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이 MBC <천기누설 무릎팍도사>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 목요일 왕좌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KBS <해피투게더3>와의 맞대결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무릎팍도사>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그 프로그램을 즐겨보던 이들에게는 희소식. 1년 넘게 자리를 비운 무릎팍도사 스튜디오, 게다가 <무릎팍도사>의 빈자리를 KBS <승승장구>와 SBS <힐링캠프>가 메운 지 오래다.

하지만 <무릎팍도사>에는 <승승장구>와 <힐링캠프>에는 없는 톡 쏘는 뭔가가 있었다. 잠정폐지 전 가끔 연예인 면죄부용 방송도 이어져 빈축을 사긴 했지만, 애초 <무릎팍도사>는 지상파 예능 토크쇼라고 믿어지기 어려울 정도로 다소 수위 높은 '쎈' 질문으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지금 그 바통을 이어 <힐링캠프> 또한 게스트들이 회피하고픈 난감한 질문을 '가끔' 하긴 하지만, '힐링'이라는 제목처럼 '착함'을 지향하는 <힐링캠프>와는 달리 <무릎팍도사>는 돌직구형 강호동에, '건방진 도사 유세윤'이라는 거침없는 캐릭터가 존재한다.

재개업한 <무릎팍도사>는 일단 초심찾기에 주력하는 듯하다. 그런데 1년 만에 재개장이라 다소 어수선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재빨리 첫 번째 손님 정우성을 맞은 <무릎팍도사>는 바로 분위기를 정돈하고 게스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1997년 영화 <비트>로 지금까지 청춘의 아이콘으로 회자되는 톱스타 정우성의 예능 나들이보다 강호동의 복귀와 재개장이 더 큰 이슈가 되었던 <무릎팍도사>. 명색이 게스트 중심으로 돌아가는 토크쇼인데 호스트 강호동만 주목받아 사뭇 걱정되었는지, 정우성의 스캔들을 둘러싸고 엄청난 폭로성 홍보로 게스트 정우성으로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데 성공했지만, 방송 당시 그 엄청난 충격 고백으로 이미 네티즌들에게 '호구형'으로 불린 정우성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반신반의다.

그리 썩 좋지만은 여론을 딛고 재개업한 <무릎팍도사>의 첫번째 문을 연 '정우성 편'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평소 방송 활동을 잘 하지 않기에 과묵한 신비주의 미남스타로 대중에게 엄청난 괴리감을 안겨주었던 정우성은 의외로 솔직하고, 차분하고, 생각도 깊고, 배려심도 있었다. 배우 정우성에게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그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가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것처럼 재개발로 인해 서울에서 얼마 남지 않은 판자촌을 전전할 정도로 그렇게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는 이제서야 알았다.

경기상고를 중퇴한 정우성의 남다른 이력 때문에, 대중이 정우성에게 가진 편견 중의 하나는 다름 아닌 '얼굴만 잘생긴 연예인'이다. 가방끈이 짧으면 배움도 짧을 것이라는 학력지상주의 통념을 산산이 부순 정우성의 속 깊은 신중 발언은, 그에게 별반 관심 없는 대중의 호감을 자극한다. 그는 화려한 겉모습에 배고픔이라는 설움을 알고 있던 남자였다. 때문에 그는 자신을 둘러싼 소박한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았고, 오래전부터 그를 열렬히 성원한 올드팬들의 이름을 다 외우는 정성을 보였다. 실제 정우성을 좋아하지 않았던, 아니 정우성은 얼굴만 잘생긴 연예인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살던 글쓴이가, 정우성을 다시 보게 된 것도 모 매체 기자의 인터뷰를 담은 책에서다.

그 기자가 인터뷰를 잘하고 글 솜씨가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그 인터뷰 속 정우성은 29일의 <무릎팍도사>에서처럼 깊이 있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줄 아는 멋진 남자였다. 때문에 <무릎팍도사>에서 시종일관 신중하게 자신의 발언을 이어나간 정우성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과묵해 보이는 스타일이기에 정우성과 유머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딜레마'와 같아 보였다. 물론 <무릎팍도사>-정우성 편을 보기 전까지.

하지만 강호동의 증언에 따르면 평상시에도 그의 베프 이정재와 함께 주위를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다는, 태생부터가 진지한 정우성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거칠고 투박한 강호동의 진행 속에서 의외의 재미있는 구석을 마구 뿜어낸다. 재개장 이후 첫 손님이라, 1년 만에 새로 시작하는 강호동의 부담을 줄여보겠다는 정우성의 의무감과 고군분투 덕분도 있겠지만.

정우성보다 강호동이 더 주목받을 것이라는 위험 요소가 있었지만, <무릎팍도사-정우성 편>은 오롯이 게스트 정우성을 돋보이게 한 토크의 진수를 선사했다. 물론 꾸밈없이 자신의 어려운 과거를 드러내며 외모보다 더 멋진 소신으로 정우성이란 연예인을 다시 보게끔 한 게스트의 선방도 있었다.

<무릎팍도사> 재방영을 앞두고 다시 화제가 된 스캔들이 대중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듯했지만, 일단 <무릎팍도사-정우성> 1탄은 강호동, 유세윤과는 차원이 다른 황광희의 짓궂은 장난에도 기꺼이 참을 수 있는 침착하고, 배려심 많고, 말 한마디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정우성의 재발견이었다.

특히나 등장부터 이지아와 관련된 난감한 질문을 '파리'라는 변화구로 초토화시키는 강호동의 화법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다음주 참 빠른 예고대로 정우성이 이지아와 관련된 중대 뉴스를 터트린다 해도 지난 1탄에서 보여준, 꾸미지 않아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정우성의 신중한 기품을 생각하면 지난 수요일과는 사뭇 다른 반응도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오랜만의 재복귀가 무색할 정도로 초반 어색함을 녹화 시작과 함께 극복, 자신의 진행에만 쏠린 시청자의 관심을 정우성의 인간탐구로 집중시킨 강호동과 시시콜콜 날카로운 지적으로 게스트를 옴짝달싹하게 못하게 하는 건방진 도사 유세윤이 약 1년만에 재개장한 <무릎팍도사>를 완벽하게 제자리로 돌려놨다. 지난 시즌1 올밴과는 달리 다소 시끄러우면서도 유세윤보다 정우성을 곤혹스럽게 하는 황광희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역시 유세윤이 있어야 할 곳은 <라디오스타> 보다 <무릎팍도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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