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셉트부터 좀 이상했다. 남자는 직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성차별적인 주제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곧 다가올 재앙에 비하면 그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방송이라 할지라도 벌어질 수 없는 엄청난 방송사고가 일어났다. 그것도 무려 20분 넘는 긴 시간 동안 1박2일을 보던 시청자를 멘붕시킨 음향실종 사건은 전무후무한 최악의 방송사고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음향만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목적지인 정동진역에 가까이 와서는 음향도 들리지 않는데 화면까지 겹쳐서 방송사고의 절정을 이뤘다. 설마 방송사고라고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 애먼 티비만 두들겨 팬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렇게 기나긴 생쇼를 벌인 끝에 알게 된 진실은 믹싱 오류였다. 허무했다. 차라리 티비 고장이 백 번 나았다. 어쩌다 1박2일이 이토록 비참하게 추락하고 말았을까 싶어 마음이 참담했다.

1박2일의 방송사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정동진에 도착한 후로 한 것이 전혀 없었다. 저녁 복불복도 생략됐고, 3인의 야외취침 멤버를 고르는 게임도 없었다. 그 대신 멤버들 목욕하고, 화장하는 모습 등 요즘 1박2일이 분량 때우기로 즐겨 사용하는 휴식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멤버들은 바깥으로 불러낸 후 갑자기 엄태웅이 제작진에 의해서 불려가는 도중에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방송이 끝나버렸다.

화면에 ‘다음주에’라는 자막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방송이 끝난 것은 아니겠지만 엄격하게 보자면 이것도 방송사고가 분명하다.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1박2일 첫날 일정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중요한 저녁 복불복과 잠자리 복불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심상치 않다. 혹시 이 와중에 정동진 여행을 3주 분량으로 늘리려는 것이라면 참 무모한 용기다.

어쨌든 본방 시간 방송을 지켜보던 1박2일 제작진들은 시청자보다 더 당황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왜 이런 방송사고가 났을지 하늘이 원망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굳이 찾자면 오프닝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수근은 멤버들에게 각자 유행어를 하나씩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 이유가 멤버들 캐릭터도 없기 때문인 것이 씁쓸했지만 그거라도 건질 수만 있다면 나쁠 것 없었다.

헌데 멤버들이 내놓은 자신만의 유행어들을 보면 현재의 1박2일이 처한 위치가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알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차태현은 “아 이게 뭐야 짜증나게”였고, 엄태웅은 “난 모르겠다” 그러자 성시경이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라고 끼어들었다. 그리고 김승우도 자기도 있다면서 “조용~”이라는 말을 했고, 일순 멤버들은 어떤 리액션도 하지 못하고 정적에 휩싸였다.

결국 큰형 김승우의 얼굴을 살려주기 위해서 멤버 전원이 그 동작을 따라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하필 조용하라는 의미였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찝찝했다. 예능에서 금기어인 조용하라는 말이 명색이 두 개의 예능의 중심인 김승우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1박2일의 현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정글의 법칙만 생존 버라이어티가 아니다. 모든 예능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쟁터이다. 그러나 1박2일 시즌2에는 그 치열함이 없다. 캐릭터 없는 건 둘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서로 입 닫고 싶은 이 위축되고 침체된 분위기가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시청자 역시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송사고 자체도 돌이킬 수 없는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하는 일이지만 현재의 1박2일은 방송사고보다 더 심각하게 재미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의 방송사고에 포털은 마비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에 비하면 그 파장은 의외로 작았다. 그만큼 1박2일에 관심이 줄어든 것이다. 구관이 명관일 수밖에는 없는 걸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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