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는 매번 다음 주가 혹시 마지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쏟아낸다. 그만큼 매회 70분이 마치 7분처럼 느껴질 정도의 빠른 속도감을 느끼게 되며 동시에 너무 빨리 끝난 것 같은 아쉬움에 젖게 된다. 그만큼 추적자에 재미를 붙인 사람이라면 빠져서 헤어나기 어렵지만 시청률은 통 오르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달콤한 사랑도, 행복한 결말도 기대할 수 없다. 사는 것이 버거운데 굳이 드라마까지 힘겹게 시청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한국 드라마의 최근 트렌드는 비현실성의 성취가 곧 성공을 좌우하는 잣대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타임 슬립이 유행하고 있고, 각종 SF적 모티브가 거침없이 채용되고 있다.

그런데 절반쯤 진행된 시점에서 이 드라마의 성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추적자는 결코 복수극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에 의해 인간이 지배당하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다. 복수라는 지극히 사적인 궤도에서 시작된 추적은 이미 자본주의권력이라는 아주 커다란 영역을 휘젓고 있다.

추적자는 복수라는 작은 지점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손현주 하나의 복수를 완성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주인공은 손현주일 수 있겠지만 이 드라마의 주제는 박근형과 김상중 가족에 있다.

보통의 드라마라라면 손현주의 행보는 지금보다 훨씬 더 영웅적으로 그려질 것이다. 도와주는 사람도 고대소설 뺨칠 정도로 우연을 가장해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변심이 의심될 정도로 손현주를 탈출만 잘할 뿐 그 외에는 갈수록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돈에 눈이 멀어 친구 딸을 죽게 하는 첫 번째 배신. 서민의 친구라 믿었던 정치인 김상중의 배신 그것도 모자라 친형처럼 여겨왔던 황반장(강신일)마저도 돈 10억에 변심케 했다. 물론 김상중도 결코 편치 못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장인과 싸워야 하는 바람에 당선이 분명한 대권가도에서 밀려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다보니 김상중을 피해자로 보는 시각까지 생겨날 지경이다.

흥미롭다고는 할 수 없는 난감한 반응이다. 김상중은 직접 살인을 지시하고, 사건을 은폐 조작한 실질적인 범죄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드라마 상에서 박근형은 직접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최고의 악인이 돼있다. 거기에는 재벌과 관련된 몇몇 사건이 인지의 저변에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김상중을 동정하다 못해 응원하고 싶어지는 심정까지 생길 만하다.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왠지 김상중이 대통령이 되면 정치를 잘할 것만 같은 믿음이 생기게 된다. 이미지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시청자만 혼동하는 것이 아니다. 손현주도 외상후스트레스라도 겪는 것인지 판단에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만다.

분명 처음에 장변호사를 만나서 양아치라고 욕한 것이 온전한 손현주의 자세이다. 그렇지만 황반장의 배신에 크게 당황한 손현주는 어차피 이용당할 것이 분명한데도 장변호사를 찾아가 김상중 부부에 대해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한다. 대단히 불만스러운 전개지만 여기에는 작가의 노림수가 엿보인다.

김상중과 박근형이 주고받은 옹서 간의 대화에 소름 돋는 내용이 있었다. 박근형이 재벌이 된 비결이다. 자기 약속은 어음이고 남의 약속은 현찰이 되게 하는 것. 그만큼 남을 잘 속일 수 있었던 것이자 그만큼 속아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명쾌한 정치,경제적 아포리즘이 더 있을까 싶을 정도다.

김상중에 대한 동정은 다시 말해서 어음을 받고 현금을 내주겠다는 순진하고 무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태도가 장변호사를 찾아간 손현주와 얼마나 다를까 생각볼 일이다. 람보가 되도 시원찮을 손현주를 자꾸 초라하게 몰아가는 것은 반전을 위함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현실 앞에 쉽게 타협하는 우리들을 향한 호질 같은 꾸짖음은 아닐까 모르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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