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론사의 시경캡이 경찰서에서 만취한 상태로 폭행 및 기물 파손을 범했으나 시경 기자단에선 출입금지 3개월로 끝나는 경징계에 그쳐 논란이 예상된다.

복수의 기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8일 저녁 <한국경제> 시경캡이 만취한 상태에서 시경 홍보운영계에서 일하는 직원을 폭행하고 홍보실 및 홍보담당관실 기물을 파손하는 사고를 쳤다. 한 기자는 “당시 기자실에는 기자들과 경찰들이 4~5인이 있었는데 만취한 기자가 다짜고짜 욕설을 했고 이에 경찰이 항의하자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그 시경캡은 다른 홍보실 직원들이 자신을 붙들고 시비가 붙은 직원을 끌어내자 홍보실 및 홍보담당관실에 들어가 컴퓨터 등을 박살냈다고 한다.
▲ 지난 2012년 '조선일보'가 진행했던 '주폭 근절 캠페인'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조선일보의 이 보도에 호응해 강력한 주폭 근절 치안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주폭 시민 잡던 경찰은 그러나 주폭 기자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한 모양이다. 사진은 조선일보의 주폭 캠페인 관련 기사.
이에 기자단에선 13일에 시경 출입기자단 회의를 열고 <한국경제> 시경캡에 대한 징계 여부 및 수위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13일의 회의에서 ‘출입금지 3개월’이라는 사안에 비해 경미한 징계가 결정되었다. 단, 징계기간 내에 <한국경제> 시경캡이 교체되더라도 새로 오는 캡 역시 출입금지가 적용된다. 문제를 일으킨 시경캡은 폭행당한 직원과 경찰 측에는 사과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 언론사에서 '시경캡'의 위상은 독특하다. 과거에는 종합일간지에만 존재했고 경제지엔 없었던 시경캡은 '각종 사건 취재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린다. 과거보다 위상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예전에는 각 언론사에서 기사가 딸린 차를 보내어 출퇴근을 시켜줄 정도였다. 기본적인 경찰 관련 사건은 물론 해당 기관을 넘어서는 모든 사건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자리라고 인식되어 있다.
시경기자단 상황을 아는 한 기자는 “기자들의 소소한 폭력 사태는 종종 있지만 기자가 경찰관을, 게다가 시경캡이 폭행하는 상황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개인적인 사과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전체 언론과 경찰서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시경기자단 규약의 품위 유지 조항을 훼손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 다른 기자는 “각 언론사 시경캡 20여명이 모여 참석자의 2/3 이상이 찬성했을 때 징계가 이루어진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시경기자단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13일 회의는 몇 시간에 걸쳐 몇 번의 투표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시경기자단 상황을 아는 한 기자는 “징계를 해야 한다는 데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면 징계의 수위를 결정하는 투표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투표를 몇 번이고 했다는 것은 시경기자단의 일부는 <한국경제> 시경캡에 대한 징계 자체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시경캡들의 결정에 대해 시경 기자 및 일선 기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자는 “당연히 제명까지 갈 사안이라고 생각했다. 출입금지라도 1년도 있고 6개월도 있는데 3개월은 처벌 시늉만 한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다른 기자는 “기자들끼리 ‘저 정도(징계로 끝날 것이)면 나도 경찰 패고 다녀야겠다’라고 빈정거리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 미근동 경찰청 경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기자들은 시경기자단의 폐쇄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놓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자는 “어떤 시경기자들은 경찰이나 동료 기자들로부터 얻은 고급정보를 ‘찌라시’에 팔아 넘기는 경우도 있다”면서 “그런 종류의 ‘특혜’가 있기 때문에 책임 있는 언론사만 들어오라는 식으로 ‘관리 대상’이 제한되고 카르텔이 형성된다”고 분석했다. 그 기자는 "기자단 문화는 특혜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한다는 취지도 분명 있으나, 이번 '캡 난동 기자단 경징계'를 본다면 그러한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마땅히 특혜에 맞는 책임이 있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기자는 “그런 추태에 대한 징계를 반대하는 기자들은 ‘구악’이라고 부를 만하다.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출입처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추태가, 출입처에서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나아가 전체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기레기’ 소리 듣는게 지겹지 않은가 보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기자는 "해당 사안은 기자단에서보다는 언론사 내부에서 징계를 결정하는 게 맞는 사안일 수가 있다"라면서도 "그렇더라도 엠바고 파기 문제에선 출입금지 1년, 2년이 허다하게 나오는 징계가 3개월에 그친 것을 기자 사회 외부에서 보면 납득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미디어스>에서 인터뷰(링크)한 일본의 비판적인 언론학자인 아사노 겐이치 일본 도시샤대학 미디어학과 교수는 일본의 출입 기자 제도를 비판하면서 이는 “회사가 권력과 협의해 만든 방에 출입하며, 이 방을 출입할 수 있게 등록된 언론만 언론행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며 “이 시스템에서 언론은 필연적으로 권력과 가깝게” 되기에 “일본의 기자는 저널리스트가 아닌 회사원”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그 출입 기자 제도를 일본과 함께 유이하게 가지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면, 시경기자단의 촌극은 단순히 한 집단의 도덕의식의 부재가 아니라 한국 언론의 구조적인 병폐를 드러내는 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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