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서브컬처(subculture)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팬(fan), 마니아(mania) 그리고 덕후에 이르기까지 경멸이나 우려의 시선을 피해 주로 음지에 머물러왔던 서브컬처의 주역들도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기보다는, 대중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이들을 찾아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잡지, 인터넷, 1인 방송과 같이 서브컬처에 비교적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 왔던 매체뿐 아니라, 그동안 대개 서브컬처나 그 향유자를 긍정적이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고 거리를 두던 종합일간지나 지상파방송 등 전통적인 매체에서도 팬이, 마니아가, 그리고 덕후가 빈번하게, 그것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소환되고 있다.

한국에서 서브컬처를 논의하는 데 있어 1990년대를 빼놓기는 어렵다. 1990년대는 서브컬처가 본격적으로 개화한 시기이자, 이후 서브컬처의 원류로 작용한다. 1990년대 서브컬처는 그 형식과 내용이 저항성을 지닌다기보다는, 지배문화 혹은 주류문화에 대한 회의와 반발에서 비롯된 비주류적이고 소수적인 문화에 가까웠다. 지배/주류문화 내부의 수많은 모순이 드러나고 당대 사회·문화를 지배하는 권력이 재편성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단적이고 소외된 공간, 자본주의 체제가 끊임없이 주변부화하는 억압(혹은 과잉)된 주체들이 형성하고 그 안에서 버티고 서 있던 생존의 공간이 서브컬처였다. 1980년대를 지배했던 시대정신과 역사의식 대신 개인의 개성과 욕망에 충실하도록 만드는 서브컬처는, 1990년대 젊은이들에게 매혹적인 대상이자 자신들 삶의 방식을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주류문화로부터 주변부화된 문화, 지배적인 가치로부터 배격된 문화, 동시대 지배적인 문화적 형태와는 다른 소수문화로서 1990년대 서브컬처는 ‘문화적 하위성’을 지니고 있었다.

(CG) [연합뉴스TV 제공]
(CG) [연합뉴스TV 제공]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서브컬처는 지금의 서브컬처와는 다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떤 서브컬처는 이제 주류 대중문화에 가깝다. 가령 (대표적인 서브컬처로 간주돼 온)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은 이제 산업 규모, 향유자 수나 이용량 면에서 다른 대중문화와 비슷하거나 그것들을 뛰어넘는다. 1990년대만 해도 서브컬처 향유자들을 (그것이 부정적이든 그렇지 않든) 특이한 존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2020년대 서브컬처 향유자들은 더 이상 특이한 존재가 아니다. 만화·애니메이션, 게임, 웹소설, 웹툰 등을 접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대중문화가 서브컬처를 일종의 상업적 코드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음은 물론이다. 더 이상 문화적 하위성을 띤다고만 볼 수 없는 서브컬처를 여전히 ‘하위문화’나 ‘소수문화’로 일컫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브컬처의 범위도 모호해졌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서브컬처에는 무협소설·판타지소설(소설), B급영화·컬트무비(영화), 히피·펑크(음악) 등 기존 대중예술이나 대중문화의 비주류 장르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과 같이 비교적 새로운 매체가 포함되었다. 새로운 매체에는 최근 웹툰, 라이트노벨·웹소설 등이 추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매체 자체로 서브컬처의 범위를 말하는 대신, 비주류 장르만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게임이 서브컬처 매체라 보기에 지나치게 주류 대중문화가 되었다면, 그 중 미소년/녀 게임 장르 정도를 서브컬처로 말하는 것이다. 물론 라이트노벨처럼 여전히 주변부 취향 매체가 존재하기는 하나, 언제든 그 위상은 달라질 수 있다. 분명한 점은, 여전히 서브컬처로 불린다 해도, 지금의 서브컬처가 비교적 명확히 문화적 하위성을 띠었던 1990년대 서브컬처와는 다른 어떤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미디어 환경 변화, 서브컬처의 산업화, 산업의 서브컬처화 등과 함께 갈수록 서브컬처의 의미, 특질 그리고 경계를 말하는 일은 어려워지고 있다.

