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가상공간이 현실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차원에서 메타버스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된 듯하다. 미디어 기업과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은 물론이고 대학, 은행 그리고 정부부처에서도 메타버스 플랫폼과 콘텐츠를 제작하고 활용한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보편화되고 그 영향력이 점증함에도,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은 여전히 기존의 정의들을 불러오는 수준에 그치거나, 느슨하고 막연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개념이 더 널리 그리고 많이 활용되기 위해서는 그게 유리한 측면도 틀림없이 있겠다. 그럼에도 보다 정교화된 메타버스 논의를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서 메타버스의 정의를 보다 엄밀하게 그리고 조작적으로 내릴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그 본격적인 작업을 위한 단서들을 찾고자 한다.

메타버스 개념의 기원

미국의 베스트셀러 SF 작가 닐 스티븐슨은 1992년에 펴낸 장편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
미국의 베스트셀러 SF 작가 닐 스티븐슨은 1992년에 펴낸 장편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

미국 작가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공상과학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 1992)>에서 처음 사용된 ‘메타버스’는 ‘meta(가공/추상)’와 ‘universe(세계)’가 합쳐진 단어이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이 아바타(avatar)를 통해 활동하는 가상세계를 일컫기 위해 사용되었던 고유명사 ‘메타버스’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으면서 ‘현실세계를 초월해 만들어진 가상세계’를 일컫는 보통명사로 쓰이게 된다.

보통명사화 된 메타버스는 여러 단체나 사람들에 의해 꾸준히 규정되고 유형화돼 왔다. 대표적으로, 미국 미래가속화연구재단(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 이하 ‘ASP’)의 시도를 꼽을 수 있다. ASP는 2007년 ICT, 가상세계, 미래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메타버스 로드맵(Metaverse Roadmap: 이하 ‘MVR’)’ 프로젝트를 발족, 메타버스 규정, 관련 기술개발, 사업모델 발굴 등을 목표로 삼았다.

MVR에 따르면, 메타버스는 1992년 <스노 크래시>가 말하는 가상세계의 비전을 넘어, 가상의 환경을 구성하고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세계의 행위자, 대상물, 인터페이스 및 네트워크 측면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이에 MVR은 메타버스를 ①가상으로 강화된 물리적 현실과, ②물리적으로 영구적인 가상공간이 융합된 것으로 규정한다. 참여자는 둘 중 하나를 경험할 수도 있고, 둘이 합쳐진 것을 경험할 수도 있다.

나아가 MVR은 메타버스의 전개방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두 쌍의 핵심축인 ‘증강(augmentation)과 시뮬레이션(simulation)’, ‘내재성(intimate)과 외재성(external)’을 기준 삼아, 메타버스를 ①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②라이프로깅(lifelogging) ③거울세계(mirror worlds) ④가상세계(virtual worlds)의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후 메타버스를 언급함에 있어 MVR의 정의와 유형이 가장 많이 활용되지만, 그리고 다른 시도들 역시 MVR의 정의와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MVR이 <스노 크래시>를 두고 언급했던 것처럼) 이제 메타버스는 MVR이 말하는 가상세계의 비전을 넘어, 기존보다 훨씬 강화된 기술환경 하에서 또 하나의 현실로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활동을 확장하는 공간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합의되지 않은 다양한 정의가 있다고는 해도, 기존 논의들을 거칠게 종합하자면, 이제 메타버스는 ‘참여자가 아바타를 통해 접속해 자유롭게 사회·경제·문화적 활동을 하는, 현실세계와는 독립적 혹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갖는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정의에 담긴 키워드의 특징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상세계

SK텔레콤이 댄스 콘텐츠 기업인 원밀리언(1MILLION)과 협력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서 댄스 클래스, 오리지널 콘텐츠 등을 감상하며 댄스로 소통할 수 있는 '원밀리언 랜드'를 오픈한다고 밝혔다. [SKT 제공=연합뉴스]
SK텔레콤이 댄스 콘텐츠 기업인 원밀리언(1MILLION)과 협력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서 댄스 클래스, 오리지널 콘텐츠 등을 감상하며 댄스로 소통할 수 있는 '원밀리언 랜드'를 오픈한다고 밝혔다. [SKT 제공=연합뉴스]

