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대와 연대를 막론하고 금기는 항상 금기로 남아있지 않는다. 금기는 깨지라고 있는 법이기 마련이다. 하와는 신이 그토록 금지한 선악을 알게 만드는 과일을 먹고, 판도라는 열지 말라고 경고했던 상자를 기어이 열어보고야 만다. 나무꾼은 아내에게 주지 말아야 할 선녀옷을 순진하게 건네주고는 아내와 자식을 잃는다. 이 모든 건 금기는 깨지라고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여기, 금기가 또 하나 있다. 마법의 콩을 교환한 수도사는 콩을 건네받은 잭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콩이 물기에 닿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수도사가 경고한 대로 잭이 콩을 물에 닿게 하는 일이 없었다면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룻바닥에 흘린 마법의 콩이 흘러내린 비를 맞아 갑자기 거대한 콩나무로 자라면서 수도사가 경고한 금기는 깨지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터미네이터의 그 유명한 대사인 “I`ll be back"처럼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재미난 대사가 있다. 공주 이자벨에게 시비 거는 불한당을 막아서는 잭에게 불한당들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납작 엎드린다. 잭의 뒤에 왕의 호위무사 엘몬트가 공주를 호위하기 위해 등장할 때 잭이 ”내 뒤에 누가 있는 거지?“라는 대사를 날린다. 이 대사는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다시 한 번 되풀이된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동화인 ‘잭과 콩나무’, 영국 민화 ‘잭 더 자이언트 킬러’의 서사 가운데서 잭의 성장담에 큰 공을 들인다. 거인은 사람을 공격하는 덩치 큰 괴물을 넘어서서 사람을 즐겨먹는 식인괴물이다. 수레와 말을 콩 한 줌과 맞바꾸는 어리숙한 18살 소년이, 기사도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거인에게 물 먹이는 ‘영웅’으로 탄생하는 성장담에 기초하고 있다.

칼을 든 용맹한 기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식인괴물 거인을 한 명도 제거하지 못한다. 도리어 거인을 처치하는 건 칼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 없는 평민 청년 잭의 몫이다. 소녀시대의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가사 말마따나 미약한 소년이 공주와 왕국을 구하는 영웅으로 탈바꿈한다는 건 거인을 발판 삼아 자기도 몰랐던 ‘거인 잡기’라는 재능을 깨닫는 영웅 이야기와 다름 아니다.

하나 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혹은 북유럽 신화인 ‘마법의 반지’ 신화 일부도 덧입힌다. 온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마법의 반지를, 영화는 거인을 지배할 수 있는 왕관으로 치환하고 있다.

거인의 심장을 녹여 만든 왕관을 쓰는 자는 거인이든 인간이든 종족을 막론하고 거인의 왕이 되어 거인족을 다스릴 수 있다. 거인이 한 입에 베어 무는 약해빠진 인간이라도 이 왕관을 쓰기만 하면 거인이 왕관을 쓴 인간을 손 하나 대지 못하니 거인의 왕관은 북유럽 신화 속 마법의 반지에 비견할 만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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