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비극을 전문으로 다루던 작곡가가 희극을 만든다면 그 맛은 어떤 맛일까.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이는 <팔스타프>는 베르디 작곡 인생에 있어 유일한 희극 직품이다. 셰익스피어의 '헨리4세'와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베르디의 <팔스타프>는 아카펠라와 푸가 등 다채로운 음률의 향연을 선사하는 희극 오페라다.

이번에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이는 <팔스타프>는 다채로운 음율의 향연이라는 청각적인 요소를 논외로 하고 시각적인 요소로 살펴보면 미장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 팔스타프가 알리체에게 추파를 던질 때 입는 스코틀랜드 치마 킬트, 체크무늬로 이루어진 무대 디자인은 <팔스타프>의 배경이 원작처럼 16세기 말이 아닌 20세기 초의 영국 윈저임을 나타내는 미장센이다. 체크무늬와 킬트는 영국과 스코틀랜드 문화가 아니면 찾을 수 없는 영국의 고유문화를 상징하는 미장센이다.

▲ ⓒ 국립오페라단
팔스타프가 등장할 때 무대 위 배경의 그림은 민망할 지경이다. 여자의 가슴이 클로즈업된 채 누군가의 한 손이 여자의 한쪽 가슴을 만지고 있다는 건 팔스타프의 여성 편력을 상징화한 미장센임에 틀림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벽에 진열된 사슴의 두개골 위로 돌출된 사슴 뿔 역시 팔스타프의 여성 편력을 상징화하는 미장센이다.

사슴의 뿔과 여성의 가슴을 만지는 손이라는 미장센은 홍상수의 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여자에게 틈만 나면 껄떡대는 남자 캐릭터 마냥 팔스타프 역시 여자에게 툭하면 작업을 걸기 바쁜 껄떡쇠라는 걸 보여주는 시각적인 상징물이다.

온실 속으로 다른 이가 들어왔을 때와 펜톤과 난네타가 들어왔을 때 무슨 차이가 있는가를 비교해 보라. 펜톤과 난네타가 사랑을 나누는 온실의 조명은 다른 이가 온실에 들어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연인의 사랑은 온실의 기운조차 따뜻하게 물들임을 보여주는 시각적 장치임에 틀림없다.

▲ ⓒ 국립오페라단
<팔스타프>는 요즘 드라마와는 대척의 위치에 있는 오페라다. 요즘 드라마의 대세는 ‘복수’다. <돈의 화신>이나 <야왕>과 같은 일련의 SBS 드라마는 복수라는 트렌드로 진수성찬을 차리는 중이다. 남의 여자라 할지라도 치마만 두르면 껄떡대며 정신 못 차리는 팔스타프 역시 남편의 시각으로 보면 복수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한 귀로 흘려듣고 여자에게 작업 걸기 바쁜 찌질이 늙은 기사에겐 복수라는 답례품이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팔스타프가 껄떡대는 유부녀의 남자들은 팔스타프에게 복수는 하되 가혹한 응징은 하지 않는다. 이는 한결같이 비극으로 치달았던 베르디의 기존 작품 세계와는 정반대의 온정주의적 시선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팔스타프>의 온정주의는 베르디의 기존 작품 세계를 관통하던 비극적 결말에서 벗어나는 희망의 징조이기도 하면서 복수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선의 변화를 보여준다. 복수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용서’가 꽃을 피우고 있다. ‘세상만사는 장난일 뿐’이라는 노래는 복수 대신 용서가 자리할 때 가해자인 팔스타프와 피해자인 유부녀와 그의 남편이 벌이는 한바탕 화해의 장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용서의 하모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