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부터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의 ‘수 싸움’이 심상치 않다.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설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한 바 있다. 작년 이산가족 상봉이 나흘을 앞두고 취소된 것은 안타깝다며, 인도적 차원에서 설 연휴 전에 이산가족 상봉을 가지자는 말이었다. 다음날 한국 정부는 북한 측에 정식으로 이러한 제의를 했다.

정부는 북한 측도 김정은의 1일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언급했기 때문에 이 제안을 거절하기가 어려을 것이라고 낙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북한 측은 9일에 이산가족 상봉 제의를 거절했다. 북한 측은 “총탄이 오고가고 있는데 마음 편히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겠냐”라며 한미합동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 10일자 조선일보 6면 기사
이후 한국 정부와 남한 언론에서는 북한 측의 거절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를 분석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북한에 경제적 이득이 되는 금강산 관광 문제와 엮으려 한다는 해석, ‘북한 급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발언과 훈련에 불쾌해 한다는 해석, 북한 권력 측의 내부 사정이 아직 정돈이 안 되었다는 해석 등 다양한 분석이 있었다.
물론 이 모든 해석이 타당한 부분이 있지만 정부 측의 해석은 다소 낙관론에 기울었다. ‘좋은 계절’을 언급하기도 한 만큼 곧 북한 쪽에서 금강산 관광 문제를 포함하는 역제의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였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10일에 두 문제를 분리하는 것은 여전하다고 말하면서도 금강산 관광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다시 밝혔다.
이제 다시 공은 북한에게 넘어간 것일까? 정부는 그렇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연이은 수 싸움에서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 10일자 동아일보 4면 기사. 정부는 의례적인 훈련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기사에 따른다면 실제로는 대단히 큰 규모의 훈련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가 외교적 ‘전선’을 너무 넓게 확대했다는 것이다. 연초부터 정부와 <조선일보>는 무슨 정보를 공유했는지 ‘북한 붕괴론’에 대한 기대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8일 미국을 방문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과의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6자회담과는 별도로 북한 정세를 논의하는 고위급 협의를 갖겠다고 밝혔다. 이를 한미 간의 협의만이 아니라 다자 간의 협의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하면서,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두는 듯한 발언을 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거절하면서 말한 "언론과 전문가, 당국자들까지 나서 무엄한 언동을 하였다"는 이를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영세 장관의 발언이 미국 측과 조율된 것인지 아니면 돌출된 희망사항인지를 떠나서, 이러한 구상으론 중국이나 러시아를 설득하기가 매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작년에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를 잘 만들어둔 탓에 방공식별구역 논란도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다자 간의 합의 운운은 그들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는 길이다. 임기 1년차에서, 내치는 몰라도 외교에선 성과를 냈다고 주장해온 박근혜 정부의 역량이 이 문제에서 삐걱거리게 될 수도 있다.
▲ 10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일본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야스쿠니 신전 참배 문제로 일본과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중국과 일본과의 갈등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에 놓여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방공식별구역 문제의 경우 일본과는 양해를 하며 지내왔던 것을 중국 측의 일방적인 선언 때문에 한국 역시 새로운 선을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문제로 중국과 협력해서 일본을 ‘포위’하는 듯한 기분을 냈지만, 중국에게 한국 측의 지지는 그리 중요한 변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미 9일자 신문에서 과거사 문제에선 일본을 비판해야 하지만 안보적 측면에선 협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하였다. 사실 이런 제언이 없더라도 한국은 이미 미국의 동아시아 구상에서 일본과 함께 중국을 포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까지 포섭하여 북한을 ‘포위’하겠다는 한국의 구상은 여기와도 충돌하게 된다.
▲ 9일자 중앙일보 8면 기사
결국 한국은 스스로 북한도 압박하고, 일본도 압박하고, 중국에게도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정신승리’일수도 있는 상황이다. 물론 북한 측의 사정이 있을 것이기에 그들이 한국 정부의 제안에 적당히 장단을 맞춰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지금처럼 ‘북한 붕괴’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가지고, 동북아시아의 어지러운 정국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적 효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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