네이버웹툰의 프리미엄 웹소설 앱 '욘더', 올 하반기 영상화되는 네이버웹툰 IP 6편 [네이버웹툰 제공]
네이버웹툰의 프리미엄 웹소설 앱 '욘더', 올 하반기 영상화되는 네이버웹툰 IP 6편 [네이버웹툰 제공]

새로운 흐름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가령, 최근 웹소설, 웹툰 등을 중심으로 두드러지는 경향은 ‘고난과 성장 없는 캐릭터와 이야기’다. 고난 받지 않고 레벨 업 하지 않는 먼치킨 캐릭터(밸런스를 무시할 정도로 강한 소위 ‘사기캐’릭터), 눈에 띄는 갈등 없이 눈 넘김 좋은 사이다 서사(답답한 상황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고 통쾌하게 진행되거나 해결되는 것), 회빙환(회귀물+빙의물+환생물) 공식 등이 유행한다. 사이다 서사는 독자로 하여금 통쾌함을 느끼게 만든다. 다만 사이다 서사에 길들여짐으로써 이야기 흐름에 반드시 필요한 배경이나 인물 설명, 작은 갈등조차도 견뎌내지 못하는 ‘사이다패스(사이다+사이코패스)’가 생겨나기도 한다. 회빙환물은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회적 욕망이 투영된 결과로 해석 가능하다. 이러한 흐름은 주인공의 고난과 성장에 동참하기보다, 장르소비가 익숙해진 상황에서 장르가 가진 관습을 이해하고 해당 콘텐츠의 이야기 세계 안으로 바로 진입하려는 소비방식이 서브컬처에서 확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동일 서브컬처 콘텐츠에서 ‘아싸(아웃사이더) 문화와 인싸(인사이더) 문화가 뒤섞이는’ 경우가 발견되는 흐름도 주목할 만하다. 망가 독자가 소수화되고 신규독자 유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생각만큼 인기를 얻지 못한 <귀멸의 칼날(鬼滅の刃)> 같은 망가가, 정작 애니메이션화된 후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방영 이후 망가 판매고가 따라 올랐다. 처음부터 망가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애니메이션과 망가 모두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망가 쪽은 정확히는 망가로서가 아닌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의 원작으로 소비된 셈이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라는 힙한 인싸의 콘텐츠 소비채널을 통해 유입된 소비자들은, 기존의 아싸=망가독자와 다른 존재일까? 분명한 것은 <귀멸의 칼날> 같은 사례가 서브컬처 수용의 형질변화를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영화 〈귀멸의 칼날: 아사쿠사 편〉 포스터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영화 〈귀멸의 칼날: 아사쿠사 편〉 포스터

1990년대 문화적 하위성을 지녔던 소수문화로서의 서브컬처가, 위상이 뒤바뀌어 주류문화 쪽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서브컬처는, 어쨌든 확실히 장사가 된다. 음악을 팔든 웹툰·웹소설을 팔든 게임을 팔든 분모가 꽤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서브컬처와 서브컬처가 아니거나 아니게 된 것을 구분하는 일이 그렇듯, 서브컬처와 산업자본이 뒤섞여 엉킨 지금에 와서는 둘을 분리해 생각하는 일도 불가능하고 불필요해 보인다. 이제는 산업적 맥락과 함께 서브컬처 창작자-텍스트-수용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산업자본의 자장 하에서 텍스트들의 복잡성도 심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서브컬처 텍스트는 한 편에 완성된 의미를 담는 대신 수많은 다른 텍스트들과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생성한다. 다시 말해 많은 서브컬처 텍스트는 수십에서 수백 편에 달하는 다른 텍스트들을 기억하고 연결해야 재미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상호텍스트가 되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서브컬처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 향유패턴을 읽어낼 새로운 논의틀의 마련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이제는 꼭 서브컬처만이 아니라 많은 대중문화 장르에서 서브컬처가 일종의 상업적 코드로 각광받고 있다. 그 코드가 갈수록 확대되다 보니 이제는 서브컬처가 보편화로까지 향해가고 있다. 여전히 서브컬처임을 드러내는 텍스트들도 많지만, 이젠 서브컬처적 코드를 완전히 제거한 텍스트들도 대중문화에서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너무도 많은 대중문화 텍스트에 서브컬처의 정서가 은밀히 숨어 있거나, 창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서브컬처적인 텍스트가 만들어지기도 하며, 플레이어의 경험이나 욕망과 마주침으로써 해당 텍스트가 서브컬처화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한 서브컬처의 보편화는 서브컬처를 사라지게 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서브컬처임을 전면에 내세우는 텍스트에, 비-서브컬처 텍스트의 한 재미요소 정도로 서브컬처가 소재나 정서로 녹아드는 텍스트까지 더해져, 서브컬처가 눈앞에 두고 향유하는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브컬처의 외적 팽창과 내적 복잡화화가 동시에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서브컬처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기 위한 상상력과 전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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