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스타 시즌1의 탑3까지 올랐던 백아연의 데뷔가 결정되었습니다. 소속사는 관련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기 시작했고,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하며 그녀의 자필 편지로 데뷔를 앞둔 심정을 팬들에게 직접 전달했습니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수혜자들이 조금씩 가요계를 점령해가고 있는 흐름 속에서, 아이돌 위주의 기획력과 오디션 얼개의 결합을 통해 생존을 노린 대형 기획사의 첫 번째 시도인 셈이죠. 그녀의 등장을 단순히 새로운 여자 솔로 가수의 데뷔로 보기에는 남다른 의미와 관심을 부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급작스럽습니다. SBS가 시즌2를 예고하며 참가자를 모집하는 방송을 하도 많이 봐서 착각하거나 잊어버리기 쉽지만, 백아연이 출연했던 K팝스타 시즌 1이 종료된 것은 고작 반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친 인재 중에서 이런 단기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데뷔한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빠른 데뷔 앨범을 들고 나온 버스커버스커는 이미 장범준의 풍부한 자작곡들 소스를 보유하고 있었고, 홍대를 비롯한 공연 경력을 가지고 있던 준비된 재원이었습니다. 곧이어 활동을 개시한 울랄라세션 역시도 이미 프로의 경력을 쌓았던 오디션계의 사기 캐릭이었죠. 그에 비하면 이제 연습생 단계에 들어선 백아연의 데뷔는 분명 이례적이고 빠릅니다. 게다가 그녀의 소속사가 JYP라면 더욱 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어요.
우선 지금의 JYP는 이슈메이킹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입니다. 2012년은 그야말로 이들에게 고통스러운 한 해였으니까요. 박진영이 전면에 나서며 야심차게 준비했던 ‘드림하이 시즌2’는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띄우려고 시도했던 신인 듀오 JJ프로젝트도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데뷔 활동을 마무리했죠. 박진영의 영화배우 도전도 초라한 흥행결과와 함께 박진영 자신의 시장가치마저 하락시켰고 그의 솔로활동 역시도 더 이상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밋밋하게 끝났습니다. 2PM은 닉쿤의 음주운전 사고로 발목이 잡혔고, 원더걸스는 미국진출 이후 예전의 위광을 좀처럼 찾지 못합니다. 조권과 우영의 솔로활동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나마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수지를 필두로 한 미스에이 정도가 자기 몫을 해주고 있지만 3대 기획사로 불릴 만큼의 성과로 보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한 해였어요. JYP nation을 앞세우며 위용을 과시하려 했지만 그 파급력 역시 미미합니다.
이것은 단기적인 성공과 실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JYP가 내세울 수 있는 카드의 질과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거든요.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슈메이커로 내세울만한 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다른 한 편으로는 연예계를 지배하는 권력의 또 다른 축인 방송국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기획사의 힘은 재능들을 적절한 분야에 걸맞게 올바로 성장시키고, 그들의 매력을 최적화시키는 기획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주 공장 생산품처럼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 과잉의 시대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들의 소속 가수들에게 활동하고 방송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줄 수 있느냐의 여부가 더욱 더 중요한 시대인 것이죠. 그리고 그 힘은 이른바 끼워 넣기가 가능할 정도의 거물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JYP는 서서히 다른 두 라이벌에 비해 힘이 빠지고 있는 형편이에요.
겨우 20대 여성 솔로 가수의 데뷔를 뭐 그리 심각하게 보냐구요? 물론 대중의 입장에서야 그저 좋은 여자 솔로 가수가 한 명 더 느는 것이면 좋을 것이고, K팝스타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를 주면서 보다 많은 재야의 고수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겠죠. 하지만 멍하니 화려하게만 빛나는 무대 위 사람들의 모습만을 보고 있는 것보단 그 이면에 있는 치열한 경쟁까지 함께 보는 것도 TV 속 요지경 세상을 바라보는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그런 이해와 고민이 그들의 의도대로만 소비하고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방송, 음악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구요. 요즘 들을 음악이 없다고 한탄만 하고 있기보다는 이렇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요구하는 것이 보다 다양하고 발전하는 음악과 방송을 즐길 수 있게 해줄 힘이 되어 줄 테니까요.
물론 그 무엇보다도 백아연 양의 데뷔를 축하합니다. 이 이면의 복잡한 계산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데뷔는 아이돌 천지의 가요계에 식상함을 느낀 대중이 슈퍼스타K를 위시한 오디션 출신 가수들에게 열광하는 변화의 영향이고, 그런 흐름이 대형 기획사들을 움직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제2의 백아연, 버스커버스커와 같은 좀 더 많은, 다양한 재능들을 보고 싶다면 바로 이렇게 알고, 고민하고, 원하고, 요구해야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