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자 조간신문은 예상됐던 대로 전날 저녁에 있었던 여야 대통령후보들의 3자 TV토론 관련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서울지역 시청률만 29% 나올 정도로 많은 유권자들이 관심 있게 본 TV토론을 해석하는 신문들의 자세는 각기 성향만큼이나 격차가 있었다.

다만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의 경우 1면 머리기사는 대선 후보자 TV토론과 무관한 기사를 선택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조간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들.

<문·안의 한계가 부른 야권의 위기>(경향)
<이 대통령, 민간인 사찰 ‘비선 라인’ 알고도 비호>(한겨레)

<박근혜 “文 NLL 말 바꿔 진정성 의심” 문재인 “천안함 등 MB정부 안보 무능”>(한국)
<朴 “통합 대통령” 文 “상생 대통령”>(서울)
<박근혜 “문, 아들 부당 취업” 문재인 “박, 만사올통 말 돌아”>(국민)
<박근혜 “전두환 정권서 받은 6억 환원할 것”>(중앙)
<이정희 “朴 떨어뜨리려 출마”… 지지율 0.7% 후보에 휘둘린 TV토론>(동아)
<정책대결보다 인신공격… '짜증' TV토론>(세계)

TV토론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어땠을까.

한겨레신문은 3면 2단 기사 <“박근혜, 네거티브 질문 패착/문재인, 존재감 드러내지 못해/이정희, 발군이지만 효과 글쎄”>를 통해 전문가들의 평점을 공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13명의 전문가 중 박근혜 우세라고 평가한 사람은 전원책 변호사 1명이었으며, 문재인 후보 우세로 본 전문가는 곽동수 숭실사이버대 교수 등 6명이었다. 두 후보 간에 팽팽한 접전을 벌인 것으로 본 전문가도 6명이나 되었다. 전문가 평가로는 박근혜 참패인 셈이다.

신문은 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준비 부족을 드러내는 등 별로 성공하지 못했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품위는 있으되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대신 이정희 후보만이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박근혜 후보가 토론에 부적격한 것은 물론 대통령에도 부적격한 인물이란 점이 TV를 통해 유감없이 전달된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지만, 문재인 후보가 존재감이 없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날선 자세로 시종일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맹공을 가하는 구도에서 문재인 후보가 존재감을 과시하려면 이정희 후보보다 더한 강도로 박근혜 후보를 몰아붙이는 길 외에 어떤 것도 없다. 시간이 극히 제한된 TV토론에서 네거티브 공세 이외에 후보자가 부각될 수 있는 수단은 전무하다시피하다.

그것이 과연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것인지도 의문이거니와 국민 시선에도 그리 곱게 비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날선 공격이 보수세력들에게는 고깝게 비치겠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그런대로 용인(?) 받을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정희 후보가 군소정당 대통령 후보 때문이기도 하다.

어제 토론은 이정희 후보의 날카로운 공격으로 박근혜 후보의 약점과 불안함이 여지없이 드러난 반면 문재인 후보는 두 여성후보의 이전투구에 묻히긴 했지만 결국은 대선의 키를 쥐고 있는 중간층들에게는 어필하는 토론 태도를 보였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중앙, ‘TV토론 누가 잘했나’ 코미디 같은 엉터리 여론조사 결과 발표

조간신문 기사 중 가장 ‘개그’ 같은 기사가 한편 있어 소개한다. 토론 평가 기사다. 중앙일보의 6면 2단 기사 <토론 누가 잘했나 … 여자는 박, 남자는 문 >이 바로 그것.

이 기사의 내용은 토론 후 여론조사를 했더니 세 후보 중 박근혜 후보가 가장 잘한 것으로 평가됐다는 내용이다. 낯 뜨거운 조사를 한 이 신문 스스로도 부끄러웠던지 제목을 “여자는 박근혜 후보, 남자는 문재인 후보가 토론을 잘한 것으로 평가했다”는 취지로 잡았다.

신뢰성이 담보되는 조사를 통해 TV토론에서 가장 잘 한 후보로 국민들이 박근혜 후보를 꼽았다면 이것은 1면 머리기사 감이다. 이 신문의 특성상 반드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도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6면에서도 구석에 이 기사는 처박혔다.

