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최근 지상파에서 개그 프로가 다시 시작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에 의하면 KBS는 <개그콘서트> 후속 개그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2>(가제)를 오는 11월 5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10시 25분 KBS2에서 송출한다고 밝혔다.

<개그콘서트>는 1999년 9월 4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2020년 6월 26일까지 21년 동안 한국의 대표 개그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많은 스타 개그맨들을 배출했고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개그콘서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규정과 방송국 자체 심의규정을 준수하면서도 주말 저녁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 왔다. 

이런 <개그콘서트>가 시청률이 낮아져 폐지된 이유 중 하나로 식상한 개그, 외모 비하, 조롱 논란 등 콘텐츠의 낮은 수준이 거론되었다. 날이 갈수록 빈약한 소재에 진부한 대사들이 반복되면서 점점 더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견 동의할 수 있다. 폐지 전 <개그콘서트>뿐만 아니라 다른 개그 프로들도 실제 그런 측면들이 많았다.

KBS 〈개그콘서트〉
KBS 〈개그콘서트〉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오랜 기간 인기가 많았던 <개그콘서트>가 왜 그렇게 추락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담당 CP나 PD의 연출력 문제일 수도 있고, 한동안 중단되었던 개그맨 공채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설득력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공영방송이 갖고 있는 엄격한 기준에 있다. KBS가 공영방송이다 보니 국민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속어나 비어 등을 대사에 이용할 수 없었다. 표준어 사용은 처음부터 지켜야 할 규정이었지만 SNS의 사용이 늘면서 점점 더 짧고 자극적인 단어들이 보편화되고 있는데도 방송에서는 노출시킬 수 없었다. 또 소재에 제한도 많았다. 예민한 정치사회적 이슈는 늘 금기시 되어왔기 때문에 시청자 대부분은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동의해 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른 미디어에서는 다양한 소재들을 제한 없이 다루고 있는데 지상파 개그 프로에서는 여전히 보수적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답답해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상황이 바뀐 근본적 원인은 미디어 플랫폼의 재구성과 관련이 있다. 웃음과 재미 등 예능적 요소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플랫폼 안에 규제 요소가 없어야 한다. 내러티브와 연출이 중요한 드라마와는 달리 개그 콘텐츠는 글자 그대로 순간적 웃음을 주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다. 순간적 웃음은 완벽한 시나리오와 고도의 연출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웃음의 시작은 상대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한다. 내가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기 힘들었던 말이나 행동, 권력자나 기존 질서에 대한 야유나 조소 등에서 출발한다. 풍자나 위트의 언어로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할 때 웃음이 시작된다. 

유튜브 채널 〈숏박스〉 〈빵송국〉 〈피식대학〉 〈나몰라패밀리 핫쇼〉
유튜브 채널 〈숏박스〉 〈빵송국〉 〈피식대학〉 〈나몰라패밀리 핫쇼〉

매스미디어 시절에는 지상파 개그 프로가 어느 정도 이런 역할을 수행해 왔다. 공채를 통해 등장한 개그맨들은 연기력과 아이디어가 좋았고 일종의 독과점 시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유튜브 개그 채널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지상파 개그 프로들은 상대적으로 재미없는 콘텐츠로 전락하게 되었다. 지상파 개그 프로는 소재와 표현에 있어 거의 제한이 없는 유튜브 채널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인기 있는 유튜브 개그 채널에는 조회수가 수백만이 넘는 콘텐츠가 많다. 숏박스, 빵송국, 피식대학, 다나카 등은 개별 프로그램 차원에서 벗어나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개그 채널들의 성공은 소재와 표현에 있어 거의 제한이 없다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채널에서 다루는 소재가 자극적이거나 사회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소재의 대부분은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언어 사용에 있어서 공영방송 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표현보다는 소재에 제한이 없는 개방성에 있다. 예를 들어 유튜브 채널 다나카의 경우 다나카 캐릭터는 ‘일본인 호스트’로 설정되어 있다. 웃음을 위해 기획된 캐릭터고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공영방송에 나온다면 우선 자체 심의 과정에서 통과되기 힘들 수 있다. 

자기 안에 검열 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 없다. 특히 개그 콘텐츠는 더 그렇다. 개그맨의 양식과 사회적 판단에 맡겨야 된다. 유튜브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했지만 유튜브가 만든 공간에서 자유롭게 호흡하고 나서는 다시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물론 <개그콘서트 2>가 성공하길 바란다. 그러나 이전 방식으로는 좋은 결과가 나오기 힘들다. 또 콘텐츠 소비자 입장에서는 <개그콘서트 2> 성공에 큰 관심이 없다. 유튜브에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 굳이 재미없는 콘텐츠 시청에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없다. 웃음이 중요한 한 것이지 특정 프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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