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사실상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장관 후보자가 임명 강행되는 것은 한국 정치에서 일상이 되었다. 원인을 찾자면 서로를 탓하니 책임을 묻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청문회를 치르다만 장관 후보자의 임명 여부가 현안인 것은 분명 새로운 광경이다. 나날이 새로운 한국 정치는 경이롭다.

형식적 차원에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제대로 치러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청문회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김행 후보자가 일방적으로 청문회장을 떠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국민의힘 일부는(대다수는 그나마도 방어 논리를 포기한 것 같다) 김행 후보자가 이석을 한 것은 잠시에 불과한데 애석하게도 그 와중에 청문회가 끝난 거라는 취지로 주장한다. 야당이 차수변경을 통해 일정을 이어간 것은 여야 간사 합의 없이 결정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거다.

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김 후보자의 자리가 비어 있다. 전날 열린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여당 의원들과 김 후보자가 속개 예정 시간 후에도 돌아오지 않아 정회했다.(연합뉴스) 
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김 후보자의 자리가 비어 있다. 전날 열린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여당 의원들과 김 후보자가 속개 예정 시간 후에도 돌아오지 않아 정회했다.(연합뉴스) 

그런데 이건 본질적 차원에선 그야말로 사치스런 논란이다. 왜냐하면 형식이 아닌 내용을 기준으로 보면 김행 후보자가 제대로 청문회를 치렀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청문회는 검증의 자리다. 후보자는 언론이 제기한 의혹에 제대로 답을 하거나 아니면 잘못을 바로잡을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김행 후보자는 검증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가령 ‘주식 파킹’ 의혹에 대한 김행 후보자의 답을 보자. 김행 후보자 답변의 문제는 의혹 제기의 핵심이 뭔지 모르거나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주식 파킹’이 논란이 되는 것은 이해충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공직을 맡으면서 자기가 갖고 있던 기업 지분을 나중에 다시 받기로 하고 다른 사람에게 매각을 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맡겼다면 이해충돌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김행 후보자의 경우 소셜뉴스 지분을 대상으로 그러한 의심을 가질 만한 정황이 있으니 그것을 해명하라는 게 언론의 지적이다. 그런데 청문회에 이르기까지의 해명은 “불법이 아니다” 정도밖에 없었다. 가령 ‘위장 이혼’이 아니냐고 하는데 “이혼은 불법이 아니다”라고 하면 그게 해명이 되는가?

김건희 여사와의 관계에 대한 논란도 그렇다. 김행 후보자가 김건희 여사를 알고 지내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알고 지냈을 수 있다. 그것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김행 후보자가 별다른 전문성이나 관련 이력 없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됐다는게 본질이다. 이게 논란이 되는 와중에 모 평론가가 “20년 지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발생한 문제다. 그러면 해명의 방점은 자신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될 만한 자격이 있다는 점에 찍혀야 한다. 무조건 “모른다”고만 하다가 얘기가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청문회장에서 나온 답은 언론·정당 등에 ‘40년 경력’이 있으므로 ‘여사 픽업’은 아니라는 거였다.

‘40년 경력’인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그 수많은 ‘40년 경력’ 중 하필 왜 김행인지, 왜 하필 여가부 장관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오히려 김행 후보자가 관여한 위키트리의 반여성적 보도 행태에 대해 마치 언론의 일반적 행태에 불과한 것처럼 답변한 것은 여가부 장관 자격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 잘못을 했으면 반성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왜곡된 답변을 한 것이 아닌가?

오죽하면 조선일보가 반론성 보도를 할 정도다. 조선일보는 6일자 지면 기사에 “언론중재위가 다른 언론사에 대해 시정권고한 사례를 보면 ‘여론조사 보도에 조사기관·표본·응답률 정보 누락’ ‘자살 방법·범행 수법 등에 대한 구체적 묘사’ ‘무죄 추정 원칙에서 벗어난 범죄사건 보도’ 등이 대부분이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 위반과 관련한 시정권고 건이 일부 있지만, 위키트리처럼 선정적인 제목을 썼다는 이유로 지적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김 후보자는 이 같은 차이를 무시하고 시정권고를 받은 건수만 가지고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라는 식의 해명을 한 것”이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토요일자 지면에 <여당과 장관 후보자가 공동으로 청문회를 보이콧한 황당한 사태>란 제목의 사설에서 “아무리 야당 공세가 지나치다 해도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청문회를 받다 말고 사라졌다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했다. 주지하듯 이 신문은 이 정권에 특별히 우호적인 논조인데도 이런 반응이다. 검증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대통령실은 그냥 임명 강행하면 된다는 분위기다. 한겨레 9일자 보도를 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여야 합의가 안 돼도 대통령 참모인 장관은 인사권으로 임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모(staff)’란 아무래도 ‘부하’의 느낌이다. 그러나 국무위원은 헌법기관으로 국정에 관해 대통령을 보좌하게 돼 있지만, 국무회의 구성원으로 국정을 심의할 권한을 갖고 있고 행정 각부의 장을 맡도록 돼 있어 그렇게 간단히 다룰 일이 아니다. 영어 번역을 봐도 우리나라 장관은 Secretary가 아니라 Minister다.

처음부터 무리한 지명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통령실이 남 탓을 하며 임명 강행의 분위기를 만들 게 아니라 명백한 인사 실패로 책임을 통감해야 할 일인데 그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의아하다. 인사정보관리단을 만들 때에는 무리한 인사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을 일도 있을 거라던 한동훈 장관에 대해 일부 언론이 예술의 전당에 그가 나타나 공연장이 술렁였다는 기사를 쓰고 있는 광경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눈떠 보니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다들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것인지 정말로 모르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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