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이 드디어 감을 좀 잡았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팀으로 나눠서 레이스를 펼친 워메징한 레이스는 정말로 어메이징할 뻔했다. 1박2일 특유의 명품경치를 찾아나서는 것에 단원 김홍도의 진경산수화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미술과 역사를 가미한 1석2조의 기획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방송 후 찬사가 쏟아질 만한 아이템이 분명했다.

1박2일은 그저 정직하게 승부나 가리는 출발드림팀이 아니라는 것을 제작진이 어렵사리 깨친 것은 일단 고무적이다. 한국인의 대표 식단이라 할 수 있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선택케 해서 팀을 나눈 것부터 복불복 정신을 확실하게 장착했다. 이후 차창에 입김을 불어서 다음 휴게소를 알게 하고, 점수체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농구게임으로 긴장감을 살린 것도 좋았다.

그리고 과정에 산 속의 헌책방을 시청자에게 알린 것은 깜짝 놀랄 일이다. 그것도 13만 권이나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책방이었다. 1박2일이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소개하는 것은 거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다. 마침내 1박2일이 본 모습을 찾은 것 같아 반가운 일이었다.

이번 레이스의 백미는 단원 김홍도가 왜 진경산수화의 명인인가를 직접 그림과 경치를 비교해볼 수 있는 산교육의 장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단양팔경에 대한 당연하고도 신선한 접근은 칭찬해줄 만했다. 역시나 1박2일의 가장 큰 가치는 가봐야 할 산하가 정말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데 있다. 이런 식이라면 미술이 아니라 경치를 읊은 고시가를 주제로 잡는 것도 무척 좋을 것 같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두 팀에게는 두 개의 스텐통이 주어졌는데, 그것을 열면 상대팀을 멈추게 하는 효력을 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이 복불복 스텐통을 연 것은 김치찌개 팀이었다. 그 결과 된장찌개 팀은 하필 강 한가운데서 정지명령을 받고 15분 동안 땡볕에 그대로 노출됐다. 잔인하지만 복불복의 묘미가 잘 살았다.

여기까지는 정말 재미가 쏠쏠하게 잘 풀려갔다. 그러나 그 두 개의 통을 모두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김이 빠져버렸다. 복불복은 진짜로 복이거나 재앙이 되어야 한다. 즉, 하나의 통에는 상대를 멈추게 한다면 다른 하나에는 그것을 연 팀에게 페널티가 돌아가는 것이 복불복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연 스텐통은 팀원 중에 하나를 버리는 페널티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결과 주원과 성시경이 낙오되어 또 다른 레이스를 펼칠 수 있게 돼서 좋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복불복의 묘미를 망친 결과였다. 공교롭게도 두 팀이 선택한 순서까지 레몬과 낙오 순으로 같아 더 흥미를 잃게 했다. 적어도 두 개 중 하나만 열 수 있게 했어야 했다.

복불복 스텐통을 두 개나 준비하면서 실제로는 복불복이 아닌 그냥 찬스를 부를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1박2일 제작진이 모처럼 깨알같은 아이디어를 구상해놓고도 의욕 과다로 대박 아이템을 망친 것은 너무도 아쉬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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