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끝났고 논란을 불렀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최고 시청률 26.9%를 기록했고, 올 연말의 큰 화젯거리였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2회차 인생’을 다룬 이른바 회귀물 장르다. 억울하게 살해당한 순양 그룹 직원 윤현우가 오너 일가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나 자신을 죽인 가문에 복수하는 이야기다. 이 테마를 쫓으며 장편 드라마가 진행되었지만, 결말에 이르러 2회차 인생을 산 것은 윤현우가 꾼 꿈이었음이 밝혀졌다. 적어도 시청자들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개연성 부족 등의 문제와 맞물려 분노와 허망함을 부른 것 같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이런 반응은 어딘가 이상하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은 상상하기 힘든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설정 자체에 잠재된 귀결이다. 회귀물은 공상이다. 웹소설 같은 서브컬처에선 아무 제약 없이 재현되겠지만, 주류 미디어로 끌고 와 재벌가라는 사회적 성격이 강한 소재를 다룬 이상 아무래도 다른 환경의 압력에 놓인다. 단순히 주인공이 재벌가의 금권을 빼앗아 버리고 끝난다면 카타르시스를 위해 소재의 사회성이 휘발될 수 있다. 즉, 원작과 다른 결말을 구상할 동기는 존재하는 것인데, 저 공상을 현실로 돌려놓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얼버무리는 것이다. 이런 식의 구운몽은 공중파 드라마 계보에 선례가 있다.

원작 소설은 진도준이 현실로 다시 회귀하지 않고 1회 차 인생의 자신, 윤현우의 복수를 완수하는 결말로 끝난다. 시청자들은 원작을 소환하며 완벽한 엔딩이었다고 드라마와 비교하고, 심지어 드라마 작가에게 원작자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성토한다. 각색은 이야기 구조를 바꾸는 걸 포함하는 개념이고, 각색 대상엔 결말도 포함이 되기에 이런 비판은 엉뚱한 것이다. 물론, 시청자들의 분노는 결말의 각색 자체보다 각색을 통해 자신들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단 점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2회차 설정이 훼손되지 않길 바랐고, 진도준의 삶에 대한 자신들의 몰입감이 강제 종료된 것에 화를 내는 것 같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회귀물은 게이머적 경험을 서사화한 장르다. 회귀물뿐 아니라 루프물, 이세계물 같은 서브컬처 서사물은 동일한 시공간의 경험을 ‘리로드’하여 반복하고, 나의 정체성으로 다른 세계의 삶을 의사 체험한다. 일본의 문화평론가 아즈마 히로키의 말을 빌리면, 이야기 내에서 플레이어 시점과 캐릭터 시점이 분리된 채 재현되는 메타 이야기적 장르다. 인생 2회차라는 설정은 이미 클리어한 게임을 ‘만렙’을 유지한 채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하듯, 현생의 기억과 의식을 유지한 채 남보다 월등한 ‘경험치’로 삶을 반복하는 전능감에 특화돼 있다. 진도준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카타르시스도 근본적으로 그런 것이다.

시청자들이 진도준에게 품은 몰입감은 상류층의 값비싼 삶에 대한 동경심에 바탕을 둔다. 자신들의 삶과 같은 처지에 있는 윤현우가 재벌가를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는 걸 구경하며 뒤집힌 우월감을 즐긴 것이다. 2회차 자체가 답답한 현실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사이다’, 전능감을 주는 설정이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그것을 좀 더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버전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같은 회귀물 드라마였던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검사가 과거로 돌아가 악을 응징하는 공적 사명감을 전시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개인의 복수심을 쫓고 거기엔 신분상승의 욕망이 일그러진 채 투영돼 있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재벌집 막내아들>이 이런 결말을 내놓은 것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해석해보자면, ‘흙수저’ 회사원이 ‘재벌집 막내아들’이 되는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을이 갱생하여 갑의 자리를 빼앗는 건 ‘꿈’ 같은 판타지일 뿐이다. 이 결말은 시청자들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으며 현실과 판타지, 윤현우와 진도준의 계층적 괴리감을 가리킨다. 원작은 진도준이 순양그룹을 빼앗으며 그의 욕망과 복수가 합치되는 사적 정의의 구현으로 끝났지만, 드라마는 욕망의 실현은 무산시키고 개인의 복수심을 공적 대의로 흡수하여 오너 가문을 무너트리는 것으로 끝냈다. 권선징악의 상투적 결말이다.

하지만 꿈은 너무나 간편한 해결책이다. 이리저리 벌여 놓은 이야기를 수습할 필요 없이 단번에 무효화해 주는 것이 꿈이다. 이 드라마의 잘못은 원작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상투적 메시지와 안이한 해결책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현실과 드라마는 다르다는 걸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윤현우가 진도준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단 걸 알기 때문에 결핍을 해소하려 회귀물 같은 걸 보는 것이다. 작가는 권선징악, 환상에 대한 현실의 우위라는 전통적이고 규범적인 결말로 서사를 안치했지만, 시청자들은 권선을 징악으로 대신하길 원하고 통쾌한 망상에 자발적으로 유폐된다. 이것이 오늘날 이야기가 제공하는 사회적 기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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