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간혹, 비슷한 소재가 비슷한 시기에 봇물처럼 쏟아지는 때가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면서 동시에 비슷한 소재의 영화였던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 그리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즐거운 인생>이 이에 해당하는 사례다.

그런데 최근 비슷한 현상이 스크린과 스크린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로 <레미제라블>이다. 시발점은 무대였다. 지난달부터 뮤지컬과 연극이 <레미제라블>을 무대에서 선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번에는 영화가 포문을 연다. 공연과 영화가 똑같은 소재, 똑같은 스토리의 작품을 동시에 선보이는 셈이다.

이러한 쌍끌이 효과에 힘을 보태는 건 출판사의 몫이다. 영화가 히트상품으로 부각되면 동명 원작은 출판계에서 스테디셀러 혹은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기에 그렇다. 지금 <레미제라블> 현상은 뮤지컬과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와 출판계라는 전방위로 독자층 혹은 관객을 사로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이 공연과 차별되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뮤지컬의 넘버를 녹음함에 있어 배우들이 촬영 현장에서 바로 녹음하는 실시간 녹음 방식이다.

현장 촬영 따로 넘버 녹음 따로 하는 방식을 택하면 배우가 부르는 넘버는 잡음 하나 없이 깨끗할지 모르지만 촬영 현장에서 배우가 받은 감동이나 혹은 감정선의 세밀한 변화를 넘버로 담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넘버를 실시간으로 녹음함으로 배우의 감정 톤 및 현장의 열정을 고스란히 넘버 안에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다. 이는 뮤지컬 영화를 즐겨 관람한 관객이라면 여타 뮤지컬 영화와 달리 <레미제라블> 속 넘버의 감정선이 얼마나 풍부하게 구현되었는가를 귀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영화만이 제공할 수 있는 ‘스펙터클’이다. 영화라는 장르는 공연의 그 어느 장르도 따라오지 못하는 스펙터클을 담아내는 데에 능수능란하다. 장발장(휴 잭맨 분)이 거대한 프랑스 깃대를 들어 올리는 장면이나 혁명군이 프랑스 군과 긴박하게 대치하는 장면 등은 공연이 따라가지 못하는 웅장한 스펙터클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레미제라블>은 뮤지컬로 치면 ‘송스루’ 타입의 뮤지컬 영화다. 대사보다 넘버가 많은 게 사실이다. 배우들이 대사를 대신하여 부르는 넘버는 장면 가운데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가령 판틴(앤 해서웨이 분)이 부르는 넘버 “I Dreamed a Dream”은 판틴의 구구절절한 애환이 스크린을 감상하는 관객의 심장에 절로 감정이입하게끔 애절하게 다가온다. 대사로 이를 표현하고자 하면 절대로 불가능한 페이소스를 선사하는 셈이다. 158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그리고 익히 아는 스토리라는 부담을 덜어내는 일등공신은 실시간 녹음 방식으로 배우들이 부르는 ‘넘버’의 저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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