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러브드>는 어느 날 갑자기 신발 한 켤레 때문에 운명이 바뀌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마들렌은 직장에서 몰래 갖고 나온 한 켤레의 구두를 신다가 어떤 신사와 마주친다. 그런데 그 신사는 마들렌이 호객 행위를 하는 줄 알고 마들렌에게 화대를 흥정한다.

흥정을 딱 잘라 거절하면 될 것을, 마들렌은 신사와 잠자리 대가를 흥정하고는 남자를 침대로 끌어들인다. 훔친 구두 한 켤레가 마들렌을 몸 파는 여자로 만들고는, 미래의 남편감인 자호밀도 만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 빨간 구두 한 켤레가 한 여자의 운명을 뒤바꿔놓는다. 만일 마들렌이 직장에서 구두를 몰래 갖고 나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창녀가 되지는 않았을 테고, 그렇다면 미래의 남편 자호밀과 만났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을 테니 말이다.

<비러브드>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건이 마들렌의 전체 운명을 바꿔놓는 러브스토리다. 마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데이지가 불의의 사고로 더 이상 발레를 하지 못하는 사건을 보여줌에 있어 우연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로 모일 때 교통사고라는 최종 결과물로 이어지는 시퀀스처럼, <비러브드>의 마들렌이 자호밀을 만나기 위함이라는 최종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마들렌이 구두를 훔치는 우발적인 사건이 선행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삼각관계의 러브스토리다. 마들렌과 자호밀의 사랑은 오래 가지 않는다. 딸까지 낳아놓은 자호밀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맞기 때문이다. 마들렌은 모국 프랑스로 다시금 돌아와 다른 남자와 재혼하지만 마들렌은 자호밀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사랑한다. 마들렌과 자호밀, 마들렌의 남편이라는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삼각관계 사랑은 어머니 당대에만 국한하지 않고 딸에게도 유전된다. 마들렌의 딸 베라에게는 육체관계로까지 발전하는 클레망이 있다. 하지만 베라는 클레망보다는 헨더슨에게 관심이 많지만 헨더슨과는 클레망처럼 육체적 관계로 진전하지 못한다. 헨더슨이 동성연애자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딸의 삼각관계를 면밀히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삼각관계 안에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가 따로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엄마 마들렌은 재혼한 남편과 함께 살지만 첫 남편 자호밀을 잊지 못하고 그와의 육체적 관계를 지속한다. 딸 베라 역시 지금 살을 섞는 남자 클레망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헨더슨을 사랑한다. 지금 곁에 함께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을 수 없는 남자를 사랑하는 삼각관계가 어머니 당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딸에게까지 유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자석이 어디 내 생각대로만 되던가. 구두 한 켤레 때문에 창녀가 되지만 그로 인해 평생의 인연을 만나는 것처럼 <비러브드>는 불가항력인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마들렌과 베라가 어디 삼각관계 사랑을 하고 싶어 하겠는가. 이성으로는 납득 못할 불가항력적인 사랑의 마법에 걸리는 여자의 운명이 대를 잇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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