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원작이라도 누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령 원작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주인공이 도로시라는 어린이지만 뮤지컬 <위키드>에서는 주인공이 마녀,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은 마술사가 주인공이다.

또한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누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맛깔 역시 달라지게 마련이다. 마술사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인지라 영화는 마술사 오스카의 성장담으로 진행된다. 마술로 눈속임은 할 줄 알지만, 다리가 불편해 일어나지 못하는 소녀의 다리는 고치지 못하던 가짜 마술사가 오즈를 마녀의 손아귀에서 구하는 위대한 마술사로 탄생하는 성장담이다.

오즈는 마법의 나라다. 마녀의 마술은 오즈의 나라 일반 백성이 보기에는 경이롭고 진기한 힘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딱 하나 없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오스카는 알고 있다.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에서 오즈의 나라에 없는 딱 한 가지는 ‘화물 숭배’ 정신과 궤를 같이 한다.

화물 숭배란 다음과 같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전혀 알지 못하는 원시부족 마을에 어느 날 하늘에서 놀랄만한 물건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원시부족의 마을에 떨어진 물건은 현대인이 비행기로 하늘에서 떨어뜨린 구호품과 식료품이다. 그런데 이 부족 사람들은 이 물건들이 다른 사람들 손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 신이 주신 물건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금 하늘에서 구호품과 식량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원시부족 사람들이 현대인의 첨단과학이 빚은 구호품과 식량을 과학의 산물이 아닌 신의 손이 빚은 선물로 착각하고 다시 신이 진귀한 선물을 주리라 숭배하는 사상을 화물 숭배라 한다.

오즈의 나라에 없는 단 한 가지는 ‘과학’이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닐 줄은 알아도, 안개로 눈을 가릴 줄은 알아도 도자기 소녀의 깨진 다리를 붙이는 접착제와 같은 과학의 힘은 모르는 사람들이 바로 오즈의 나라 사람들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닌 과학이라는 어느 CF 문구 말마따나 과학을 아는 오스카가 날개 달린 원숭이를 구하는 것도, 도자기 소녀에게 다리를 고쳐주는 은인이 되는 것도 알고 보면 모두 과학의 힘 덕분이다. 하지만 오즈의 나라 사람들은 과학을 모르니, 과학을 아는 오스카의 손길은 그야말로 마술사의 손길과 다름없어 보인다.

일상에서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난국의 위기에서는 영웅이 되어 나라를 구한다는 서사구조는 <잭 더 자이언트 킬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과 <잭 더 자이언트 킬러> 모두 새로운 서사가 아니라 관객에게 익숙한 서사를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동화 혹은 소설의 재해석으로 바라볼 수 있음과 동시에, 요즘 할리우드가 얼마나 소재 고갈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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