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나는 떡만둣국을 좋아한다. 고소한 국물에 졸깃한 떡도 좋지만 여러 가지 재료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큼직한 만두를 더 좋아했다. 어릴 때 떡만둣국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설날.

떡만둣국은 가래떡과 만두만 들어가는 단출한 음식이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기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떡만둣국을 먹기 위해서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예쁘게 썰어놓은 떡을 떡집에서, 마트에서 사면 되지만 그때는 방앗간에 쌀을 가져가 가래떡을 뽑는 일부터 시작했다.

물에 불린 쌀을 이고 지고 방앗간에 가면 이미 줄은 방앗간 밖으로 길에 빠져나와 있었다. 줄 맞춰 길게 늘어서 빨간 고무대야 행렬 끝에 모시덮개로 덮은 우리 집 빨간 대야를 내려놓으면 그때부터 기다림의 시간이다. 기다리는 동안 앞에, 뒤에 있는 사람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승진한 자식 자랑, 1등 한 손주 자랑, 혼기가 꽉 찬 아들, 딸 이야기. 여기서 중매가 성사되어 만나는 일도 있었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완성된다.

SBS ‘생방송 투데이’ 방송화면 갈무리
SBS ‘생방송 투데이’ 방송화면 갈무리

집에 가져온 가래떡은 김이 빠지고 딱딱하게 굳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굳지 않으면 떡을 썰 수 없기 때문에 서늘한 곳에 떡을 펼쳐놓고 만두소를 만든다. 만두소의 하이라이트는 김치다. 돼지고기, 양파, 대파, 두부, 부추를 잘게 잘게 형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썰고, 다지고 하면 대망의 김치가 남는다.

김장 김치 한 포기를 꺼내 빨래 짜듯 비틀어 물기를 빼고 칼로 다지고 다시 짠다. 김치에 배어있는 국물을 완벽하게 짜내기 위해 짤순이를 사용하기도 한다. 미리 반죽해 놓은 밀가루는 밀대로 밀어 얇게 펴서 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를 만들면 만두 빚을 준비가 끝난다.

집에 있는 양은 쟁반을 모두 동원해 만두를 차곡히 담으면 이제 굳은 가래떡을 썰기 시작한다. 떡이 커다란 소쿠리에 산처럼 쌓이면 떡만둣국 한 그릇을 끓일 만반의 준비가 끝난다. 물론 고명이 남아 있지만 고명은 새벽 일로 미뤄둔다. 이미 자정을 넘겨버렸으니 이젠 자야 한다.

어렸을 때는 다 만든 떡만둣국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떡만둣국이 먹고 싶으면 빚는 과정에 참여해야 했다.

어릴 때는 만두를 빚는 게 하나의 놀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만두 리폼의 천재였다. 내가 빚은 만두는 만두피가 헐렁하고 배가 홀쭉한 가난한 만두였다. 어머니에게 훌쭉한 만두를 자랑하듯 보여주면 어머니는 내가 빚은 만두를 리폼했다. 거의 끝까지 만두소를 넣고 만두피를 잡아당기는 솜씨는 만두 장인 같았다. 찢어질 듯한데 찢어지지 않고, 터질 듯한데 터지지 않았다. 속이 꽉 찬 만두는 살이 오른 아기 볼처럼 오동통했다. 

내가 옆에 앉아 성가시게 만두를 만지작거리면 어머니는 반죽을 떼어 주었다. 나는 반죽 뭉치로 토끼 모양 만두를 빚고, 곰 모양 만두를 빚고, 꽃 모양 만두를 빚으면 만두 빚기가 끝났다. 밀가루 분을 얼굴과 손에 곱게 바르고 난 뒤였다.

토끼 모양 만두도, 곰 모양 만두도 아닌 제대로 만두를 빚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만두 빚을 때 필요한 장비인 숟가락이 손에 쥐어졌다. 예쁘게 빚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만두를 빚는 것이 일처럼 느껴졌다. 하루 꼬박 준비한 만두소로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만두를 빚고 나면 차례를 지낼 시간에 나타나 홀랑 먹고 사라지는 친척들이 얄미웠다.

SBS ‘생방송 투데이’ 방송화면 갈무리
SBS ‘생방송 투데이’ 방송화면 갈무리

명절을 지내는 게 즐겁지 않았다. 떡만둣국 한 그릇이 누군가의 고된 노동과 희생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차례만 지내는 친척들은 몰랐다. 손님이 모두 다녀가고 나면 본격적으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몸살이 나고 입술이 부르텄다.

다행히도 이젠 만두를 빚지 않는다. 반찬가게에 가면 빚은 만두를 팔고, 마트에 가면 입맛에 맞는 만두를 살 수 있다. 우리도 이제 만두를 사서 먹는다. 코로나가 시작된 시점부터 만두를 빚어 떡만둣국 끓이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만두를 사서 쓰자는 말에 어머니는 안 된다고 했지만

몇 년 동안의 설득을 통해 만두를 빚는 일에서 해방되었다. 

모일 수도 없는데 만두를 빚는 일은 성가시고, 빚어서 어쩌려고 그러냐는 말에 엄마는 그래도, 라고 말끝을 흐렸다. 요즘 사람들은 많이 사다 먹는다고, 반찬 가게에서 파는 만두도 맛있다는 말에 그럼 알아서 하라고 했다. 사실 이젠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만들어 만두를 빚는 일이 어머니에게 힘에 부친다.

며칠 전 설 명절을 앞두고 미리 성묘를 다녀왔다.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정강이까지 푹 들어갈 정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성묘를 하기 위해 오는 가족이 많았다.

명절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명절 전에 미리 성묘를 다녀오고 명절에는 가족끼리 간단하게 식사하거나 다 같이 여행 가는 것으로 명절의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있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떡만둣국을 먹던 어린 시절에는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만들어 만두를 빚을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맛있는 떡만둣국 가게가 있고, 맛있게 빚어주는 만두 가게가 있다. 변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맞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2024년에도 즐겁게, 행복하게 살도록 잘 부탁드려요.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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