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북한 선원 강제 북송을 둘러싼 정치권의 입씨름을 보고 있자면 서글퍼진다. 진중하게 논의할 가치가 있는 문제도 저질스런 공방으로 소모해버리는 현실 정치의 민낯이 가감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북한 눈치를 보느라 혹은 부적절한 거래를 위해 선원들을 사지로 내몰았느냐는 주장과, 그러면 엽기 살인마를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들여 보호해줘야 하느냐는 항변의 충돌이 보여주는 바가 바로 그렇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문재인 정권은 문제를 잘못 처리했다고 본다. 어떤 이유로든 간에 정당한 재판과 이에 따른 처벌을 기대할 수 없는 곳으로 북한 선원들을 보낸 것은 문제다. 해외의 단체들이 지적하는 바도 이것이다. 일이 이런 식으로 처리되어선 안 된다. 앞으로의 논의는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논하는 데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이 하는 얘기들은 이런 논의와는 거리가 멀다. 다들 잿밥에만 관심이 가 있다.

전 정권이 북한의 의향에 따라 북한 선원들의 신변을 처리한 것 아니냐는 의심에 근거가 있으려면 적어도 북한이 그것을 정치적 이유로 강하게 원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선원들의 북송이 북한 권력 핵심이 강하게 원하는 바여야 눈치든 거래든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근거는 없고 보수세력의 '넘겨짚기식' 주장만 횡행한다. 의아한 일이다.

통일부가 지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북한 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12일 공개했다.(사진=연합뉴스)
통일부가 지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북한 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12일 공개했다.(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엽기 살인마’를 자꾸 얘기하는데, 이 사건은 그 선원들이 ‘엽기 살인마’인지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살인마든 뭐든 귀순 의사를 밝혔으면 국민으로 대우해야 하고 이전에 저지른 죄가 있다면 국내법에 따라 처벌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증거는 자백뿐이므로 처벌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반론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핵심은 전 정권 사람들이 말하는 ‘귀순 의사의 진정성’에 대한 판단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이다. 통일부가 당시 현장이 찍힌 사진을 공개하고 영상도 추가로 공개할지 검토한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북송을 격렬히 거부하는 선원들의 모습을 보면 귀순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실도 통일부가 공개한 사진을 근거로 ‘귀순 의사가 없었다’고 한 전 정권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했다. 국민의힘, 통일부, 대통령실이 일관된 맥락에서 당시 정황을 재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실제로 사진이나 영상이 새롭게 설명하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사진과 영상이 보여주는 것은 선원들이 ‘북송을 거부했다’는 것뿐이고 이건 이전에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귀순을 원하지 않았더라도 북송을 거부할 수 있다는 논리적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일부의 사진 공개는 여론몰이의 성격이 다분하다. 대통령실이 한마디 거들 듯 내놓은 입장도 사실을 왜곡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공격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전 정부의 설명은 ‘귀순 의사의 진정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취지이지, 선원들이 귀순하겠다는 주장을 한 바 없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은 왜 이러는 것일까?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지지층 결집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에 일리가 있다. 강제 북송 논란은 전통적인 보수층과 젊은 보수적 유권자층이 함께 반발하기 좋은 소재이다. 전통적 보수층은 이 사건이 이전 정부의 ‘종북주의적 성향’을 보여준다고 여긴다는 점, 젊은 보수적 유권자층은 권력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개인의 인권을 짓밟았다는, 즉 이전 정권이 중국과 같은 ‘전체주의적 리더십’을 구현한 것으로 믿을 수 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즉, 강제북송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을 가능케 한 유권자연합이 다시 한 번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정치적 활용 가치가 충분하다.

강제 북송 재발 방지 토론회에서 축사하는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서울=연합뉴스)
강제 북송 재발 방지 토론회에서 축사하는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서울=연합뉴스)

그러나 이런 판단은 미뤄두고 현실적 대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행 제도에 의하면 북한 거주민은 그 이전의 경과가 어쨌든지 간에 귀순 의사를 밝히는 순간 우리 국민이다. 이건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비추어 보면 매우 특수한 것이다. 이 특수성은 누구나 잘 알고 있듯 분단이라는 상황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분단에 기초한 지금의 남북관계는 영원한가? 그렇지 않다. 정권에 따라, 또 시기에 따라 남북관계는 충분히 개선될 수 있고 본질적 변화를 겪을 수 있다. 그러한 변화는 우리가 판문점 회담 등을 통해 봤듯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법제도부터 먼저 바꾸고 거기에 맞춰 남북관계가 변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남북관계가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를 겪는 와중에도 이전의 대립적 관계를 전제로 만들어진 법 제도를 그대로 적용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지금 와서 보면 한여름 밤의 꿈 같은 것이 되었지만, 어쨌든 전 정권은 판문점 회담으로 남북관계가 변화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가졌다. 그런 상황에서 경쟁하듯 귀순을 유도하고 그걸 체제 우월성의 상징으로 여길 필요는 없는 거다.

강제북송은 그러한 판단의 연장선에서, 마치 남북이 서로를 인정하는 국가 대 국가인 것처럼 진행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 부적절한 결정이었다는 비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권처럼 직권남용의 혐의를 따지는 사법적 단죄의 방식으로 접근할 문제일까? 상당한 의문이다. 오히려 앞으로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남북 간의 각종 사안에 대해 정부가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 같다.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국정원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남북 간 핫라인을 통해 오고 간 내용을 전부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이전 정권에서 추진된 대북정책 전반이 사정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적어도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은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강제북송을 거쳐 ‘핫라인’까지 오게 되면 이 상황의 본질은 ‘전 정권 뒤집기’라는 정치적 해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이럴 때일까? 중앙일보 18일자 지면에 실린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글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장덕진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편가르기 정치’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조건에 이미 들어와 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전 정권 수사는 별 효과가 없고, 이보다는 국정에 대한 협상과 타협을 시도하는 정공법과 이를 위한 제대로 된 국가 전략을 제시하는 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지금 상황이 우려되는 건 전 정권의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무한정 뻗어나갈 태세인 사정의 그림자가 누구 한 사람의 기획과 설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는 대통령실과 여당, 뒤집힌 내부의 권력관계를 다시 뒤집어야 하는 국정원의 내부 갈등, 검찰 수사권 축소가 현실화될 수 있는 9월까지 뭐라도 성과를 내야 하는 검찰의 처지가 뒤엉켜 한쪽 방향으로 강력히 쏠리는 자장을 만들어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통령뿐이다. 지지율이 얼마가 나오든 임기 초반의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세다. 때를 잘 활용해야 한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