보단 서울시장 선거에 개입하는 척 하다가 민주당과 모종의 거래를 하여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성과를 내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신당’의 계산은 일반적인 야권 지지자들의 그것과는 다른 것일 수 있다는 것이 일부의 분석이다.
안철수 측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을 여의도에 입성시킨 재보궐 선거에서도 그랬듯 야권연대의 요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도권에서의 다자구도 승리를 기획하려고 의도한다는 시선이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람들은 박원순의 인기가 높다고 생각하지만 인기와 충성도는 또 다른 얘기다. 박원순의 지지가 충성률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고 민주당 조직도 박원순을 ‘민주당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은 안철수 측이 후보를 내면 박원순 낙선의 원흉이 되어 비난을 받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안철수 측 후보가 3등을 했을 경우의 얘기다. 2등만 해도 야권 분열의 책임은 안철수 측이 아니라 민주당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95년 ‘조순’과 ‘박찬종’의 사례
또 다른 관계자는 “안철수 측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다자구도에서의 2등도 아닌 1등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전략의 관건을 ‘호남 출신 후보 섭외’로 꼽았다. 그는 “안철수 측이 호남을 직접 공략하려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상 호남 사람보단 수도권의 호남 출신들이 민주당을 포기하는 문제에서 훨씬 더 유연하다”면서 “안철수 측이 의도하는 것은 1995년 조순-박찬종-정원식 구도에서의 조순의 승리일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최초의 민선 서울시장 선거에서 신한국당(현재의 새누리당) 정원식 후보에 맞서 야권은 조순과 박찬종 후보를 출마시켰으나 무소속 박찬종 후보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정계 복귀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지원을 받은 조순이 당선된 바 있다. 이는 김대중 총재에 대한 민주당 지지층의 폭넓은 지지와 수도권 호남 출신들의 응집력을 보여준 사례로 풀이된다. 이는 수도권에선 3자구도에서의 야권 승리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이나, 문제는 세월이 지난 지금 누가 조순이고 누가 박찬종인지가 애매하다는 것일 게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지방선거 국면을 맞아 수도권에서 ‘호남 민심’을 경쟁할 수 있다는 증언은 매우 흥미로운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안철수 측이 중량감 있는 서울시장 후보를 섭외하려 한다는 점도 지방선거의 관전 포인트다. 또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행사에 찾아간 것을 계기로 ‘안철수의 김상곤 영입론’까지 대두한 만큼, ‘안철수 신당’의 수도권에서의 행보도 주목해야 할 만한 시점이 되었다. '서울 탈환'이란 구호가 새누리당의 것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민주당의 고민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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