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백이면 99, 사랑의 달콤함에 관해 노래한다. 가령,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오수와 오영이 남매라는 가족 관계를 넘어서 시랑에 한 발자국씩 다가서는 모습을 보면,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타나토스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이들 두 남녀의 사랑의 달달함이 죽음 본능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연애의 온도>는 정반대다. 사랑의 달콤함이 휘발하고 남은 사랑 이후의 감정은 사랑과는 정반대로 찌질하다. 남녀의 격렬했던 사랑이 지나간 뒷자리에는 사랑했던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옛 연인에 대한 애증과 회한이 자리한다.
사랑의 아련함 대신에 찌질한 복수극으로 옛 연인에게 복수한다. 데이트 비용의 십중팔구는 자기가 지불했다고 이야기하는 동희에게 영은 동희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가장 싼 음식만 시켰다고 반론한다.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는 언제 머리 터지게 싸웠냐는 듯 평온한 일상으로 서로에게 다가선다. 상대방을 위해 커피를 타놓는 식으로 말이다.
동희와 영이 피 터지게 싸우다가 서로의 자리를 인정한다는 건 퀴블러 로스가 언급한 죽음의 5단계와 일정 부분 궤를 같이 한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의 다섯 단계란 부정-분노-타협-우울-순응의 순서다. 동희와 영이 헤어진 후 서로에게 태클 걸고 치열하게 싸우는 건 죽음의 다섯 단계 가운데서 분노에 해당한다. 영과 동희가 서로에게 분노한다는 건 죽음을 앞둔 환자가 죽음을 인정하기 못하고 화를 내는 것과 매한가지다.
이별은 마음 아픈 헤어짐이다. 그 헤어짐이 쿨하지 못하면 동희와 영이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서로에 대한 앙금이 남는다.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미움이 지나간 자리에는, 미움의 앙금이 가신 자리에는 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퀴블리 로스의 이론대로라면 순응의 단계에 접어든다는 걸 영화는 쿨하게 보여준다. 사랑에 갓 입문한 연인에게는 달갑지 않겠지만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랑 숙맥, 혹은 권태기에 접어든 연인이라면 동희와 영의 쿨하지 못한 헤어짐을 달리 바라볼 수 있는 영화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