‘가상세계’로서의 특징이 나머지 키워드에 우선하므로 먼저 살펴본다. HMD(head mounted display), 고글, 이어폰 등 외적 인터페이스를 통해 참여자는 현실과는 독립된 가상의 공간으로 연결된다. 그 공간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2D 또는 3D 공간으로, 넓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메타버스 속 모든 것은 물리적 실체를 갖지 않는다.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중요한 기반으로 세계관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관은 가상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원리로, 세계의 전반적인 콘셉트와 시·공간 배경, 그리고 그 안에서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메타버스의 세계관은 후술하겠지만 개방적이며, 다른 세계관(들)과의 호환가능성이 높다.

세계관이 메타버스의 기본조건이라면, 실제로 그 가상세계를 가상세계답게 만들고 진행시키는 방법으로 작용하는 것은 법칙과 규칙이다. 메타버스에는 시스템에 의해 강제로 지켜질 수밖에 없는 법칙과, 참여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켜지는 규칙이 공존한다. 가령, 메타버스 속 아바타는 정해지지 않은 행위를 할 수 없다(법칙). 그리고 가급적 참여자들은 다른 참여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활동하고자 한다(규칙).

특정 세계관을 갖는 가상세계에서, 법칙과 규칙에 기반하여,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메타버스 이용의 기본적인 뼈대다. 개별 서비스에 따라 세계관과 법칙·규칙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각 세계관은 대개 현실을 반영한다. 현실에 있는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일정 부분 현실의 논리가 작용하기도 하는 가상세계가 메타버스다. 그러한 현실과의 유사성이 메타버스를 현실의 대체 혹은 대리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다음에서 이야기할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특성의 상당 부분이 현실과의 유사성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공간

로블록스 아바타들. [로블록스 제공=연합뉴스]
로블록스 아바타들. [로블록스 제공=연합뉴스]

가상세계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공간이다. 물리적 현실 속 참여자가 가상의 공간에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아바타(avatar)가 필요하다. 아바타를 통해 참여자는 원래의 자신이 지닌 것과 다른 정체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즉, 아바타를 통해 참여자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거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거나, 그 아바타를 통해 나를 더 드러내거나 감추는 등의 ‘상징조작’을 할 가능성을 획득한다. 메타버스의 한 특징으로 ‘부캐릭터’가 빈번하게 언급되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다수의 참여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접속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도 중요하다. 그렇게 접속한 참여자=아바타는 메타버스 속 각종 오브젝트와 상호작용하고, 다른 아바타(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아바타들 간 보다 활발한 교류를 위해 커뮤니티(친구, 이웃, 길드, 클럽, 클랜, 당 등)를 꾸리고, 내적 인터페이스(아바타, 홀로그램, 메신저 등)를 통해 친밀성 혹은 관계성을 형성하는 일도 가능하다.

경제적 활동

현실세계에서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가상세계에서도 경제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참여자들은 메타버스에서 경제적 활동을 펼치고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메타버스에 구축된 경제체계와 그 안에서 이뤄지는 경제적 활동은 기존 온라인 플랫폼이나 게임에서의 그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메타버스에서만 가능한 경제체계·활동도 존재한다.

메타버스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고유의 디지털 가상경제 체계를 만들어낸다. 또 하나의 세상으로서 메타버스 안에는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디지털 화폐가 존재한다. 참가자가 직접 창작자가 돼 제작한 아이템이나 게임을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뿐 아니라, 제페토(Zepeto), 마인크래프트(Minecraft), 포트나이트(Fortnite)와 같은 플랫폼에서도 자체 디지털 화폐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대체불가토큰 (NFT) (PG) [연합뉴스]
대체불가토큰 (NFT) (PG) [연합뉴스]

디지털 화폐 자체는 기존 온라인 플랫폼이나 게임에도 존재하는 요소였다. 디지털 화폐는 보통 가상세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으로, 결제나 거래 기능 등이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블록체인 기술을 디지털 화폐에 활발하게 적용한다. 메타버스 참가자가 디지털 화폐를 실물화폐와 교환할 수 있고, 자산의 소유권도 증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메타버스 내에서는 이론상 투명한 경제체제·활동이 가능하다. 가상세계 내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세계 내 마켓 플레이스에서 중개인 없이 직접 개인 간 거래도 가능하다.

