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는 26일 오전 11시 서울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밀양송전탑 공사 중단하고, 정부와 한전은 고 유한숙 어르신께 사죄해야 합니다>란 제목의 회견문을 발표했다. 대책회의는 내년 1월 25일, 2차 밀양희망버스가 출발하며 765kv 송전탑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상징으로 765명의 희망버스 발의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 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는 26일 오전 11시 서울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디어스
1차 밀양희망버스는 노동계 중심의 발의로 지난 11월 30일 전국 26개 지역에서 2천 5백여명이 출발하여 60여일의 봉쇄를 뚫은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지역 주민 유한숙씨가 “살아서 그것을 볼 바에야 죽는 게 낫겠다. 그래서 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천주교 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으로부터 “언제나 희망버스 1호차에 타셨다”라고 소개받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희망보다 자유가 그리운 적이 있었다”라고 말을 꺼냈다. 백기완 소장은 “하지만 어느 순간 ‘자유’는 ‘희망’을 살리는 핏줄에 지나지 않구나, 라고 생각했고 그 즈음에 마침 생긴 희망버스를 따라다녔다. 철도노조 싸움도 급하지만 밀양도 급하다. 분향소도 못 만들게 하는 공권력을 용서할 수가 없다. 몸이 죽을 정도 상태가 아니라면 이번에도 가겠다”라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 지영선 공동대표는 “추석 이후 4개월 동안 힘없는 노인들이 공권력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안도 제시하고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도 공권력은 묵묵부답이다”라며 현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이 사태는) 밀양 어르신들이 종종 말하듯 ‘도대체 국가란 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 그래서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강연에서 밀양 얘기를 많이 얘기한다. 밀양 주민들은 처음에는 자기 땅, 자기 마을을 지키려던 분들이었다. 그런데 투쟁의 와중에 다른 세상,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만나게 되셨다. 8년 동안 투쟁하면서 투쟁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박래군 상임이사는 “우리가 그분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운동 현장에 그분들이 감자와 고구마와 고추를 들고 와서 힘을 보탰다. 그분들의 투쟁이 성공하지 않고선 핵중심 발전산업, 전력정책이 바뀌지 못한다. 그분들은 에너지정책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라고 주장했다.
기륭전자 투쟁에 참여했던 금속노조 기륭분회 유은희 조합원은 “11월 30일에 내려가서 힘이 되어 드렸다 믿었는데 많이 모자랐던 것 같다”라며 마을 주민들의 연이은 죽음을 애석해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최고위원은 “통합진보당이 밀양 투쟁에 합류하면서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탈핵 희망버스’를 조직한 바 있는 노동당과 녹색당 두 당에서도 사람을 보냈다. 노동당 이봉화 부대표는 “밀양, 철도노조, 의료민영화 투쟁 등이 조금씩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르다. 서로 연대하고 같이 싸워서 이겨내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녹색당 이연주 운영위원장 역시 “목숨을 버리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달라지는 게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있다. 그런데 지역주민 여러분들이 오히려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다. 이기는 싸움이다’라고 말씀하셔서 힘을 얻는다”라고 말하며 희망버스에의 결합을 다짐했다.
2차 밀양희망버스가 출발하는 내년 1월 25일은 고 유한숙 씨의 49재 날이라고 한다. 또 대책회의는 내년 1월 4일 ‘밀양 송전탑 공사 저지 신년회’를 밀양시내에서 열 것을 예고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의 전문이다.
▲ 기자회견 참석자 중 세 사람이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미디어스
밀양송전탑 공사 중단하고, 정부와 한전은 고 유한숙 어르신께 사죄해야 합니다.
죽음의 송전탑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1월 25일, 2차 밀양희망버스가 출발합니다!
지난 11월 30일 전국 26개 지역에서 출발한 밀양희망버스를 탑승한 2천 5백여명이 넘는 밀양의 친구들은 밀양 주민들과 함께 60여일의 봉쇄를 뚫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도 잠시, 우리는 또 한 분의 죽음을 맞아야만 했습니다. “살아서 그것(송전탑)을 볼 바에야 죽는 게 낫겠다. 그래서 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는 고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에 밀양 주민도 밀양의 친구들인 우리도 다시 한 번 가슴에 대못이 박히고 말았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고 유한숙 어르신이 세상을 떠나신 당일에도, 경찰과 한전이 공사를 중단하지 않으며 어르신의 죽음에 예의조차 갖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경찰은 오히려 보도자료를 통해 고인의 죽음의 진실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밀양시내에 마련하려던 분향소를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결국 유족과 밀양주민들은 지금도 비닐 한 장에 의지해 노숙을 하며 분향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유족과 밀양주민들은 한전 사장을 만나기 위해 상경하였지만 한겨울 한전 앞에서 경찰과 한전 직원들에 의해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다시 찾아온 절망은 쉽게 가시지 않아 12월 13일 또 한 분의 주민이 음독을 시도했습니다. 경찰은 이때에도 상태를 확인하고 병원으로 후송하려는 다른 주민들과 119을 막아서는 패륜을 이어갔습니다. 고인이 돌아가신지 20일이 되는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이 죽음의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정부와 한전, 그리고 경찰은 즉시 고인 앞에 사죄하고 공사를 중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남아 있는 희망도 보았습니다. 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는 지난 12월 12일부터 22일까지 서울시청광장에서 고 유한숙 어르신의 서울 시민분향소를 운영하였습니다. 각계의 많은 분들이 분향소를 찾아 조문해 주셨고 밀양을 향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회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3일에는 정파를 초월한 80명의 국회의원들이 뜻을 모아 <밀양 765kv 송전탑 공사 중단과 정부와 송전선로 경과지 주민과의 대화 촉구 결의안>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국회 법사위는 정부와 한전이 서두르던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송주법) 제정안의 처리를 유보하며, 법안 통과에 앞서 한전과 밀양대책위 사이의 충분한 대화를 촉구했습니다.
오직 정부와 한전만이 묵묵부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새로운 싸움을 준비합니다. 2014년 1월 25일(토), 밀양을 향해 전국에서 또다시 2차 밀양희망버스가 출발합니다. 우리는 1차 밀양희망버스를 통해 확인한 희망의 고리를 다시 연결하고, 또 그보다 더 큰 희망을 세울 것입니다. 어느새 2014년 1월 16일은 고 이치우 어르신의 2주기이며, 1월 23일은 고 유한숙 어르신의 49재입니다. 밀양송전탑 공사 중단을 염원하시며 세상을 떠나신 두 분 어르신의 죽음을 더는 헛되게 할 수 없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더는 잃을 수 없습니다.
고인의 죽음에도 끝내 답하지 않는 한전과 정부, 끝내 밀양을 옥죄고 있는 경찰, 그리고 끝내 멈추지 않는 밀양송전탑 공사! 이 죽음의 송전탑 공사를 멈추기 위해, 정말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다시 2차 희망버스를 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멈추게 할 것입니다.
2013년 12월 26일
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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