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조원(배용준 분), <위험한 관계>의 셰이판(장동건 분), 오페라 <돈 지오반니> 속 돈 지오반니 같은 악명 높은 플레이보이들에겐 공통된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이 무엇인가 하면 바람둥이는 여자와 같이 있기는 하되 상대하는 여자가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이다. 여자를 농락하는 것이 목적이지 여자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에 이들이 여자를 울리는 나쁜 남자, 바람둥이로 남는 것이다. 여자를 농락하되 절대로 마음은 주지 말아야 한다. 그것만이 플레이보이로 장수하는 길이자 여러 여자를 농락하는 길이다.

이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오수(조인성 분)에게도 마찬가지로 통하는 법칙이었다. 오영(송혜교 분)은 오수가 이용해야 할 대상이다. 78억을 갚지 못하면 조무철(김태우 분)에게 목숨을 빼앗길 위기에 빠진 오수가 마지막으로 의지할 건 오영의 돈이다. 오수가 처음 목적한 것은 오영의 돈이었지 오영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수는 플레이보이의 법칙을 스스로 깬다. 이용해야 할 대상인 오영에게 감정이입함으로 말이다. 오영이 목적이었다면 오수는 2회에서 플랫폼에 기차가 다가올 때 뛰어내리려던 오영을 붙잡지 말았어야 옳다. 그녀가 죽어야 거짓 오빠인 오수에게 오영의 유산이 돌아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오수는 그러지 않았다. 지하철에 뛰어내리려는 오영을 붙잡고, 조선(정경순 분)에게 연결해달라고 조무철 앞에서 무릎을 꿇기까지 한다. 조선에게 수술을 받아야 오영이 치료받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오수는 무릎 꿇는 것에 족하지 않고 조무철의 무자비한 폭행 공세도 감내해야 했다. 굴욕을 감내한 결과, 조무철은 조선에게 연결해주겠다는 답변을 건네듣는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에 오수의 생명줄을 닷새 단축시키겠다는 조무철의 치명적인 제의를 오수는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 중요하지 않다는, 바람둥이의 법칙에 또 한 번 금이 가는 걸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숨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내하려 한다는 건 오수가 바람둥이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 여자를 진실로 사랑할 줄 아는 남자로 거듭난다는 걸 뜻한다. 동시에 오수가 오영을 사랑한다는 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조원, <위험한 관계>의 셰이판이 걸었던 길을 답습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기도 하다.

바람둥이 조원이 숙부인(전도연 분)에게, 셰이판이 뚜펀위(장쯔이 분)에게 마음을 주고 사랑에 빠졌을 때 그 결과가 어떠했던가. 사랑하는 여자인 숙부인, 혹은 뚜펀위와 행복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조원과 셰이판은 생명을 잃고 만다. 마음을 주지 말아야 할 이용 대상에게 마음을 주는 바람둥이의 결말은 행복한 사랑이 아니었다.

오영을 사랑하는 오수의 앞길이 밝아 보이지 않는 건 오수가 조원 혹은 셰이판이 걸었던 선례를 따라가고 있어서다. 바람둥이는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 옴므 파탈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결과는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비참한 결말만이 옴므 파탈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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