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승우 칼럼] 오늘날 한국 대중매체가 처한 객관적 현실은 대체로 어두운 편이다. 몇 년 전부터 제기된 ‘기레기 언론’이라는 사회적 지탄에도 대중매체의 신뢰도가 크게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중매체가 제4부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전체 파이를 키우기 위해 진영과 관계없이 공생의 터전을 만들어 보도윤리, 시장개척과 관리 등에 대한 공론을 활성화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각자도생의 몸부림이 눈에 띌 뿐이다.

한국의 대중매체가 처한 어려움을 살펴보면 그 원인이 한둘이 아니다. 정보사회의 비약적 발달에 따라 첨단 미디어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정보전달 미디어들의 입지는 자꾸 좁아지면서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다. 국내의 경우 십여 년 전부터 포털사이트에 대중매체 소비시장이 장악된 기형적 형태가 정착한 상황에서 OTT 등 새 미디어가 등장해 수익 창출의 시장이 더욱 좁아지고 있다.

종이 신문, 방송 등이 진즉 언론 전체의 공동이익 보호를 위해 네이버‧다음 등에 정보 소비 부분이 예속되지 않는 체제를 갖췄어야 하는 아쉬움이 크고, 앞으로도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한국은 대중매체 소재지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지역 언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데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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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정보환경 변화와 국내 부정적 상황, ‘2중고’ 

정보 생산과 전달을 담당하는 모든 미디어가 ‘정치’와 맺고 있는 관계도 심각하다. 정부가 가짜뉴스 퇴치를 외치면서 앞장서고 있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가짜뉴스는 정보화 시대에 등장한 암적 존재로 대중매체를 매개로 경제적 정치적 부당이익을 취하는 부정적 사회현상으로 정의된다. 대중매체의 보도 과정에서 빚어지는 불가피한 오보는 가짜뉴스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오보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취재원의 비협조가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손꼽힌다. 정부기관 등이 국민의 알권리 차원임에도 취재에 제대로 응하지 않을 경우 오보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대중매체는 보도 이전에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정부기관이 이에 적극 협조하지 않을 경우 오보는 불가피해진다.

예를 들어 대통령실이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대중매체의 확인 요청에 장시간 불응할 경우 발생하는 오보는 취재원인 정부기관에 있다 할 것이다. 오보의 이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가짜뉴스 속에 오보를 포함시켜 단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가짜뉴스는 전문가도 쉽게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것을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의 경우 정부가 기금을 출연해 가짜뉴스 판별 기구를 지원하거나 대중매체가 가짜뉴스를 가려낼 내부 역량을 강화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가 TV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고 연합뉴스 정부구독료를 대폭 감축한 것은 가짜뉴스 퇴치 방식에서 가장 중시하는 공영, 공익언론의 육성에 역행하는 조치다. 유럽연합 등이 가짜뉴스를 근절하기 위해 공영언론의 뉴스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집중지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국가 차원이 아닌, 정권 차원의 미디어 정책에 매몰되어 국제 정세에 눈을 감으면서 국가 미디어경쟁력을 약화시킨 우를 범한 것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가동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짜뉴스 근절을 내세우고 있는 것도 심각하다. 정부는 지구촌 전체 차원에서 정보통신 환경을 바라보면서 국내 관련 기업의 보호,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방송통신정책 관장 기관의 수장을 검사 출신으로 앉힌 것은 가히 국제적 코미디라 할 수 있다. 일부 공영방송에 내려보낸 낙하산 사장이 벼락치기로 싹쓸이하듯 인사조치를 한 것 역시 민주주의, 법치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청부 민원’ 의혹 속에 가짜뉴스를 들먹이며 후안무치한 모습으로 설치는 것은 더욱 가관이다. 법적 뒷받침이 없는 가짜뉴스 기구로 언론을 겁박하는 행위는 보도지침을 앞세웠던 박정희, 전두환 식의 언론탄압 연장선상에 있다는 비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정치가 정권이나 진영논리에 함몰되면 국가 차원에서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정부가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KBS, MBC 경영진을 현직에서 몰아내려 시도한 것도 정치가 제4부인 언론에 대해 과도한 통제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최근 방통위와 방심위에 대해 대통령 인사권을 앞세워 그 위원들의 임면을 비상식적으로 남발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해온 법치,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져 있다. 또한 두 기구가 합의제 기구라는 기본 성격을 원천적으로 짓밟았다는 비판을 자초한다.

