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돈 크라이 마미>라는 영화가 개봉하였다. 미성년자들에게 강간당하고 자살한 여고생 딸의 원한을 갚기 위해, 가해자들을 직접 응징하는 엄마의 사적 복수를 다룬 <돈 크라이 마미>는 개봉 전까지만 해도, 요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성폭행 범죄의 심각성을 환기시킨다는 것만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 <돈 크라이 마미>에 대한 관심은 정확히, 개봉 전 그러니까 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제대로 나기 전까지다. 요즘 여론 분위기 상 보통만 만들어도 충분히 호평 받고 흥행할 수 있었던 영화는, 완성도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했던 모 아이돌의 연기까지 개봉하자마자 혹평 세례에 시달린다. 미성년자이기에 처벌이 미약하고, 그래서 추가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더더욱 <돈 크라이 마미>의 최악의 완성도가 아쉬웠다.

그런데 개봉 전부터 남보라의 힘들었던 피해자 연기를 운운하며 시끄러웠던 <돈 크라이 마미>와는 달리, 성폭행의 심각성을 제대로 일깨워주는 곳은 따로 있었다. 그것도 성폭행 같은 중범죄가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지상파 멜로드라마에서다. 1,2회까지만 해도, 아역 스타 여진구, 김소현을 앞세워 21세기 <소나기>를 재현했던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는 3회 들어 수많은 시청자들을 멘붕으로 이끈 충격적인 장면으로 전환시킨다.

이후 <보고 싶다>는 14년 전 일어난 성범죄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해자와 가족 이야기를 줄곧 언급하였다. 끔찍한 범죄가 일어난 지 14년이 지났지만, 강상득에게 몹쓸 짓을 당한 이수연(윤은헤 분)을 포함, 그 장면을 목격한 한정우(박유천 분) 모두 그때 그 충격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한정우는 수연을 겁탈한 강상득(박선우 분)을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 괴롭힐 요량으로 재벌3세 타이틀을 벗고 아예 형사가 되었다. 대궐 같은 집까지 버리고, 수연 엄마와 함께 살며 친엄마 이상으로 따른다. 딸이 겁탈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의해, 바로 실종되어 14년 동안 딸 얼굴조차 보지 못한 수연 엄마 김명희(송옥숙 분)의 심정은 어떨까. 그래서 엄마 명희는 그토록 바라던 수연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기억하기 싫다는 수연을 위해 기꺼이 수연을 못 본 척 하겠단다.

그런데 수연, 정우 그리고 명희와 똑같은 아픔을 짊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피해자 가족이 등장한다. 그동안 정우가 근무하는 경찰서에서 사람 좋은 청소부 아줌마로 분한 김미경은 지난 10회 마지막 장면을 통해 강상득 살해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다. 사실 강상득이 살해당하고 난 이후 <보고 싶다>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강상득이 수연을 겁탈하기 이전 동종 범죄가 있다는 사실을 들며, 수연 엄마와 비슷한 아픔을 안고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청소부 아주머니가 강상득을 죽인 범인이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하였다. 그리고 10회 마지막 장면 직전 청소부 아주머니의 딸인 보라의 중학교 시절 교복이 나왔을 때, 이미 청소부 아주머니의 딸 보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예상대로 청소부 아주머니의 딸 보라는 강상득에게 겁탈을 당했고, 보라는 영화 <돈 크라이 마미>에서처럼 자살을 한다. 영화 <돈 크라이 마미>의 엄마는 딸이 죽자마자 무려 가해자 3명을 단숨에 죽였지만, 보라 엄마는 천천히 가해자들과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경찰서에서 와신상담(?) 하였다.

참으로 즉흥적으로 가해자들을 찔려 죽이던 <돈 크라이 마미>엄마와는 달리 <보고싶다>의 보라 엄마의 범행은 참으로 치밀하기까지 하다. 물론 <돈 크라이 마미>, <보고싶다> 모두 현실에서는 실행 불가능한 상황 설정이다. 다만, 시청자들의 울분을 대신 풀어줄 수 있는 판타지적 요소가 있는 드라마,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스토리일 뿐이다.

