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허영만 화백의 동명만화를 드라마로 재탄생시켜 인기를 끌고 있는 KBS 드라마 <각시탈>의 보조출연자 박희석씨가 버스 전복사고로 사망한 지 벌써 73일째(29일 기준)다. 고 박희석씨의 아내 윤아무개씨가 "KBS를 비롯한 4개 회사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보도자료만 언론사들에 뿌렸을 뿐, 정작 유족들에게는 진정성있는 사과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며 KBS 앞에서 침묵 시위에 돌입한 지도 1달을 넘어섰다.

▲ KBS <각시탈> 포스터

제작사 측은 "유족들의 보상절차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 비해, 유족들은 "(제작사 측이) 사고 이후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장례비 2천만원을 가지고 흥정까지 했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 오는 8월까지 방영될 '시청률 1위 드라마' KBS <각시탈>이 28일까지 10회분을 방영한 가운데, 박희석씨 사망사고 이후의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산재 신청한 지 1달 반…결론은 '아직'

유족들은 지난달 15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상 청구서를 제출했다. 벌써 1달 반 가까이 지났으나, 아직도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고 박희석씨의 산재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노동부 측에 '보조출연자의 근로자성 여부'에 대한 질의를 올려놓은 상황이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그동안 공단이나 노동부 행정 지침 상으로는 보조출연자를 근로자라고 볼 수 없다. 기존 지침대로 하자면 곧바로 '산재 불승인'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이 사고의 경우 어느정도 (산재 승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노력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언제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만약, 노동부 차원에서 '보조출연자는 근로자'라는 결정이 내려진다면 산업재해에 노출되기 쉬운 보조출연자의 처우와 관련해 매우 의미있는 결정이 될 수 있으나 아직 결과를 예단하기는 힘들다. 2008년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보조출연자는 근로자'라는 판결을 이끌어낸 바 있는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는 "이미 사회적으로 '보조출연자는 근로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법원 판결까지 나왔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도 보조출연자를 근로자로 규정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보조출연자의 처우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로 떠올랐는데, 정부가 사회적 약자 보호차원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재가 받아들여질 경우 유족 연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나, 1달 반 가까이 승인 여부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한 유족들은 애가 탄다. 유족은 "승인, 불승인 결정이 빨리 내려져야 소송에라도 돌입하든지 할 텐데 아직도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고 전했다.

유족은 "실질적으로 태양기획이 고인의 고용주임에도 불구하고, 근로복지공단이 '박희석씨는 우리 소속이 아니다'라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양기획의 주장을 받아들여 우리의 청구서를 다른 지사로 이첩했다"며 "큰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사망보험금도 '아직'

동백관광의 보험사인 전세버스공제조합의 사망보험금 문제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 제작사 측은 유족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8일 공식 입장을 내어 "전세버스공제조합이 사망보험금으로 1억 5천만원을 확보해둔 상태"라고 밝혔으나, 곧장 유족들로부터 "사망보험금은 가해차량 소유자가 손해를 배상하는 차원이지, 제작사 측이 피해자에게 선심을 베풀었다는 식으로 1억5천만원을 거론한 것은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교묘한 기망행위"라는 반발을 산 바 있다.

▲ 고 박희석씨의 아내 윤모씨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 앞에서 침묵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곽상아

유족은 "우리와 아무런 협의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KBS를 비롯한 제작사들이 자신들과 상관도 없는 '사망보험금'과 '형사합의금'의 구체적 금액을 거론하며 마치 우리가 '돈'을 원해서 시위를 한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지 않았느냐"며 "제대로 된 사과도 한 차례 받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 보험금 부분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전세버스공제조합 관계자는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 기준에 따르면, 1억4천만원~6천만원이 지급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며 "다만 고인의 산재가 인정될 경우, 유족연금과 사망보험금이 이중으로 지급되어선 안 되기 때문에 보험금 금액이 상당부분 깎일 수 있다"고 전했다.

◇ 유족이 바라는 것은 '돈' 아니라 '사과'와 '자막'

그동안 수 차례 밝혔듯이,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사과'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자막'이다. <각시탈> 드라마 초반 또는 말미에 그동안 KBS를 비롯한 제작사 측이 후속 조치 등에 있어서 소홀한 부분이 있어 유족들이 시위를 하게 됐는데, 이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의 자막을 내보내달라는 것.

또, 유족은 보조출연자 처우 개선 차원에서 '방송국 내 대기실'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드라마 촬영의 특수성상 보조출연자들이 지역에 촬영갔다가 새벽에 서울로 올라오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임금으로 인해 택시를 타고 집에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절대 다수이기 때문에 방송국 차원에서 이들을 위한 대기실 한 칸을 마련해 달라는 절박한 호소다.

KBS를 비롯한 제작사 측은 21일 유족들을 찾아와 자막방송에 대해서는 수용 의사를 밝혔으나 '대기실 마련'에는 확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실질적으로 보조출연자들의 복지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대기실 마련을 요구했는데, 난색을 표하더니 아직까지도 답이 없다"며 "예전에는 KBS 별관 지하에 보조출연자 대기실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폐쇄돼서 보조출연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기실 한 칸 마련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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