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있다고 하면 선거운동 과정에서 많이 보이는 얼굴들이 있다. 아무래도 선거운동이란 게 해본 사람만이 아는 무언가 기술이나 전략 같은 것이 있나보다. 그렇게 보이는 얼굴들은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등을 가리지 않는다. 개인의 친분 때문에 개입하게 되었다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 잘 보이던 얼굴들이 민간단체 옥천 문화의 수장이라는 문화원장 선거에서도 보이니 참 이 선거가 갈 데까지 갔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 옥천문화원 홈페이지 캡처

옥천문화원장 선거는 말 그대로 옥천문화원 회원들의 큰 심부름꾼을 뽑는 선거다. 문화의 시대라는 21세기에 문화예술을 중요시하고 문화예술이 꽃피는 일상을 꿈꾼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행복한 일이다. 모든 계층이 그렇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이즈음에는 더욱이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한다. 그래서 중요한 문화원장. 그런데 옥천문화원장 선거는 해도 해도 너무했다. 일단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250명 정도이던 회원이 선거를 6개월여 앞둔 시점에 갑자기 1천500여명으로, 6배가 늘어났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차기 문화원장을 꿈꾸는 후보들이 자신의 선거에 유리하게 하려고 회원을 동원하고, 회비까지 대납해준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문화원 정관에는 문화원장을 선출하는 투표권은 6개월 전에 가입한 회원에게 부여되고 회원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당장 회원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특정 후보가 회비 대납과 아울러 회원을 동원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지 않는 한 불법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회원 수가 불과 1개월 여 기간 동안 1천300명가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누가 봐도 적절치 않은 행태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문화원 회원이 이처럼 크게 늘어나는 일은 고무적이라는 해석도 내놨다. 그동안 문화예술 발전에 관심이 없던 주민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진다는 것인데 중요한 발전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해석은 적어도 이 사람들이 자발적인 의사를 가지고 자신이 내놓는 회비로 가입된 사람이라야 가능한 것이다. 회원 동원과 회비 대납 문제는 처음부터 제기된 문제였으나 실제로 여러 증언을 통해 확인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전화가 온다. 주민번호와 주소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주민번호 먼저 대라는 답변이 나오고, 가르쳐주니 문화원 회원 가입 때문에 그런단다. 그 사람은 문화원에 가입할 때는 회비가 있는 줄도 몰랐다. 회비를 대납해주는 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들은 문화원 회원이 되었다. 회비가 있다는 말을 들은 신입 회원들도 회비는 걱정 말라는 답변을 들었다. 친구로부터의 부탁이니 그저 좋은 일이겠거니 했다. 문화원에서 어떤 일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지 사실 알 필요도, 관심도 별반 없었다.

# 문화원장 선거전이 치열하다. 이건 무슨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대결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랬다. 한 후보는 문화원장을 한 임기만 하겠다는 해놓고 거짓말을 쳐서 한 번 더 하겠다고 나섰다는 말이었고, 또 한 후보는 가족들이 대전에 거주하고 있다는 말이 선거 막바지로 갈수록 쟁점이 되었다. 그리고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식당으로 불러냈다. 어떤 이는 이 후보가 참석한 점심시간에도, 저 후보가 내는 저녁시간에도 참석한다는 말을 듣곤 했다고 전한다. 회원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밥 선거’가 이루어졌다는 증언들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선거가 과열 현상을 빚으면서 회비대납을 통한 회원동원도 모자라 유권자들의 표심을 밥으로 산 선거가 되었으니, ‘거꾸로 가는 선거문화’에 문화원장 선거가 충분히 한몫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이미 지역에서 이루어진 조합장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거꾸로 시계추를 돌리려는 잘못된 선거문화를 이미 겪었고, 그로 인해 수백 명의 옥천군민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법의 판단을 받는 과정에 있다. 이번 문화원장 선거는 그동안 있었던 잘못된 선거문화를 그대로 쏙 빼닮은 선거문화였다. 밥으로 회원들의 마음을 사려는 후보자들이나, 공짜밥 준다는 말에 쪼르르 달려가 표를 파는 유권자들의 행태가 미워도 너무 밉다. ‘밥 한 끼 먹는 게 무슨 대수냐?’며 밥 먹고 안 찍어주면 될 것 아니냐는 말은 틀렸다. 참담할 뿐이다.

어떤 선거가 되었든, 21세기를 넘어선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선거의식이 여전히 1970년에나 통했을 ‘밥 선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실 이번에 얻어먹은 ‘공짜밥’ 한 그릇은 공짜가 아니다. 공짜가 아니라 유권자의 양심을 팔아넘기고, 선거문화를 20년 전으로 후퇴시켜 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예산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몇 배 손해인 장사를 한 셈이다. 이미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후진 선거문화의 온상으로 알려진 옥천이기에 더 창피함을 말해봐야 무엇하겠나 싶다. ‘내 얼굴에 침 뱉기’, ‘누워서 침 뱉기’란 말도 이해한다. 옥천만 더 창피해지는 것 아니냐는 힐난도 받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진작 이런 비정상적인 사태를 막지 못한 옥천주민의 한 사람으로, 또 문화원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 때문에라도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이다. 나아가 임기 내내 이런 소동을 멍에처럼 안고 업무를 수행할 문화원 임원들이 차제에 비정상적인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낼 것을 촉구한다.

어쨌든 2월1일 실시된 선거는 끝났고, 당선자는 정해졌다. 옥천주민들의 큰 관심을 끈 탓에 유권자 1천551명 중 1천228명이 투표에 참여, 79.1%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선거는 언제나 관심을 끄는 것이긴 하지만 선거 초반 내내 투표를 위해 시간을 내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도대체 저 많은 사람들은 왜 문화원 회원이 되려고 했지?”
“이번에 새로 가입한 사람들 중 자발적으로 가입하고 회비를 자신의 돈으로 낸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투표를 마치고 나가던 한 지인이 한 마디 툭 던진다.

“이렇게 동원돼서 투표하는 것도 우습고 창피한 일일세!”

각자 가슴속에 커다란 소우주를 품고서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어합니다. 그 소통과 공유를 바탕으로 연대의 틀을 마련하여 이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바꾸고자 합니다. 이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의 필요성은 두말 할 나위가 없겠죠. ‘작은 언론’입니다. 지역 주민들의 세세한 소식, 아름다운 이야기, 변화에 대한 갈망 등을 귀담아 들으려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