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쇼미더머니>는 벌써 열한 번째 시즌을 맞았다. 해마다 돌아오는 각설이 타령처럼 어느덧 방영 소식도 지루해졌지만, 이번 시즌 가장 화제를 모으는 출연자를 꼽자면 단연 이영지다. 이영지는 2019년 엠넷 <고등 래퍼> 시즌3 최종 우승자로 힙합 신에 데뷔했고, 이후 래퍼보다는 SNS 셀럽, 방송인으로 활약상을 이어 갔다. 이 자체는 별날 것도 없는 커리어다. 방송인으로 활동하다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래퍼, <쇼미더머니> 출연 이후 방송인이나 유튜버로 진로를 튼 래퍼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힙합 경연 방송이 래퍼들에게 미디어와의 접점을 만들어 주는 장이란 걸 생각하면 얼마간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영지의 <쇼미더머니> 출연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방송 참가 자체로 유달리 논란이 된다는 사실이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 이영지 출연이 알려진 직후부터 힙합 팬들이 머무는 커뮤니티에선 아우성이 튀어나왔다. 왜 래퍼가 아닌 방송인이 래퍼들 경쟁에 나오느냐, 왜 셀럽으로 잘 먹고 잘살면서 무명 래퍼들이 주목받을 기회를 뺏느냐, 음악 작업물도 잘 발표하지 않았으면서 래퍼랍시고 방송에 나가는 게 맞느냐…. 한편으론 <쇼미더머니>를 꾸준히 비판해 온 강일권 힙합 평론가가 최근 ‘음악을 향한 인정 욕구를 채우려는 방편으로 앨범을 만드는 대신 방송에 나가는 현실이 씁쓸하다’는 취지의 코멘트를 남겼다.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1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1

전자의 비판은 이영지의 출연 자격을 캐묻는 것이고, 자격 없는 사람이 기회를 뺏어 간다는 ‘공정성의 정신’(?) 입각해 있다. 힙합 커뮤니티 유저 중엔 래퍼 데뷔를 꿈꾸는 ‘잠재적 래퍼 지망생’들이 있고 <쇼미더머니>에 지원했다는 인증 게시물도 올라온다. 그들이 느낄 법한 박탈감은 심정적으론 이해할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 일관된 비판은 아니다. 이미 <쇼미더머니>엔 수많은 기성 래퍼가 참가해 왔다. 방송인, 유튜버, 아이돌도 있었고 음악 작업물이 부족한 참가자도 많았다. 출연을 통해 많은 보상을 얻었지만 두 번, 세 번 거듭 나오는 참가자, 프로듀서가 널려 있어 새 얼굴 부족이 문제로 꼽힐 정도다.

이 방송은 참가 자격이 심사받는 순수한 음악 무대도 아니었고, 신인들 기회 박탈은 시스템적으로 고착돼 있었다. 1차 심사 지원자는 수천 명에 이르지만 커리어 없는 래퍼 지망생 절대다수는 참가자 규모를 이루는 숫자로만 집계된다. 본선에 진출하는 많은 이들이 기성 래퍼다. 소수의 래퍼가 방송 출연이 주는 지명도 상승과 행사 섭외를 나눠 먹는 기득권 구조가 <쇼미더머니>의 시스템이다. 힙합 커뮤니티에선 그동안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한 비판이 고루한 훈장질이라며 도리어 반발을 사곤 했다. ‘불공정’ 시스템에 눈감고 즐겁게 몰두하던 이들이 유독 이영지에 관해선 ‘공정성’에 화를 내고 있다.

그에 비하면 후자의 비판은 일관성이 있다. 그의 비판엔 특정 방송이 장르 신을 잠식하고 방송 출연이 창작 행위를 대신하게 된 현상에 대한 개탄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쇼미더머니>의 힙합 신 독과점은 장르 신 일각에서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이영지 개인을 거명하기엔 논점이 불분명한 면이 있다. <쇼미더머니>는 장르 팬 사이에서도 가장 화제성이 큰 연례행사가 됐고, 방송 경연곡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힙합 음원이다. 이 방송에 나가야 음악적으로 주목 받는 것이 현실일진대, 바로 그 환경이 낳은 래퍼가 다시금 방송을 통해 경쟁하고픈 욕구를 품었다면 사실 자연스럽고 솔직한 것이다.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1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1

<쇼미더머니>를 옹호하고 비판하는 이들의 시선엔 각각 나름의 빈틈이 있다. 방송에 출연한 래퍼들과 방송을 즐기는 장르 팬들은 ‘이건 예능일 뿐이니 정색하지 마라’고 비판을 회피해 왔지만, 그들 중 일부는 갑자기 근엄한 표정으로 방송 ‘출연 자격’을 요구한다. 방송을 비판하는 소수 의견은 장르 신의 음악적 요소와 구조가 왜곡됐음을 지적해왔다. 물론 타당한 의견이지만, <쇼미더머니>가 힙합 신의 상업성을 구성하고 히트곡을 공급하며 음악적 생산효과를 창출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 방송은 지난 10년 간 힙합 신 외연이 커지고 스타플레이어들이 전업 음악가로 활동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보급했다.

<슈퍼스타 K>와 달리 <쇼미더머니>가 10년 넘게 장수하는 건 장르 신이란 구체적 기반을 품은 방송이라서다. 한국 힙합 신과 <쇼미더머니>는 도저히 분리해낼 수 없을 만큼 물질적 토대가 유착돼 버렸다. 하지만 수혈할 새로운 피도 말라붙어 가는 이 방송이 만약 종영돼 버린다면 무엇으로 물적 기반을 대체하고 신을 재생산할 건가? 실제로 시청률도 화제성도 점점 식어가고 그에 비례해 힙합 신도 위축되고 있지 않은가? 힙합 신 구성원들이 이 방송을 두고 토론할 가치가 있는 의제가 있다면 이런 질문이다. 이영지는 자신의 화제성으로 타들어 가는 장작에 불씨를 지펴주는, 방송이 지속되길 바라는 이들로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출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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