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피 카이 예이’라는 의성어를 기억한다면 당신은 분명 다이하드 시리즈의 팬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수많은 액션 히어로들 가운데서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 분)만이 낼 수 있는 의성어이기에 그렇다. 뉴저지의 007인 존 맥클레인이 이번에는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해외로 진출한다. 모스크바에서 아들이 3년 동안 공들인 작전에 우연히 끼어들어 아들의 작전을 본의 아니게 망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이기 시작한다.

원래 존 맥클레인 형사는 독고다이 스타일의 액션 히어로다. 적어도 3편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4편부터는 독고다이 스타일을 버리고 버디 무비의 형태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5편은 4편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는 버디 무비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는 물량공세로 밀어붙이는 액션 영화다. 전투용 MRAP 장갑차량은 수십 대, 아니 수백 대의 메르세데스 벤츠를 부수고 또 부순다. 할리우드의 현대판 마초의 아이콘이 된 존 맥클레인 형사는 최근의 시리즈에서 기계와의 사투를 벌이는 경향이 강하다.

전작에서 F-35와 맞짱 떠야만 했던 존 맥클레인은 이번엔 공격형 헬기 MI-24와 맞짱 뜬다. 맥클레인 형사가 디지털에 역행하는 아날로그 액션 영웅의 아이콘이 된다는 건 최첨단으로 무장한 적과 싸우는 것도 모자라 F-35 혹은 MI-24와 같은 최첨단 살인 기계와도 맞짱 떠야 하는 아날로그 스타일의 카우보이가 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하지만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는 화려한 물량 공세는 있을지언정 각 시리즈마다 변용되어 오던 존 맥클레인의 가치관을, 아날로그 액션 영웅이라는 아이콘 하나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전작을 사례로 들어보자. 다이 하드 시리즈가 디지털을 100% 배격하는 시리즈는 아니다.

4편에서는 해커와 손을 잡고 테러 집단을 제압한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건을 제압하는 단무과(단순무식과격) 스타일의 형사가 해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다이 하드 4.0>의 결말과 같은 영웅적 성과는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날로그 액션 영웅이 디지털의 총아인 해커와 힘을 합할 때에야 이룰 수 있는 성취를 전작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기존 시리즈의 정체성인, 뉴저지 버전의 카우보이 정신을 계승하는 것 이외에는 창의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다. 시리즈를 하나도 모르는 십대라면 액션에 열광할 팝콘 무비가 되겠지만, 다이 하드 시리즈의 팬이라면 ‘이피 카이 예이’라는 메시지에 담긴 뜻을 이번 신작에서 곱씹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리즈의 가치관을 변용할 가치관을 찾지 못한다는 건 아마도 감독 탓이 클 것 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재작년 존 무어 감독이 5편의 감독으로 기용되었다고 할 때부터 북미 일부 팬은 난색을 표하지 않았던가.

존 무어가 누구인가. 불세출의 ‘망작’ <오멘>과 <맥스 페인>을 만든 감독 아니던가. 이번 신작을 존 무어가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존 무어는 존 맥클레인이라는 아날로그 액션 히어로를, ‘이피 카이 예이’를 힘차게 외치던 뉴저지의 카우보이를 단순한 난봉꾼으로 격하시키고 만다.

반전을 두 번씩이나 집어넣지만 일절 감탄을 자아내지 못하며, 삐걱거리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사건을 해결하는 가운데서 자연스레 부자의 정을 회복한다는 설정이 성긴 것 모두 존 무어의 공이 크다. 물량공세가 다가 아니다. 존 무어에게 박수를. 짝짝짝.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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