메타버스 안에서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경제체제·활동이 가능한 것은 아니나, 그 경제체제·활동이 보다 활성화·본격화될 수 있는 곳이 메타버스임에는 틀림없다. 기존에 존재하는 상품·자산이든 가상세계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상품·자산이든, 희소성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는 것은 동일하다. 메타버스에서는 그러한 희소성이 빛을 발하기 좋다. 대체 불가능 토큰(이하 ‘NFT’)은 희소성으로 가치가 오르고 증명된다. 블록체인과 NFT가 메타버스 경제체제와 활동을 언급하는 데 있어 가장 빈번하게 동원되는 키워드다. 데이터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은 아바타가 익명으로 활동하는 가상세계에서 신뢰를 가져오고, NFT로 탄생한 아이템과 여러 자산에는 실제 가치를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상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안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경제활동 시간도 다양해지고 증가할 수밖에 없다. 메타버스에서의 경제체계와 활동이 갖는 특성은 독자적으로 구축되기도 하고, 현실의 그것과 융합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고유의 ‘메타노믹스(metanomics)’로 나아갈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메타버스에서 고유의 경제활동뿐 아니라 현실과 같은 경제활동이 가능하고, 그러한 활동이 현실세계의 경제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가상세계의 발전이 현실세계의 경제활동을 변화시키는 주된 요소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그렇기에 메타버스에서 이뤄지는 경제논리는 현실의 경제논리로 이어짐과 동시에, 특정 맥락에서는 현실의 경제논리를 뛰어넘기도 한다.

문화적 실천

메타버스는 문화적 실천이 이뤄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포트나이트>는 현실세계에서 즐기던 각종 문화 이벤트를 유입해 새로운 참여자 경험을 만들었다. 2019년 DJ 마시멜로우 콘서트를, 2020년 4월에는 트레비스 스캇 콘서트를 개최했다. 특히 스캇의 콘서트의 경우, 15분 남짓 되는 공연시간 동안 1,000만 명 이상의 참가자가 모였다. 그로 인한 수익은 2,0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아이돌 그룹 BTS(방탄소년단)도 2020년 9월 신곡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의 안무버전을 포트나이트에서 최초 공개했고, 참가자의 아바타가 BTS 춤을 출 수 있도록 관련 이모트를 제작했다. 또, 2020년 6월에는 ‘무비 나이트’라는 이름으로 파티로얄에서 거대 스크린을 통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BTS '다이너마이트' 새 MV, 게임 속 공간에서 상영회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BTS '다이너마이트' 새 MV, 게임 속 공간에서 상영회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렇듯 메타버스 이벤트에 많은 참가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이벤트 개최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폭증하는 수요를 일정 부분 해소해준다. 둘째, 유사 이벤트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 자체로 화제성을 낳는다. 셋째, 가상세계에서만 가능한 효과와 이벤트 때문이다. 거인처럼 커다랗게 등장한 아티스트가 불을 내뿜거나 하늘을 누비는 등 메타버스에서만 가능한 특수효과가 참가자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한다. 넷째, 경품으로 획득 가능한 게임 아이템이나 이모트도 기존 메타버스 참가자의 만족감을 향상시킨다.

메타버스는 참여자 차원의 문화적 실천이 이뤄질 가능성도 갖는다. 이는 메타버스 속 아바타들이 갖는 행위의 무목적성 혹은 무한대의 목적성에서 비롯된다. 참여자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하고 목표를 설정한다.

물론 이렇게 언급한 메타버스의 속성들은 상호배타적이지도, 망라적이지도 않다. 그것들은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고, 다른 새로운 속성이나 양상들로 나아간다. 그리고 네트워크, 하드웨어, 컴퓨팅 등과 같은 기술의 발전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전에 없던 속성과 양상이 펼쳐질 확률도 높다. 기존의 게임이나 소셜 미디어 서비스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 같은 궁극의 메타버스 서비스로 진화 혹은 통합될 수 있고, 아예 새로운 서비스가 메타버스로 등장할 수도 있다. 이에 현재 시점에서 메타버스를 주요 속성들을 중심으로 재정의한다 해도, 앞으로 이를 통해 메타버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꾸준히 추적하고 기존의 정의를 수정·보완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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