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드라마는 픽션이다. 그러나 추적자는 픽션이라는 생각을 진작 버리게 했다. 사건이 픽션일지라도 인물들은 너무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목만 추적자일 뿐 계속 쫓기기만 하는 소시민의 대표 손현주의 무기력함은 분량에서마저 소외당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시청자들에게 정치적 패배감만 남기는 결과가 될 염려가 생기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악의 축 서회장(박근형)과 강동윤(김상중)에 대한 매력(?)이 지나치게 커져버렸다는 점이다. 회가 진행될수록 이 둘의 존재감은 커졌고, 상대적으로 주인공일줄 알았던 백홍석(손현주)는 추적자가 아닌 도망자 신세만 전전할 뿐이다. 몇 번의 반격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번번이 차단되고 오히려 점점 더 입지가 좁아질 뿐이었다.

보다 못한(?) 검사 최정우(류승수)와 서회장의 막내딸 서지원(고준희)가 결정적인 힘을 보탰지만 그조차도 윗선에 의한 수사중지와 담당검사 교체라는 구조적 장벽에 부딪혀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좌절해버릴 것만 같은 상황에 의외의 변수가 발생했다. 김상중에게 열등감과 굴욕감을 가져왔던 서회장의 아들 전노민이 PK준의 휴대폰을 최검사에게 넘겨준 것이다.

이 깜짝 놀랄 변수는 의외로 통쾌한 점이 있었다. 이미 청와대를 접수한 마냥 권력배분이나 하던 한가로운 박근형과 김상중에게 충격과 반목의 계기를 준 것도 크지만 무엇보다 손현주의 추적자팀에게 마지막 반격의 기회를 잡게 했다. 검사가 검찰을 믿지 못하고 언론와 인터넷 여론에 기대는 장면이 무척 슬프기는 했지만 손현주가 자수하면서 동영상을 공개해 김상중의 당선을 막는 계획을 짰다.

그러나 그 마지막 계획이 먹힐 거라는 기대는 포기하는 편이 좋다. 이미 은신처를 알아낸 장신영과 김상중의 비선조직들이 출동하고 있기도 하지만, 앞서 납골당 저격 때처럼 허무하게 무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터넷을 이용한 동영상 유포가 막강한 확산력을 가진 것은 분명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에게 그 정도의 타격은 얼마든지 무마할 힘이 있다.

동영상 자체를 합성으로 몰면서 동시에 다른 자극적인 사건들로 물타기를 하는 정도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반격이다. 대중은 세상을 바꿀 충분한 힘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주 대중은 군우가 된다. 물론 거기에는 언론이 큰 힘을 보탠다. 엄청난 정치 사건이 연예인의 스캔들에 쉽게 잊혀지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서회장의 딸 고준희가 백홍석 사건을 기사화하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묵살된다는 내레이션이 있었듯이 돈과 권력과 맞설 생각을 버린 언론이라면 단지 사실을 덮는 것만이 아니라 희석하고, 호도하기 위한 적극적 행동 또한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대한 권력과 개인의 싸움은 그렇게 정리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작가에게 픽션을 사정하게 된다. 현실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비현실적인 희망이 더 필요하기도 하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기 위해서 군사들에게 희망을 갖게 한 것처럼 때로는 무모한 희망이 현실을 이겨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장 논의가 있다지만 어쨌든 추적자는 종영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의 전개로 봐서 화려한 해피엔딩은 기대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부정한 권력을 넘을 희망마저 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시청자에게 한오그룹 서회장과 나라가 아니라 돈의 권좌에 앉고자 하는 정치인 강동윤을 이길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픽션이 필요하다. 추적자가 그간 알거나 몰랐던 현실을 냉정하게 묘사한 것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서회장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인해 받는 패배감과 열등감에 젖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이름 손현주가 영웅이 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기억하기로 손현주는 분명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손현주를 돌려달라.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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