신문은 이 여론조사는 토론이 진행 중인 “4일 오후 8시30분부터 10시까지 집전화로 진행”됐고 표본 수는 554명. 토론 도중에 설문조사하는 것도 기상천외하지만 더욱 코미디는 “이번 조사의 표본은 편의표집 방식으로 선정했고, 집계 과정에서 가중치를 부여했다”는 부분이다. 즉 내 맘대로 표본을 정하고 이 표본 구성도 전국 인구비례나 직업별, 성별 비에 맞지 않을 경우 마음대로 부족한 부분을 더했다는 뜻이다. 여론조사도 아니고 어디 초등학교 반에서 손들어 의견 조사를 한 수준이다.

이 조사의 최대 허용 오차범위는 “무작위를 전제로 할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4.2%포인트, 응답률은 36.3%라고 신문은 스스로 밝혔다. 거의 하나마나 한 조사다. 여기서 "누가 토론을 제일 잘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박근혜(36.0%), 문재인(29.2%), 이정희(19.2%) 순이었다고 한다. 집 전화로 진행된 이 조사의 불합리성을 따져볼 때 이정희 후보가 19.2% 나온 건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가장 ‘버벅거린’ 대목이 바로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6억 원. 이정희 후보는 요즘 시세로 ‘은마아파트 30채 값’ (3백억 원 이상)인 6억 원을 전두환에게 받은 사실을 강하게 추궁했고, 박근혜 후보는 눈에 띄게 당황한 자세로 중언부언 횡설수설하는 답변을 늘어놓았다.

중앙일보는 이와 관련한 박근혜 후보의 답변을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이 신문은 <박근혜 “전두환 정권서 받은 6억 환원할 것”>이란 제하의 기사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정희 의원의 질문에 “당시 아버지가 흉탄에 돌아가신 경황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받았다. 그러나 저는 자식도 없고, 아무 가족도 없다. 나중에 그것은 다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단순전달에만 그친 셈이다.

한겨레신문은 반면 3면 머리기사 <박 ‘전두환이 준 6억’ 떳떳치 않은 돈 시인…대선 쟁점으로>에서 이 돈의 성격을 비교적 자세히 전하면서 대선의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동아, 이정희에 ‘짜증’내며 TV토론 무력화

미리 예상은 했지만 보수언론의 이정희 후보 공격도 벌써부터 시작된 느낌이다.

동아일보와 세계일보는 각각 <이정희 “朴 떨어뜨리려 출마”… 지지율 0.7% 후보에 휘둘린 TV토론> <정책대결보다 인신공격… '짜증' TV토론>이란 제하의 1면 머리기사에서 시동을 걸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지지율 1% 이하의 한 후보로 인해 18대 대선 첫 TV토론회가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한탄했다. 지지율 1% 이하의 한 후보에게 지지율 40%대의 여성 후보가 완전히 격침된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기사다.

세계일보는 “정책대결보다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 등 네거티브 공방이 두드러졌다”면서 “전문가들은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의 공격이 부각되면서 유력 후보인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정책차별화가 묻혀 부동층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는 희망 반 기대 반 관측을 내놓았다.

한겨레 1면 톱은 ‘MB, 민간인사찰 알고도 비호했다’

선거 기사를 제외하면 한겨레신문의 1면 머리기사 <이 대통령, 민간인 사찰 ‘비선 라인’ 알고도 비호>가 눈길을 끈다.

신문은 이 기사에서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을 ‘비선’으로 지휘했던 이영호(48·구속기소)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수시로 ‘독대’ 보고를 했으며, 이 대통령은 ‘비선 라인’의 존재를 알고도 이를 비호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알려지기도 한 것인데, 이번 기사의 요점은 “수만쪽의 민간인 사찰 재수사 기록 가운데 진경락(45·구속기소)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의 외장 하드디스크에서 나온 ‘공직윤리지원관실 거취 관련 VIP(브이아이피) 보고 결과’ 문건”을 직접 입수했다는 점이다.

이 기사대로 보면 결국 민간인 불법사찰은 명백하게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기획하고 실행해 보고까지 받은 이명박 표 작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겨레신문의 1면3단 기사 정권 위해 ‘칼춤’ 춘 검사들, 여전히 요직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기사다. 신문은 기사에서 이명박 정권 속 정치검사 전성시대의 자세한 정황을 전하면서 일일이 명단과 ‘죄목’을 열거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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