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미디어와 광고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광고는 광고주가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 브랜드 등에 관한 정보를 수용자에게 전달하여 구매활동을 유발하고 판매를 촉진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말한다. 광고주에게는 제품판매 및 이미지 제고 수단으로, 수용자에게는 정보전달 및 구매촉진 채널로 기능해, 소비수요를 진작하고 내수시장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광고주를 수용자와 연결하는 매개체는 미디어이다. 미디어는 콘텐츠에 대한 수용자의 관심을 구매하는 광고주로부터 수익을 얻는다. 특히 콘텐츠 이용에 대한 별도의 요금을 받지 않는 미디어들에게 있어 광고는 매우 중요하다. 광고는 (틀림없이) 미디어의 지속적 운영, 그리고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위한 근간이 된다.

하지만 미디어와 광고를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 부분 분리된 채 형성돼 왔다. 대표적으로, 관련 법은 광고를 미디어 콘텐츠와 분리하도록 강제한다. 방송법에 따르면 광고는 방송 프로그램과 혼동되지 않도록 명확히 구분(제73조 1호)돼야 한다. 때문에 프로그램광고나 토막광고처럼 프로그램 전-후나 사이에 붙는 광고뿐 아니라, 간접광고나 가상광고처럼 프로그램 안에 삽입되는 광고의 경우에도 광고와 프로그램의 구분이 불명확한 경우는 드물다. 방송 외 미디어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신문에서나 잡지에서나 인터넷 사이트에서나 광고는 다른 콘텐츠들과 대체로 구분된다. 콘텐츠 수용자들이 할 수 있는 한 광고를 피하려 함은 물론이다. 심지어 콘텐츠 창작자들에게조차도 광고는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미디어와 광고가 뗄 수 없는 관계임에도 둘을 분리해서 보려는 (많은 정책입안자, 수용자, 창작자들의) 시선들이 팽배한 것처럼, 광고에 대한 논의 역시 양가적이다. 먼저, 광고 제작, 전략, 표현, 성과, 효과 등에 주목하는 광고계 논의들은 대체로 광고의 편에 서 있다. 그에 따르면 광고는 하나의 예술이자 창작물이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언어이다. 광고가 목표로 삼는 성과와 승리를 향하고, 광고의 신화를 확산하며, 그것을 위해 수용자에게 어떻게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광고계 논의의 목적이다. 반면, 광고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취하는 논의들은 광고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선다.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달과정에 광고를 위치시키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정교하고 은밀한 언어로서 사람들의 욕망과 소비를 어떻게 자극하는지, 그 결과로 사람들의 의식과 인식 그리고 행동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살피면서 대안을 모색한다.

하지만 실제 광고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거나, 양쪽 모두에 있을 듯하다. 광고에 대한 논의를 거칠게 둘로 나눴지만 실제 논의들이 (거친 두 분류에서 다시) 셀 수 없이 많은 세부 논의들로 쪼개진다 했을 때, 그것들은 광고라는 코끼리 앞에 모여서 각기 다른 부분을 접하고 전체 코끼리를 가늠하는 장님들의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모든 이야기가 코끼리에 대한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어떤 것도 한 마리 코끼리의 전부를 담지는 못한다. 광고에 대한 맹목적인 긍정이나 일방적인 부정의 시각에서 벗어나, 광고에 대한 관점이 고정될 수 없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광고는 시대와 공간에 따라, 사회·문화·정치적 상황에 따라, 그리고 기술이나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언제든 모습을 달리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광고의 디지털화·융합화·온라인 및 모바일화·지능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광고의 유동성과 혼종성, 그리고 거기서 오는 광고의 가치나 의미 변화에 대한 학계와 업계, 나아가 우리 사회의 해석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광고가 처한 환경 변화는 자연스럽게 광고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요청한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광고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할까? 다음 세 가지 부분을 고려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첫째, 광고를 구체적 대상이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하면서, 그 현상을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수준으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광고의 재개념화 혹은 개념 확장이 필수적이다. 광고 개념을 새롭게 하거나 확장하는 첫 단계로는, 현재 광고가 담기는 전에 없던 미디어들의 재해석을 통한 수용 혹은 이식이 꼽힌다. 기존 광고를 단순히 새로운 미디어로 옮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의 논리와 형식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광고 개념이 새로운 미디어와 함께 등장하는 현상으로서의 광고를 담아낼 수 없다면, 역으로 신규 미디어의 새로운 속성을 포함함으로써 광고 개념을 확장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디지털 미디어 광고의 약진, 양방향·맞춤형 광고로의 변화와 이용자 데이터 활용, 콘텐츠의 광고화 등을 고려한다면, 이제 광고는 예전처럼 미디어 단위로 나뉘지 않으며, 그 자체로 플랫폼이자 콘텐츠고, 정보이자 데이터 덩어리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하면서, 각 위상에 대한 다양하면서도 지속적인 이론적·방법론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 경제적 가치 확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요청된다. 경제적 가치와 공익적·공공적 가치는 상보관계에 있는 것임을 앞서 논의했다. 경제적 가치의 확대가 곧 공익적·공공적 가치의 하락이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경제적 가치 확대에 있어 지나친 상업화 추구와 공익적·공공적 관점 도외시에 대한 경계 등이 전제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경제적 차원의 문제를 고려 않음으로 인해 미디어의 안정적 재원 확보가 어렵다면, 이는 공익성·공공성 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른 재원 투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 더더욱 광고의 중요성, 그리고 광고 확대를 위한/통한 양질의 콘텐츠 확보에 둔감해져서는 안 된다. 경쟁에 맞는 비용효율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투자비용과 콘텐츠의 인기가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같이 가는 경향이 있다. 제작비가 많이 들면서도 인기 많은 콘텐츠 제작은 미디어가 주력해야 할 대표적인 일이다.

투자를 통해 콘텐츠의 질 제고와 인기 확보에 주력하고, 확보된 인기를 바탕으로 광고를 늘리고, 늘어난 광고로 획득한 재원을 다시 콘텐츠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요컨대 미디어는 오락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비정보적 콘텐츠가 아니라, 비합리적이고 재미가 없는 콘텐츠다. 양질의 오락 콘텐츠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일은 미디어 공통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이자, 미디어의 경제적 가치가 공익적·공공적 가치로 확장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셋째, 수용자 지향이다. 여기서의 ‘지향’이란 광고 ‘소비자로서 수용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과는 다른 차원의 것으로, 수용자 입장에서 광고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광고의 가치와 환경 변화를 어떻게 수용자들에게 인식시킬지 등에 대해 고려해야 함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소비자에서 수용자로, 나아가 수용자에서 공중으로의 인식 전환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기존의 광고가 어떤 콘텐츠에 광고를 붙일 것인가를 중심으로 집행됐다면, 앞으로는 어떤 수용자가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중심으로 집행돼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광고가 지닌 개별 가치들에 대해, 또 그것들의 상호연관 관계에 대해 수용자에게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이는 광고의 가치에 대한 사회의 공통된 이해를 도출하는 첫걸음이면서, 광고시장을 활성화하고 콘텐츠 제작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여 수용자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광고 진흥논리의 (타당성이 아닌) 효용성을 확보하는 일과도 관련된다. 논리상에는 존재해도, 실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수용자를 실천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구체적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상상된 이용자가 아닌, 실제 이용자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수용자에 대한 지향은 공익성·공공성을 경유해 사회적 가치 확대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광고에 대한 수용자 차원의 리터러시 향상 논의도 지속돼야 한다. 그들이 보는 광고이고, 또 광고와 관련된 각종 데이터가 그들의 것이며, 광고가 그들만을 향하기 때문이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