그러나,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를 고조시켜야할 중요한 장면에서 정작 피해자 가족에게 복수를 당해야하는 가해자의 참으로 인상 깊은 명연기로 복수극에서 희대의 코미디로 전락해버린 <돈 크라이 마미>와는 달리, 성폭행 피해자 가족 이야기가 주요 플롯이 아닌 <보고싶다>는 피해자 엄마 역을 맡은 김미경의 섬뜩한 모성애 연기로 피해자 가족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하는 울분과 눈물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그저 평범한 엄마이자 선한 시민 그리고 왜소한 체격을 가진 보라 엄마가 건장한 체격의 사내 두 명을 연달아 살해한 범인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끔찍한 범죄를 당한 딸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는데, 정작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들은 낮은 형량을 받고 풀려나오면 그만이다. 그마저도 미성년자이거나, 힘 좀 깨나 쓰는 집안의 자식이라면 처벌이 가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강상득을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챈 한정우를 기절시키고 섬뜩한 미소를 지어낸 보라 엄마는 이후 강상득 이외에 자신의 딸을 성폭행을 한 또 다른 범인이 미국에서 곧 귀국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즉각 공항으로 향한다. 보라 엄마는 택시 기사로 둔갑하고 딸을 성폭행한 진범을 자신의 차에 태운다. 뒤늦게 보라 엄마의 범행 계획을 알아챈 정우가 청소부 아줌마를 만류했지만 이미 보라 엄마가 운전하는 차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상태다.

차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보라 엄마는 강상득, 한정우에게도 그랬듯이 성폭행범을 기절시킨다. 기어코 본인 손으로 자신의 딸에게 몹쓸 짓을 한 성폭행범을 살해한다. 그리고 딸을 위한 모든 복수를 마무리한 보라 엄마는 연쇄 살인범으로 그 자리에서 검거된다.

보라 엄마의 실체가 밝혀지기 전, 보라 엄마는 한정우를 줄곧 사윗감으로 지목하였고 딸 밥해주러 가야한다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적이 있다. 이미 보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딸 보라가 죽은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보라 엄마는 보라를 자신의 가슴 속에서 떠나보내지 않았다. 14년 동안 그때 그 악몽에서 맴도는 한정우처럼 보라 엄마는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 내몬 그 범인들을 한 시도 잊을 수가 없다.

결국 연쇄살인범으로 구속된 보라 엄마. 자신을 취재하러온 기자들 앞에서 꺼낸 보라 엄마의 한 마디 "내 딸이 죽었다. 그놈들은 성폭행이 아니라 살인을 했다."

보라 엄마는 이미 형을 살고 나왔거나, 무죄 판결을 받은 성폭행 가해자들을 살해한 진범이다. 자신이 일하던 경찰서 취조실에 갇히게 된 보라엄마에게 그녀와 똑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수연 엄마 명희가 찾아온다.

두 엄마는 서로 말없이 한참을 바라본다. 오랜 침묵 끝에 보라 보라 엄마는 명희에게 "이상하다. 이러고 있는데 마음은 편하다"고 말문을 꺼낸다. 이에 김명희는 눈물을 흘리며 보라 엄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보라 어머니,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고맙습니다" "나 대신 해준 건 고맙고, 나대신 벌 받는 거 같아 미안하고.... 그래도 죽이지는 말지. 죽이지는 말지"라며 보라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오열하는 명희.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보라 엄마.

그녀들은 이미 인간이길 포기했던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에 의해 딸을 잃은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한 명은 그 범죄자들을 살해한 범인으로, 그리고 한 명은 그토록 기다리던 딸을 만났음에도 불구, 과거를 기억하기 싫다는 딸을 위해 애써 딸을 다시 가슴 속으로 묻는 엄마이다.

이제 우리나라 사법 체계는 보라엄마에게 가해자들을 죽인 죄를 엄중히 물을 것이다. 오히려 보라를 성폭행한 범인들에게 내린 형량보다 더 높은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보라 엄마와 비슷한 피해자이지만 형사이기 때문에 보라 엄마를 감옥에 보낼 수밖에 없는 정우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그리고 보라 엄마와 동병상련 아픔을 겪고 있는 명희는 지난 세월 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고 끝내 성폭행 가해자들을 죽인 보라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위로한다.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상처받은 내면을 감싸고 있던 두 엄마의 만남과 눈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드라마 속 보라 엄마, 명희 외에도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에게 딸을 잃은 가족들의 눈물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성폭행 범죄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근원적인 처벌방안이 나오지 않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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