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앚저씨’는 아이즈원과 아저씨의 합성어다. 2018년 <프로듀스48>로 데뷔해 2021년 활동 종료한 아이즈원의 팬덤 ‘위즈원’을 외부에서 일컫던 단어다. 멸칭의 뉘앙스가 담겨 있는 말이지만,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위즈원이 남초 팬덤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팬클럽 가입 성비를 보면 1기에서 2기까지 7~8 : 2~3 정도로 남성 팬 비중이 컸다. 아이즈원이 활동한 시기는 여성 아이돌 팬덤 성비가 남초에서 여초로 바뀌는 과도기였다. 이 정도 성비의 다른 팬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위즈원이 특별한 건 성비보다 규모였다. 여성 아이돌 국내 팬덤 중 단연 몸집이 컸고, 아이즈원은 케이팝 역사에서 국내 남성 팬덤을 가장 거대한 규모의 코어 팬으로 흡수한 그룹이었다.

해산한 지 2년이 되어 가는 그룹을 거론할 의미가 있다면, 케이팝의 계보에서 이 그룹이 가지는 남다른 위상 때문일 것이다. 케이팝이 태동한 이후 남성 팬덤은 늘 라이트한 팬덤, ‘대중’의 자리에 있었고 적극적인 구매와 활동을 하는 코어 팬덤은 소수로서 음지에 있었다. 트와이스가 대중형 그룹과 팬덤형 그룹의 속성을 모두 갖춘 그룹으로서 남초 팬덤형 그룹의 모델을 선보였다면, 아이즈원은 거기서 더 나아가 완전한 팬덤형 그룹으로서 ‘남자 팬도 돈이 된다’는 걸 입증한 그룹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구조적 배경은 <프로듀스48>부터 팬덤 활동과 유입의 거점이었던 국내 최대 남초 커뮤니티 ‘디씨 인사이드’다.

걸그룹 아이즈원 [오프더레코드·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걸그룹 아이즈원 [오프더레코드·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그동안 아이즈원의 존재 의의를 분석하는 의견들이 있었지만, 이 그룹의 팬덤 성격을 분석하는 의견은 볼 수 없었다. 위즈원이 독특했던 점은 그들이 거주하는 공동체의 장소, 팬 커뮤니티의 성격이다. 대부분의 케이팝 팬덤은 트위터에 네트워크를 두고 있다. 아니면 기획사가 개설한 팬 카페, 위버스 같은 공식 커뮤니티에 모이거나, 더쿠 같은 보편적인 아이돌 커뮤니티에 가입한다. 디씨 인사이드는 국내 하위문화의 메카이고 많은 아이돌 관련 갤러리가 있지만, 거기에 팬 갤러리를 두고 활동하는 팬덤은 거의 없다. 디씨 특유의 반사회적 이미지를 덮어쓰기 싫은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곳이 가입 절차가 존재하지 않아 외부에서 유입하는 안티들에 대해 극도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위즈원이 디씨에 모이게 된 건 <프로듀스48>이 남초 커뮤니티 전체에서 인기를 끌었고 디씨에서 활동하던 기존 유저들이 방송의 팬으로 대거 유입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엠넷 갤러리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고 그 양상이 데뷔 후에도 이어졌다. ‘엠갤’은 공식적인 팬갤은 아니었지만 국내 위즈원 커뮤니티 중 가장 활발한 장소가 됐다. 디씨의 ‘개념글’ 시스템은 신속하고 방대하게 공유되는 정보를 한 번에 열람하는 편의성을 주며 디씨 외부에서 활동하던 팬들을 유입시켰다. 이곳이 공식 팬 커뮤니티와 다른 점은 완전한 자생성과 디씨 특유의 분방한 분위기였다. 동 나이대 남성들의 공감대를 통한 사적 담화가 팬 활동 담화와 공존하며 팬 커뮤니티와 일상적 커뮤니티의 복합 공간으로서 흡입력을 생성했다.

Mnet ‘프로듀스48’
Mnet ‘프로듀스48’

문제는 팬들과 함께 안티도 유입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아이즈원은 데뷔 당시 아이돌 리그의 지형과 맞물려 안티 팬이 많은 그룹이었으며 디씨 시스템 특유의 취약함은 이 문제를 가중했다. 이것을 막기 위해 팬들 중 뽑힌 갤러리 매니저들의 자치가 강화되었고 소위 ‘완장질’이라 불리는 수직적 위계질서를 불렀다. 또한 회사의 그룹 운영과 매니저들의 갤러리 운영에 관한 이견을 억압하는 부작용도 불렀다. 이 상황은 팬덤 내부에 통합된 행동 체계를 줘서 일사불란한 서포트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부의 보수성과 집단주의를 강화해 다수파 팬덤의 입장을 절대화하고 내부 자정이 이뤄지지 않는 닫힌 생태계를 만들었다.