KBS, MBC 사옥
KBS, MBC 사옥

매체의 자율적 필수기능 고급화, 첨단화에 노력해야

대중매체가 제4부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율적으로 갖춰 할 필수기능을 시대에 맞게 고급화, 첨단화해야 할 책무 또한 막중하다. 첫째, 환경을 감시하는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는 것이다. 대중매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의 정보를 객관적 시각에서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시민사회는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이해하며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른바 확증편향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유튜브 등의 정보제공과 같이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을 편식하는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를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다 해도 ‘사실 전달’은 객관적이고 진실되어야 하고 평론이나 대안 제시 등에서 차별성을 보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둘째, 대중매체는 조정 역할을 통해 사건과 정보를 설명하고 해석하고 평가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치 현안이나 정당 간 갈등 등에서 진영논리나 특정 정당에 편향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선거 기간에는 대중매체가 후보자의 정책을 소개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일부 방송의 정치관련 시사 논평 프로그램에는 여야 정당인을 등장시키는데 이는 방송이 정당의 선전홍보 기구로 전락해 제4부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셋째 의제 설정 기능이다. 대중매체는 사회 현상에 대한 설명과 분석, 대안 제시 과정에서 언론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언론이 사회를 거울로 비추는 식의 전달 과정에 그치지 않고 독창적인 시각을 구체적으로 제공하면서 그 존재 이유를 확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대중매체의 문화전수 및 오락제공 기능이다. 대중매체는 다큐물,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시민사회의 전통, 가치관과 규범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오락프로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휴식의 기회를 제공한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엽기적이거나 상궤를 벗어난 설정 등을 통해 억지웃음을 자아내게 하거나 미성년자를 성인 프로에 등장시키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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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최대의 경쟁력인 ‘상상력’, 표현의 자유와 일란성 쌍둥이

대중매체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최근 연예인 이선균 씨의 비극에서도 반복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대중매체는 연예인에 대한 경찰의 마약 수사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에 가담하는 식의 문제를 노출했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기사 생산에 열을 올렸다. 대중적 관심사를 언론 상품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이번 사태는 언론이 사회적 현상에 대해 프로 구경꾼이라는 입장을 상실한 불행한 사례다.

일부 방송에서 어린이, 청소년을 연예오락 프로 또는 그와 유사한 호기심 유발 프로에 등장시켜 그들의 초상권과 인권이 훼손되는 부작용이 방치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들 프로에 등장하는 어린이 등이 상궤에서 일탈하는 언행을 할 경우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방영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방송 책무의 하나라는 점을 생략할 수 없다. 이러한 자료는 이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인터넷 등 사이버 공간에서 존재하게 되어 개인의 명예는 물론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서 유명인 등이 자녀와 함께 연예오락프로에 출연하는 것을 삼가토록 하고 있는데 이런 점도 눈여겨 볼 일이다.

취업불안과 고용불안정 등이 일반적이고 1천만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조성된 양극화, 불평등이 심각한 현실을 고려할 때 방송이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중매체가 사회적 공론화, 협의와 공감대 형성을 유도해 전체 사회의 건전하고 행복한 발전에 기여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중매체가 빛의 속도로 발전한다는 정보환경 속에서 상업주의에 빠져 선정적이거나 진영논리를 강화하는 정보전달에 치우칠 경우 사회적 갈등을 악화시키는 역기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에 의한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을 받으면서 사회적 목탁이나 소금, 필수 비타민과 같은 역할에 제약을 받는 현실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대중매체가 갇혀 있는 현실은 한류, K팝 등이 세계인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상황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의 최대의 경쟁력은 표현의 자유와 일란성 쌍둥이인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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