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박정희 미화' 다큐에 대해 우려하는 시민사회의 기자회견을 막아서 시민사회로부터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사가 맞느냐"는 거센 반발을 샀다.

▲ 17일 오후 2시, KBS 청경들이 "(윗선의) 지시"라며 기자회견 장소를 막아서 언론노조 KBS본부 관계자들이 항의하고 있는 모습. 이 과정에서 몇 차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언론노조, 민언련, 언론연대, 민족문제연구소는 당초 오늘(17일) 오후 2시 KBS 본관 계단에서 '현대사 왜곡프로그램 저지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KBS 청경들은 "(윗선의) 지시"라며 기자회견 장소를 봉쇄했다.

김현석 언론노조 KBS본부장 등은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언론사가 기자회견을 막아서는 게 말이 되느냐"며 거세게 항의했으나, KBS 청경들은 "지시"라면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몇 차례의 실랑이 끝에, 기자회견은 당초 예정됐던 본관 계단의 앞쪽에서 청경들에게 둘러싸여 진행됐다.

▲ 언론노조, 민언련, 언론연대, 민족문제연구는 17일 오후 2시 KBS 본관 계단에서 '현대사 왜곡프로그램 저지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27일 첫 방송 예정인 '다큐극장'을 규탄하기 위해 마련된 기자회견에서는 기자회견 조차 막아서는 KBS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KBS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다큐를 방영할 당시인 2011년 이곳 KBS 앞에서 비를 맞으면서 투쟁했었다"며 "당시 우산도 가져다 주던 청경들은 (2년이 지난 후인) 지금에 와서는 KBS를 찾아온 손님에 대해 'KBS 땅을 밟지말라'는 유치한 발언이나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2011년에는 항의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라도 들어주려고 하더니 이제는 KBS가 그 마저도 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통해) 박정희를 되살려야 했기 때문에 눈치라도 봤는데, 이제 박정희가 살아나니 거리낌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학진 국장은 '다큐극장'을 준비 중인 KBS를 향해 "KBS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방송을 하려는 게 아니다. 스스로 국사편찬위원이 되어 대한민국 역사를 다시 쓰려는 것"이라며 "나라를 망하게 하려면 역사를 왜곡하라는 말이 있는데, KBS가 지금 이 나라를 망하게 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이렇게 되면 수신료 거부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희완 민언련 사무처장은 "오늘처럼 청경들이 떼로 몰려나와 플래카드를 짓밟고 기자회견 자체를 막는 경우는 처음 본다. 수신료를 내는 국민들이 KBS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자 찾아왔지만 이 조차도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라며 "정권홍보방송을 하는 KBS의 수신료를 절대로 인상시켜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KBS가 지난 11일 언론 3학회와 함께 '공영방송 공적책무와 재원적 기초'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수신료 인상에 시동을 걸고 있지만, 시민사회 기자회견 조차 막아서는 현 상태로는 수신료 인상이 요원하다는 KBS 내부의 지적도 제기됐다.

KBS 기자 출신인 이경호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데 도움을 줄 시민단체와 얼굴을 붉히며 싸우면 수신료 인상이 되겠느냐.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길환영 사장은 후배들을 위해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해 주고자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유임을 위해 수신료 인상을 원하는 것"이라며 "다큐극장 역시 유임을 원하는 길환영 사장이 정권에 바치는 진상품"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석 언론노조 KBS본부장 역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듯, KBS 정문 앞을 보면 KBS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 프로그램에 대해 할 말 있다고 찾아온 시민사회를 밀어내고, 비정규직 운전노동자들은 파업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KBS의 현실"이라며 "수신료 인상을 입에 올릴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함철 KBS 기자협회장은 "기자회견 조차도 마음대로 못하는 현실이 부끄럽다. KBS가 수신료를 받을 자격이 있느냐"며 "수신료를 받으며 당당한 뉴스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으나 작금의 현실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KBS가 박정희 미화 프로그램을 만드는 현실로까지 나앉게 됐다"며 "길환영 사장이 '제2의 김재철'이 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김재철 사장은 (회사의 발전보다는) 사장직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길환영 사장도 다를 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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