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육지로 이송할 때 그냥 이송하면 폐사하는 물고기가 속출한다고 한다. 육지로 운반하는 수조 속에서 폐사하는 물고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물고기의 천적이 되는 육식성 어류를 한두 마리 넣어두는 것이 비법이란다. 폐사하는 물고기도 모자라 육식 어류까지 넣어두면 수조 안의 물고기는 씨가 마를지도 모를 텐데 대체 무슨 까닭일까.

수조 안에 육식 어류를 넣으면 육지로 운반하는 도중 두세 마리는 희생될지 모른다. 허나 다른 물고기들은 육식 어류를 피해 활발하게 움직이는 통에 폐사하지 않고 살아남는다고 한다. 육식 어류를 넣어 두세 마리가 희생시키는 편이 수조 안에서 폐사하는 물고기의 양보다 훨씬 적으니, 천적이 수조 안 물고기의 생명을 늘려주는 긍정적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천적과 함께 있음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생기는 건 비단 수조 안 물고기의 세계만은 아닌 것 같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주인공 파이는 무서운 폭풍우를 만나 가족을 잃고 망망대해에 떠 있다. 한데 파이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건 사람이나 초식동물이 아닌 벵갈호랑이 리처드 파커다. 사람도 잡아먹을 호랑이, 천적과의 동거가 배 안에서 이뤄진다.

호랑이와의 동거는 생각보다 나쁜 편은 아니었다. 무작정 사람을 잡아먹으려 달려드는 무시무시한 때도 있었지만, 리처드 파커는 물고기 등을 먹으며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주인공 파이 역시 구명보트 밖에서 비상식량으로 연명하며 먹을 것을 해결한다. 한때는 리처드 파커를 익사시키려 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리처드 파커가 있는 편이 없는 편보다 낫다고 판단해서 보트 위로 건져내 구하기도 한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7달이 넘는 표류 기간 호랑이와 동거한다는 설정,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상식적으로는 절대 통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리처드 파커와의 동거는 파이로 하여금 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어준다. 폭풍우로 부모와 형을 모두 잃은 파이에게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마저 없었다면, 자신의 운명 앞에 절망하고 스스로 생을 등졌을지도 모른다.

허나 호랑이와 아웅다웅 다투는 가운데서 파이는 호랑이에게 감정이입하고 생의 의미를 하나하나 되짚어보게 된다. 천적 호랑이와의 동거가 망망대해 가운데서 살아갈 동기를 제공했고, 동시에 내가 왜 이 바다 가운데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의 의미를 제공한 셈이 된다.

또한 <라이프 오브 파이>는 생의 불확실성에 대해 가르쳐 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생의 주인은 나라고 착각하기 쉬운 게 현대인의 사고관이다. 허나 삶이 어디 내가 계획한 대로 운영되어만 가는가? 삶의 계획이 꼬이고, 때로는 한 방에 훅 가기도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파이는 인생이 ‘꼬인’ 케이스다. 인도에서 이민 갈 정도로 잘살던 부잣집 도련님이 망망대해에서 전 재산과 부모, 형제를 잃고 고생하는 이야기다. 망망대해 가운데서 리처드 파커와의 동거라는, 파이가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불확실성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주는 영화다. 자기 인생을 100% 통제 가능하리라고 착각하는 현대인의 사고관에 일침을 놓는 측면도 관찰 가능한 영화가 <라이프 오브 파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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