자유롭게 모인 갤에서 강력한 금기가 형성된다는 것, 이 아이러니는 또 다른 ‘자유로운’ 공간을 찾아 계속해서 파생 갤러리가 가지치기 되는 사태를 낳았다. 프로젝트 그룹에 잠재한 개인 팬덤 간의 경쟁적 정서, 한일 합작 그룹이기에 잠재한 일본인 멤버들에 대한 반감. 음울한 무의식이 맞물려 특정 멤버들을 배척하는 악성 팬 갤러리들이 나타났고 디씨 ‘흥한 갤러리’ 순위에 오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악성 개인 팬’은 케이팝 팬덤 문화에 깃든 보편적 쟁점이지만, 특정 그룹 팬덤의 ‘악개’ 커뮤니티가 이토록 수면 위로 드러나 팬덤을 흡수한 사례는 케이팝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다. 위즈원은 그 어떤 그룹보다 ‘올팬’을 일상적 캐치프레이즈로 강조한 팬덤이지만, 실은 그 무수한 강조는 팬덤 내부의 어둠을 덮으려는 노력이었고, 그것이 도덕적 위선으로 변질된 실례가 존재하는 것이다.

위즈원이 품은 정체성과 차별점은 회사가 내려주는 지침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의사체계로 움직이며 집단적 문화를 형성한 독자성과 그룹을 향한 강력한 애착 감정이었다. 여성 아이돌 팬덤이 이 정도 조직력을 보여준 사례는 찾기 힘들고, 아이즈원을 통해 처음으로 아이돌 팬이 된 이들이 많았기에 그들이 형성한 문화는 기존 아이돌 문화보다는 2030 남성들의 커뮤니티 문화와 더 닮았었다. 이것은 팬덤이 인터넷 각지에 분산된 네트워크가 아니라 단일한 장소에 거대하게 뭉쳐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는 한때 하이브 임원들이 아이즈원을 주목하고 있다고 발언할 만큼 업계에서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고 어떤 종류의 영감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케이팝 역사의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계기와 특정한 장소가 연결된 예외적 사례다.

아이즈원 온라인 팬파티 포스터 [엔씨소프트/클렙 제공]
아이즈원 온라인 팬파티 포스터 [엔씨소프트/클렙 제공]

엠넷 갤러리에 기반을 둔 팬덤 조직은 기존 팬 커뮤니티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팬덤 공동체였으나 일반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자생성이 핵심이고 이식할 수 있는 재현성이 없다. 디씨 인사이드의 극도의 개방성과 반대급부로 발생한 ‘완장질’은 팬덤 문화가 지속 가능한 형태로 운영되기엔 불균형하고 불안정하다. 현재 여성 아이돌 시장은 팬덤의 여초화와 글로벌화가 완료되었으며 국내 남성 팬덤은 한 줌에 불과하다. 아이즈원과 ‘앚저씨’들은 이 변화가 본격적으로 이행되기 직전에 나타난 존재로서, 그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케이팝 진화의 과정에서 발생했다 사라진 희귀종이다. 이들에게서 남길 것이 있다면 보편타당한 역할 모델이 아니라 기억의 윤리일 것이다.

‘앚저씨’들은 아이즈원 해체 통보를 받고 12인 전원 활동 연장을 위한 펀딩에 돌입했었다. 역시 엠넷 갤러리를 거점으로 특유의 조직력을 발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의 서로 다른 진로를 무시한 채 팬덤 다수파가 선호한 멤버들에 대한 미련에서 비롯한 일방적인 요구였다. 아이즈원 멤버들은 흩어졌고 ‘앚저씨’도 흩어졌다. 어떤 이들은 아이즈원 멤버들이 몸담은 아이브 르세라핌의 팬이 됐고, 어떤 갤러리에선 아직도 악성 팬들의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어떤 갤러리에선 개인 팬덤의 경쟁이 그룹 팬덤의 경쟁으로 치환된 채 벌어진다. 세상에 끝나지 않는 축제는 없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빠지지 않으려면 과거는 미화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케이팝 팬덤에게 역사가 필요한 이유고 윤리가 필요한 이유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