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고속버스 기사가 승객을 가득 태우고 고속버스를 몰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만 고속버스의 브레이크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아 기사와 승객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고 만다. 다행히 노련한 기사가 기지를 발휘하여 감속시킬 수 있었고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운전기사의 혈중 알코올 수치가 기준치를 넘어섰다면?

<플라이트>의 초반부는 영락없는 재난영화다. 기장 윕 휘태커(덴젤 워싱턴 분)의 노련미가 발휘되지 않았다면 상공에서 심각한 기체 결함을 일으킨 비행기를 무사히 불시착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윕 휘태커가 직면한 항공 사고를 다른 파일럿이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한다. 하지만 윕 휘태커처럼 사망자만 여섯이 나오게 만들 수 없었다. 백이면 백, 항공기에 탑승한 전원이 사망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오기에 항공 관계자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윕 휘태커는 분명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영웅으로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불시착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한 우리의 영웅에게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과정에 치명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했다. 비행 전날 부어라 마셔라 한 것도 모자라 비행 중에 보드카를 마신 탓이다. 알코올에 절은 기장이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면 이 사고의 책임은 비행기 기체 결함 탓이 아니라 음주 비행을 한 기장의 불찰이 될 수밖에 없다.

영화 초반부의 항공기 불시착 이후 <플라이트>는 ‘선택’이라는 문제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취재진을 피해 은신한 농장에서 윕 휘태커는 잠시나마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남아있던 모든 종류의 술을 하수구로 버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음주 비행으로 사방에서 끊임없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상황에서도 윕 휘태커는 정신 못 차리고 계속 알코올을 마셔댄다. 윕 휘태커의 자유의지는 알코올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알코올이 주는 마력을 잊지 못해 옛 습관, 알코올 중독이라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알코올을 들이부어야 하는 딜레마의 선택 말이다.

또 하나, 윕 휘태커가 청문회를 무사히 빠져나와 비행 조종간을 계속 잡고 싶다면 양심과는 반대되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술을 마시지 않고 비행했다는 거짓 진술을 해야만 법망을 피해 무사히 비행을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양심의 목소리를 따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윕 휘태커의 양심을 따르면 그는 청문회에서 사실대로 실토해야만 한다. 그는 더 이상 비행기를 조종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선택은 양심을 속이지 않는 최선의 길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플라이트>는 두 가지 선택에 관하여 질문하는 영화가 된다. 하나는 알코올을 선택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묻고, 다른 하나는 윕 휘태커가 양심의 목소리에 순응하느냐 그렇지 않고 거짓말로 법망을 빠져나가느냐 하는 두 가지 선택에 관하여 묻는 영화다.

선택은 아프다. 진실된 선택을 하면 거짓된 선택을 하는 것에 비해 그만큼 쾌락이 크다.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알코올 중독이라는 걸 감안하면 아들과의 화해를 위해서라도 알코올이라는 쾌락을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쾌락이냐 가족애냐, 양심을 따르느냐 파일럿 신분을 유지할 것이냐 하는 주인공의 선택의 무게가 녹록치 않아 보이는 건 이 때문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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