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배우이자 가수인 아이유가 논란에 올랐다. 그는 2년 만의 신보 발매를 앞두고, 앨범 콘셉트와 선공개 곡을 알리는 편지를 써서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이 편지는 “대혐오의 시대”라는 시대 규정으로 시작해 “사랑하기를 방해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한 생각을 담은 “Love wins”라는 제목의 ‘팬송’을 소개했는데, 이것이 성소수자 운동의 구호로 쓰이는 문장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성소수자 운동의 맥락과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는 얘기인데 타당한 지적이다. “Love wins”는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동성 결혼 법제화 판결과 함께 부상한 슬로건이다. 성소수자 운동을 대표하는 구호로서 상징성이 있다. 특별한 정체성을 표지하지 않는 보편적 의미의 ‘사랑’, 혹은 이성애자들의 사랑을 표현하는 문장으로 끌고 간다면 원래 의미와 행간을 침식하고 앗아가는 문화적 전유인 셈이다.

'러브 윈스' 포스터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러브 윈스' 포스터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이후 공개된 앨범 티저 이미지를 보면 우려는 타당했던 것 같다. 아이유는 방탄소년단 멤버 뷔를 섭외해 디스토피아적 배경 속에 이성애자 남녀 주인공의 러브스토리를 표현하는 뮤직비디오를 찍은 것으로 보인다. 아이유 측은 “Love wins”란 슬로건을 “Love wins all”로 바꾸는 입장문을 내며 논란에 대처했다. 슬로건을 바꾸는 이유가 명확하게 표명되지 않은 채 두루뭉술하게 쓰여 있어서 비판의 취지를 온전하게 접수했다고 평가하긴 힘들다.

“Love wins”가 성소수자 운동 구호란 사실을 아이유가 몰랐을 리는 없다. 그렇게 여기는 건 그의 교양 수준을 너무나 낮잡아 보는 태도일 것이다. 알고 있음에도 아티스트로서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유명한 슬로건을 피상적으로 인용한 것이 문제겠지만, 좀 더 들여다볼 부분이 있다면 그가 쓴 편지의 문맥에서 드러나는 현실에 대한 관점이다. 그는 “대혐오의 시대”를 선언하며 “사랑”을 말하고 내 사람들과 함께하고픈 소망을 표한다.

저 의식의 흐름이 품은 어폐는 팬들과 함께 "근사하게 저물고 싶다"는 자족적 소망과 개인의 자의식 전시를 위해 사회적 프레임을 가져오는 것이다. "대혐오의 시대" 같은 상투어는 혐오의 개념을 왜곡한다. 혐오는 단순히 증오 같은 부정적 감정 양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이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차별받는 양상을 아우른다. 혐오의 원인은 사랑의 부족이 아니라 현실의 권력관계에 있다.

아이유가 혐오를 이겨내자며 “사랑에게는 승산이 있다”라고 말하는 건 현실에 대응하지 않는, 낭만적이지만 공허한 읊조림이다. 나아가서 폭력을 낳는 구조를 덮어 버리는 눈가림이 될 수도 있다. 아이유는 “혐오 없는 세상에서 모든 사랑이 이기기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이성애는 용인받으며 동성애는 차별적으로 혐오당한다. “모든 사랑”이 혐오에 노출된 것처럼 말한다면 권력관계를 간과하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의의가 없는 관점이다.

아이유 '러브 윈스' 트랙 인트로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유 '러브 윈스' 트랙 인트로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혐오에 대해 “사랑” 같은 보편적 가치를 말하는 건 페미니즘 대신 휴머니즘하자는 발상과 닮았다. 하지만 그 휴머니즘조차 역사적으로 보편적 인간에서 열외 된 피지배 계층이 사회와 투쟁을 했기에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 성소수자 결혼이 법제화되며 “사랑이 이기”기까지도 숱한 박해가 있었다. 그에 맞서 성소수자를 가시화하려는 저항이 이어졌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에겐 그러한 투쟁 역시 미움과 다툼을 낳는 ‘혐오’로 보일지 모른다.

연예인의 사회적 발언이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것과 사회적 주제를 개인화하는 태도는 다르다. 그 발언이 “대혐오의 시대” 같은 인터넷 주류 여론의 상투적 관점을 받아쓰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건 소신도 용기도 아니다. 8년 전 아이유가 겪은 ‘제제’ 논란을 빚은 도화선은 제3세계 아동학대의 상징이던 소설 속 인물을 자신의 뮤즈로 데려와 ‘도발적’ 묘사를 감행한 창작자의 부박한 사회적 관점이었다.

혐오라는 주제와 성소수자 운동 구호를 끌고 왔지만, 개인적 감성에 도취해 사회적 주제가 공전하며 낭비되는 것이 이번 “Love wins” 논란의 배경이다. 두 논란 모두 진앙지에는 사회적 소재가 진지한 문제의식을 얻지 못한 채 겉치레로 쓰이는 작태가 있다. 8년 동안 창작자 아이유는 얼마나 성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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